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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대부분 자치단체가 앞다퉈 신(新) 팔경을 선정했을 때 문화예술인들의 염려가 컸다. 풍류의 의미는 뒤로하고 오로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눈에 보이는 것 우선 정책'을 편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 이유로 팔경의 원류와 조선 선비들의 풍류를 전하는 글들이 매체마다 쏟아졌다. 

'풍경의 주체가 자연이라면 풍류의 주체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글 속에는 "풍경이 눈으로만 즐기는 것이면 풍류는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라는 말로 그 뜻을 분류했다. 관광을 산업화한 사회에서 눈으로 보는 것에만 매료돼 풍류의 깊이가 더 가벼워진 건 사실이다. 

우리의 여행문화는 관광일까, 풍류일까? 

그런 의미로 보면 팔경을 빼놓고 풍류를 논할 수 있을까? 팔경은 중국의 소상팔경에서 시작했다. 동정호의 남쪽 소수(瀟水)와 상수(湘水)의 아름다운 경치 여덟 곳을 11세기 북송 때 화가 송적이란 사람(10세기 이성이란 사람이 처음 그렸다는 증거가 발견됐다고 하는 등 몇 가지 설이 있지만)이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그리면서 널리 퍼진 것으로 정리한다. 

이것이 고려에 전파돼 소상팔경을 모사한 것이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의 송도팔경이다. 그랬던 것인데 조선시대에는 전국 팔도에서 팔경의 형태로 아름다운 경치를 지정하는 것이 문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조선의 문인들은 소상팔경 속 그림에 담긴 인문학적 의미를 인용해 시와 그림 등 예술작품을 탄생시킨 것, 관동팔경과 단양팔경이 대표적이다. 

관동은 대관령의 동쪽으로 현재 망양정과 월송정은 경북에 편입, 삼일포·총석정·시중대는 북한에 속한다. 동해안의 명승지에는 정자나 누대가 있어 선조들은 그곳에서 풍류를 즐기면서 빼어난 경치를 노래했다. 고려 말 문인 안축(安軸)은 경기체가 '관동별곡'에서 총석정·삼일포·낙산사의 경치를 읊었고, 조선 선조 때 문인 송강 정철은 자신의 가사문학인 '관동별곡'에서 금강산 일대의 산수미와 관동팔경을 노래했다.

단양팔경에서 도담삼봉은 이름난 조선의 선비들이 그림이나 시문에 단양의 풍경을 담았고, 조선 건국공신 삼봉 정도전도 자신의 호를 도담 봉오리에서 따올 정도로 조선의 문인들에게 단양팔경은 큰 인기를 누렸다.

당대 이름난 문인의 작품을 따라서 행하는 형태로 시문을 남겨 그를 흠모하는 것은 선비가 추구하는 올바른 자세였다. 그래서인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 형태로 전남 완도 금당도에는 금당팔경이 있다.

금당팔경은 위세보의 삼종형님 위세직의 작품으로 위세보의 문집에 기록됐고, 금당별곡에 나오는 팔경이 금당팔경이다. 조선 후기에 위세직(魏世稷)이 지은 이 기행가사는 삼족당가첩에 전한다. 처음에는 위세보(魏世寶)의 작품으로 알려졌으나, 위세보의 석병집(石屛集)에 '삼종형작금당별곡(三從兄作金塘別曲)'이라는 기록에 의해 나중에야 위세직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에 3천 번 넘게 이름이 등장한 서인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의 제자이기에 학자로서 깊이가 남달랐다. 이 작품은 배를 타고 금당도와 만화도를 돌아보면서 자연풍광을 서경(자연의 경치를 글로 표현함)으로 읊은 일종의 해양기행가사로 의미가 크다. 금당도는 해안 절경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지역 특산품인 문어와 장어가 유명했다. 금당도에서는 갓 잡아 올린 문어와 잘피에서 서식하는 장어를 바닷가 해풍에 말려 임금님께 진상하기도.

지역의 문화자원이 더욱 풍성해지려면

약산도 어두리에서 낚싯배를 얻어 타고 금당도를 유람했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쯤 선장님은 밤마다 잘피를 헤쳐가며 낚시를 즐기고 계실 것이다. 낚싯바늘 없이 미끼만 끼워 잔잔한 바다에 드리우면 씨알 굵은 붕장어가 수없이 달려 나온다. '땟방낚시'라고 부르는 전통 낚시를 즐기는 선장님의 모습이 역력하다. 달 밝은 밤, 추강에 가을이 물들면 눈앞에 금당의 풍경이 아른거릴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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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금당팔경 뱃길 유람은 아쉽게도 전남 고흥군이 선점했다. 지리적 이점도 있지만 지난 2015년 생뚱맞은 용머리에 기와를 얹은 유람선을 띄워 관광객모집이라니. 하지만, 고흥군의 관광전략은 가히 본받을만하다.

용과 학(봉황) 그리고 기린 같은 동물은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상상 속 동물, 이것을 등에 타고 다니는 존재는 오로지 신선뿐이다. '신선이 되어 유람한다'는 의미처럼 보이는 금당도 뱃길 유람. 완도에서는 시작할 수 없을까? 라는 고민을 지역 사람 누구나 하는 실정이다. 완도군은 금당도 주민들의 편리를 위해 장흥 노력항에서 완도읍내로 버스를 운행하는 게 전부인 것 같다.

팔경은 경치를 중심으로 보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풍광과 마음으로 보는 심미(心美),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담을 수 있는 풍속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어서 "인문학적 관점에서 풍경을 마주하며 심미안(審美眼)을 기르는 연습이 필요하다"며 풍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관광자원을 문화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일에 매진해야 할 시기일 듯하다. 문화예술의 영역이 관광자원으로 펼치기까지는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역의 문화자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어느 해 한 지자체가 주관한 '길 위의 인문학' 탐방 길에 목포의 수묵 비엔날레 전시를 관람하고 와서 느낀 감회가 새롭다. 해설을 자처하고 나선 행촌미술관측 설명도 의미를 더했다. "지역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을 보는 눈이 뜨인다면 지역의 문화자원은 더 풍성해질 것"이라는 그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정지승 다큐사진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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