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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유토지와 자유화폐로 만드는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질비오 게젤 지음, 클출판사 발행)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질비오게젤연구모임의 한 사람인 유종오(공인회계사)씨를 만나 번역 경위와 게젤의 핵심사상, 오늘날 우리가 게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들어보았다.
  
자유토지와 자유화폐가 핵심 명제다.
▲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의 표지사진 자유토지와 자유화폐가 핵심 명제다.
ⓒ 클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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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비오 게젤은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에 대한 소개를 간략하게 한다면?
"질비오 게젤은 1920년대 독일 출신의 사업가이자 경제이론가이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사업적으로 성공했으나 국가적 경제위기로 실업문제 등 사회문제가 심각해지자 그 원인을 파고든다. 그는 토지문제와 화폐문제가 위기의 원인임을 간파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와 스스로 리카도 등 정통경제학이론과 맑스와 푸르동, 헨리조지 등 진보적 경제이론을 비판적으로 연구검토했다. 마침내 그는 '자유토지(토지공유제)'와 '자유화폐(감가상각화폐)'가 자본주의 모순의 해결책이 됨을 깨달았다. 그는 맑스주의와는 다른 접근을 했고 현대의 피케티가 내세운 '글로벌자본세'와도 다른 해법을 제시하였다."

- 게젤의 어떤 점 때문에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나.
"게젤에 주목한 것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사회문제에 대한 설득력 있고 혁신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빈부격차의 심화에 따른 사회적 불공정문제가 최대의 이슈로 등장했다. 기본소득과 부유세, 개발이익 환수 등 다양한 해법들이 제시되지만 경제질서에 대한 근본 검토 없이 임시처방에 머물러 답답한 상황이었다.

게젤은 자본주의 경제문제 해결에 지속적으로 실패하던 소위 주류경제학과 그 대안으로 등장하여 큰 흐름을 만들었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오류를 파헤친 뒤 경제질서 자체를 '인간본성에 적합한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바로 게젤 특유의 자유토지와 자유화폐에 근거한 경제질서를 말한다. 이 점이 번역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80학번 여섯명이 번역모임을 만들었다.
▲ 유종오 번역가의 모습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80학번 여섯명이 번역모임을 만들었다.
ⓒ 민병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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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젤의 핵심사상인 자유토지란 무엇인가.
"게젤은 토지를 인류공동의 자산으로 보았다. 토지는 인간의 생명에 필요한 먹거리의 원천을 만든다. 모든 동식물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토지 없는 인간의 삶은 불가능하다. 이런 토지를 단지 선점하고 상속받고 유상승계했다는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법인이 소유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관점이다.

게젤은 사유토지를 이자부 국채를 발행해서 시가로 매입해 국유화할 것을 제안한다. 매입한 토지는 공공경매를 통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임대하고, 수입이 발생하면 국채 발행에 따른 원금상환과 이자지급을 할 수 있으며, 토지와 지대상승에 기여한 양육모(자녀출산에 따른 인구증가)의 연금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방안을 따르면 부동산 폭등과 불로소득은 점차 사라진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주들은 여전히 채권이자소득이라는 불로소득을 누리기 때문이다. 화폐개혁이 결합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 아울러 자유화폐에 대해서도 설명해달라.
"화폐는 상품교환을 위해 생겨난 중요한 경제수단이었다. 화폐는 시장에 나와 모든 상품을 살 수도 있고 저장하여 축재도 가능하다. 그래서 화폐 권력이 생겨났고 역사이래 약 4% 안팎의 기초이자를 요구하는 특권이 생기게 되었다. 토지는 한정된 자원이자 썩지 않는 성질 때문에 지대를 받고, 화폐는 교환수단이자 저축기능이 있으므로 이자라는 불로소득을 얻는다. 둘 다 불공정을 낳는 특권이다. 자산불평등과 소득불평등이 심해진 근원이다. 토지개혁과 함께 자유화폐개혁을 게젤이 제시한 이유이다."

- 자유화폐가 되면 이자는 없어지고 불로소득이 줄어들게 되나.
"즉각적이진 않으나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다. 게젤은 화폐에 수명, 가령 20년이라는 시한을 부여하는 화폐를 제안한다. 해마다 5%씩 감가상각을 해서 20년 뒤에는 가치가 사라지는 화폐다. 저장하지 못하고 반드시 쓰여지게끔 하자는 것이다. 화폐가 보통의 상품처럼 썩고 평등하게 교환되는 것이다. 그러니 돈에 대한 이자를 요구할 수 없다. 불로소득의 원천인 이자가 사라지는 것이다."

- 성남시에서 발행되었던 '지역화폐'가 게젤의 자유화폐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나.
"맞다, 유의미한 시도였다. 지역화폐와 게젤의 연결 지점은 바로 시한부화폐라는 점이었다. 시한이 넘으면 휴지조각이 되게끔 설계해 사용하게끔 했다. 정해진 날까지 써야 하기 때문에 소비를 진작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문제는 사용한 지역화폐가 기존화폐로 교환되어야 한다는 한계였다.

이를 넘어서려면 시한부화폐가 법정화폐로서 시장에서 일정비율 이상을 점하고 지속적으로 유통되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적 파급효과가 커지고 자유화폐가 기존화폐를 밀어내는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가령 재난지원금 같은 정부보조금을 디지털자유화폐로 만들어 매주 또는 매월 자동적으로 일정 금액씩 화폐가치가 줄어들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 내년 3월이 대통령선거다. 이를 앞두고 책을 출간한 것은 계획에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 우리 연구모임이 볼 때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경제의 불공정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경제사상, 경제정책이 후보들의 공약으로 올라와야 한다. 기본소득을 포함해 토지공개념, 화폐개혁이 그 중심에 설 수 있다면 우리는 방역모범국에 이어 경제모범국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

토지공개념이 확대되면 토지임대료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부동산투기도 잡을 수 있다. 임대료 줄면 생산비가 낮아지고 노동소득이 커질 여력이 생긴다. 화폐개혁을 통해 이자를 낮추어도 기업들의 생산비용이 줄어 역시 노동소득이 늘어난다. 이번 대선에서 게젤의 경제사상을 음미하면서 무한한 상상력이 발휘되었으면 한다."

- 마지막으로 번역 과정이 궁금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주목할 점들이 있다면 듣고 싶다.
"게젤 자신은 학자이기보다는 사업가로 인생을 시작했다. 강단에 서지도 않았고 학자로서 저명한 사람도 아니어서 저평가를 받았다. 우리는 명성보다는 그의 경제 사상에 주목했고, 번역은 1929년 영어판(필립 파이 영역)을 저본으로 삼았고 독일어 원전과 대조하는 것은 성신여대 독문과 김길웅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도서출판 클의 김경태 대표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게젤 책을 출간하기로 결정하고 번역문과 원본을 꼼꼼하게 대조하며 독자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선 세세한 질문지를 역자들에게 보냈다. 이를 통해 번역은 더 깊어지고 번역자들끼리 여러 번 독회를 통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주류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경제를 불변의 경제체제로 보고, 빈부격차, 사회갈등에 대해서는 기부나 구제, 임시방편적 처방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나 이재명 후보가 존경한다는 케인즈의 경우에도 자본주의의 과잉생산이나 대공황 등과 같은 모순에 대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주문할 뿐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근간인 토지와 화폐개혁에 대한 고민은 없다.

게젤의 두 가지 개혁인 자유토지와 자유화폐를 기존 자본주의 경제에서 확대되어 온 불평등과 빈부격차, 불로소득 문제에 창조적으로 적용해 개선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게젤 전도사를 자처하는 유종오씨와 연구모임은 앞으로 게젤 사상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입문서를 출간 보급히고 유튜브 강연도 만들 계획이다. 모쪼록 그들의 생각대로 이번 대선에서 불평등 해소에 기여할 수 있는 많은 정책 담론들이 분출하기를 기대해 본다.

자유토지와 자유화폐로 만드는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질비오 게젤 (지은이), 질비오게젤연구모임 (옮긴이), 클(2021)


태그:#게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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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수필로 쓰는 만인보" 줄여서 '사수만보'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 민초들의 이야기를 빚어내는 일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조명을 비추고 의미를 부여코자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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