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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대체왜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엄마, 엄마 MBTI는 뭐야?"
"몰라."
"한번 해볼래?"
"근데, 엄마는 그거 할 때마다 유형이 바뀌던데."


어느덧 사춘기의 끝자락에 선 딸아이는 MBTI 신봉자다. 어릴 적부터 '혈액형으로 알아보는 성격유형', '생일로 알아보는 성격유형' 같은 심리를 알려주는 책을 하도 좋아해서 그런 비슷한 책들은 죄다 사주었다. 그런 유아 대상의 성격 심리 책은 다분히 재미 위주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성격 파악이 대부분이지만, 아이는 그걸 그렇게 재미있어 했다.

심리유형 테스트가 흥미롭긴 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정의해 주는 말에는 왠지 묘한 끌림이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점집을 가는 것도, 타로점을 보는 것도 일종의 '객관화된 나', '남의 입을 빌려 듣는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일점'을 맹신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생일점이나 별자리, 혈액형에 집착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같은 반에서 생년과 생일(생시만 다름), 별자리, 혈액형까지 똑같은 여자친구를 만난 것이 이유였다. 신기해하고 반가워했던 것은 잠시, 자기와 달라도 너무 다른 성격의 그 친구와 공통점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혹시나 하면서 일 년을 지켜봤지만 서로의 다른 점만 눈에 띄더란다. 달라도 너무 다른데 생일이 같다는 이유로 성격도, 친구를 사귀는 방법도, 좋아하는 남자 스타일도, 옷 입는 스타일, 심지어 미래에 어울리는 직업마저도 같다고 단정하는 생일점에 배신감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랬기 때문일까. 그 후로 딸은 신뢰를 잃은 그런 류의 책들을 두 번 다시 펼치지 않았다.

중3 딸이 MBTI 신봉자가 된 이유
 
아이가 하도 졸라서 MBTI 검사(인터넷만 치면 나온다)를 해 보았다.
 아이가 하도 졸라서 MBTI 검사(인터넷만 치면 나온다)를 해 보았다.
ⓒ MBTI 검사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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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딸이 다시 성격유형검사 MBTI를 언급한 건 의외였다. 아이가 하도 졸라서 MBTI 검사(인터넷만 치면 나온다)를 해 보았다. 나의 경우는 할 때마다 결과가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들을 때마다 묘하게 내 귀가 쫑긋거렸다. MBTI에 신뢰도가 높아진 아이에게 왜 이렇게 이 검사 결과를 믿는지 슬쩍 물어보았다.

"엄마,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려운 아이라고 하는 게 정말 싫었거든. 나는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이 아닌데 사람들은 나를 다른 애들과 좀 다르다고 하니까. 내가 정말 이상한 걸까?라고 생각했었는데, MBTI를 해보니까 나 같은 사람이 정말 있더라고. 가장 독립적인 유형. 그것도 전체 2프로 밖에 없는 유형이래. 나랑 똑같은 유형인 유명한 사람들 중에 내가 좋아한 사람도 많았고. 그 결과를 보고 나니까,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유니크한 것처럼 느껴져서 좋더라고."

이렇게 스스럼없이 자기를 내보이는 아이가 아닌데 의외로 속내를 비춘 딸에게 내심 놀라고 말았다. 조금 일찍 사춘기를 시작한 딸은 취향도 고집도 확고한 아이였다. 친구들과 우르르 모여서 노는 대신 학교 도서관 서가를 뒤지고 다닌 이야기는 애교에 속한다.

6학년 때인가, 친구와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엄마인 나에게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지 않았다. 상처받은 것이 분명한데, 상처받지 않은 척 자꾸 혼자가 되려는 딸 때문에 마음이 참 많이 아팠었다.

또래 아이들은 사춘기 특유의 감수성으로 오글거리게 사과도 하고 넘어가기도 하던데 딸의 대처 방법은 조금 달랐다. 그 후로 놀란 가슴으로 전전긍긍하게 된 것은 오히려 나였는데, 아이는 오히려 자기를 편하게 대해주지 않는 그런 모습들이 스트레스였다고 고백한 것이다.

스스로 늘 남들과 다른 것을 걱정하곤 했는데 MBTI 검사를 통해 비로소 안도하게 되었다는 딸. 이 검사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 또 검사의 신뢰도를 운운하기에 앞서 나는 사춘기를 지내는 딸이 세상에게 이해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하는 것에 울컥 마음이 저려오고 말았다.

비슷하지 않으면 무리에 낄 수 없는 10대
 
14살 소녀들의 여정을 다룬 영화 <종착역>
 14살 소녀들의 여정을 다룬 영화 <종착역>
ⓒ 필름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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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들은 친구들과 불일치 되었을 때, 즉 무리에 소속되지 못했을 때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사라 마케이의 책 <여자, 뇌, 호르몬>에서는 십 대 여자아이들의 '불일치 불안'에 대한 실험 결과를 들려주는데 그 결과가 놀랍다.

이 실험은 10대 여자 아이들 32명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아이들이 마음에 드는 노래에 순위를 매기는 동안 fMRI(혈류와 관련된 변화를 감지하여 뇌 활동을 측정하는 기술)로 아이들의 뇌를 촬영하는 내용이었다.
 
"fMRI 촬영 결과, 십 대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 인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 불안과 부정적인 감정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략) 실험에 참여한 십 대 아이들이 자신의 음악 선호도 순위를 바꿔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게 순위를 맞추자 불안은 사라졌다."

다른 또래와 비슷하지 못하면 불안감을 느낀다는 사춘기 십 대. 그 사춘기 동안 내내 "넌 왜 OO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보냈을 딸아이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돌이켜보면,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에 자기의 취향을 숨기고 또래들이 좋아하는 대세 남자그룹에 열광한 듯한 모습도 보였던 딸이다. 어울리고 싶어서 노력한 거였다. 

또래 집단의 소속감도 필요하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도 들어야 하는 사춘기를 보내며 나만 왜 다를까 하는 고민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을 딸에게 MBTI 성격유형검사가 위로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의외이면서도 고마웠다. 아이들은 참 각자의 방법으로 크는 것 같다.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태그:#MB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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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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