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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모기는 대략 2주간의 삶에서 단 한번의 사랑을 나눈다. 사람의 피를 빠는 모기는 오직 산란기의 암컷이다. 암놈은 수정란을 성숙시키기 위한 많은 영양소가 필요한데 동물과 사람의 핏속에는 이런 자양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수컷은 활동에 필요한 약간의 꽃꿀이나 수액을 섭취하기 때문에 사람을 물지는 않는다. 

말라리아는 'Mal+Aria'로써 '독이 있는 공기'라는 뜻이다. 모기의 흡혈을 통해 우리 몸에 침투한 열원충이 무한증식하여 사람의 적혈구를 파괴하는 질병이다. 감염자는 주기적인 오한과 고열에 시달리며 생기를 잃어가며 서서히 죽는다. 조선시대 때는 말라리아를 학질이라고 불렀다. '학을 떼다'라는 우리말 속에 그 흔적이 남아있으며 학질이 가져오는 고통에 빗대어 죽다 살아났다는 의미다. 

세계적으로 워낙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기에 아프리카 지역의 사람들은 이에 대한 내성이 생겼다. 바로 겸상적혈구의 탄생이다. 적혈구가 찌그러져 열원충의 침입을 막기는 하지만 산소 운반 능력이 떨어져 빈혈을 가져온다.

티모시 C. 와인가드(Timothy C. Winegard)가 쓴 <모기: 인류 역사를 결정지은 치명적인 살인자>에는 알렉산더 왕이 사망한 원인을 모기라고 밝히고 있다. 흡혈시 옮겨지는 바이러스는 인류 역사를 바꿔 놓은 나비효과인 셈이다. 

인류를 오랫동안 괴롭히는 말라리아 치료제는 1820년 프랑스의 약리학자에 의해서 추출된다. 피엘 조제프 펠티(Pierre Joseph Pelletier)와 조제프 카방투(Joseph Caventou)는 남미의 페루와 볼리비아에 자생하는 키나(Cinchona) 나무의 껍질로 부터 퀴닌(quinine)을 뽑아내어 치료제로 사용했다.
 
칵테일의 부재료인 토닉 워터는 모기 치료제인 퀴닌을 넣은 약품이었다.
▲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이 토닉 워터의 쓴 맛을 냄. 칵테일의 부재료인 토닉 워터는 모기 치료제인 퀴닌을 넣은 약품이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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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는 과거로부터 퀴닌을 넣은 탄산수를 약으로 마셔왔는데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칵테일의 부재료인 토닉 워터다. 과다 섭취하면 몸이 상하기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엄격히 규제를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넣지 않는다.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는 모기

살충제이자 제초제인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는 1874년 독일에서 처음 합성 되었다. 1939년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밀러(Paul Hermann Muller)는 DDT가 벌레를 죽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여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세계 2차 대전 때에는 모기 구제와 함께 질병 매개 곤충을 죽이기 위해 널리 사용되었다. 위생 곤충에는 효과적이지만 동식물에게는 별다는 증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DDT는 인간이 만든 만병통치약으로서 세상을 호령했다. 흑사병을 옮기는 벼룩, 발진티푸스를 일으키는 이(lice)와 같이 전염병을 매개하는 해충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1941년 일본은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동남아와 남태평양 일대를 손아귀에 넣는다. 이에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일본이 점령한 지역을 하나하나 탈환해 나간다.

그러나 모기가 들끓는 아열대 지역이므로 말라리아와 뎅기열 같은 전염병이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을 덮쳤다. 미군은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DDT를 대량 생산해 살포하였고 질병 발생을 크게 낮췄다. 이후 본격적인 공세를 통해 미드웨이 해전, 사이판과 이오지마 전투에서 승리하고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하여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다.

DDT는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살충제로서 광범위하게 쓰인다. 한국전쟁 때에는 철모 안에도 바르고 옷 속에도 뿌리면서 날이 갈수록 인기를 더해갔다. 그러나 1962년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책 <침묵의 봄, Silent Spring>이 나오면서 세상이 바뀌어 버린다.
 
모기는 산란기의 암컷만이 피를 빤다
▲ 처서가 지나 생기가 현저히 떨어진 흰줄숲모기. 모기는 산란기의 암컷만이 피를 빤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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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용수철이다. 새순이 돋고 온갖 생명이 스프링처럼 약동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1962년의 봄은 생태계의 교란으로 동물들이 이유 없이 죽어 나갔다. 새들의 지저귐이 사라져버린 침묵의 봄이었다. 카슨은 무분별한 화학 살충제의 남용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냈다. DDT의 인체 내 축적은 신경계를 교란시키고 암을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 

이 책으로 서구권에서 환경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미국은 1972년에, 대한민국은 1979년에 DDT 사용을 금지한다. 하지만 저개발 국가에서는 여전히 DDT가 살포되고 있다. 환경오염을 걱정하기 이전에 말라리아로 연간 200만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기 때문이다.

당장 생사를 헤매는 사람들에게는 DDT의 살포가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내성이 생긴 슈퍼 모기의 탄생으로 살충제의 효과는 거의 소멸 되어가고 있다. 오늘날 인류 최대의 적은 모기다. 말라리아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전염병이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사진은 글쓴이의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말라리아, #모기, #MALARIA, #MOSQUITO, #D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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