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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새벽 풍경.
 안개가 자욱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새벽 풍경.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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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관련해 러시아의 자존심이 무너진 일이 언론을 통해 한국에 알려졌다.

러시아는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스푸트니크V'. 하지만 이 백신은 아직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적인 승인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 사람들조차 스푸트니크V의 효과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

이런 상황이니 비교적 오가기 쉬운 인근 동유럽 국가로 미국이나 영국에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러 가는 러시아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러시아의 '코로나19 사태'는 여전히 심각한 현재진행형이다. 지난주에도 1일 확진자가 3만 명에 이르렀고, 숨지는 이들도 하루 1천 명에 가깝다. 이에 정부가 일정 기간 직장 폐쇄 명령까지 내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현재까지 러시아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800만여 명. 사망자 역시 22만 명을 넘고 있다. 발표된 수치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백신 접종률도 30% 안팎으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은 편. 여러 조건을 감안할 때 아직은 안전한 러시아 여행이 힘들어 보인다.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은 포항-러시아 크루즈 여행

형편이 이러하니 러시아로 떠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은 더 커지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고 아름다운 바이칼 호수와 만나는 꿈, 몇 시간이고 끝없이 이어지는 해바라기밭을 바라보는 꿈은 당분간 미뤄둘 수밖에 없을 듯하다.

러시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다. 국토의 면적이 미국과 중국을 합친 규모에 육박한다. 그러니 짧은 일정에 특정 지역을 여행한 것만으로는 "러시아에 가봤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내 경우엔 극동 러시아 지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이 근사한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져 있다. 이동 수단이 비행기가 아닌 크루즈였다는 게 여행의 낭만성을 배가시켜줬다.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 포항에서 러시아로 항해한 크루즈.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 포항에서 러시아로 항해한 크루즈.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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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항해한 크루즈의 선상 수영장.
 경북 포항-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항해한 크루즈의 선상 수영장.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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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로 항해한 이탈리아 크루즈 '네오 로만티카(Neo Romantica)'가 경북 포항을 떠난 건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불과 1개월 전. 그때만 해도 낯설고 끈질긴 바이러스가 지구 전체를 긴 시간 동안 위험에 빠뜨릴 것이란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어쨌건 그 항해는 즐거웠다. 자그마치 30시간 넘게 배 안에 있었지만 지겨운 줄 몰랐다. 60층 높이의 빌딩을 눕혀 놓은 크기의 거대한 크루즈 안에선 시간마다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가 펼쳐졌고, 끼니마다 제공되는 기대 이상의 음식은 입을 즐겁게 했다.

크루즈 여행의 특성상 나이 지긋한 관광객들의 만족도는 더 높아 보였다. 먼 거리를 걸어서 이동하거나 흔들리는 버스를 장시간 타야 하는 보통의 여행과는 달리 배에서 모든 서비스를 제공받는 편안함이 있기에 그런 것 같았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를 알 수 없었던 포항시는 전 세계 크루즈 승객이 3천만 명에 이르던 2019년의 상황을 고려해 포항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정기적으로 오가는 크루즈의 취항을 준비했었다.

그건 해양경제시대를 맞은 포항이란 도시의 관광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방법의 하나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불과 2년 사이에 크루즈 여행이 애물단지로 취급받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노모와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날을 기다리며

기억 속에 선명한 2020년 1월과 2월. 세계 각지에서 크루즈 여행을 즐기던 사람들 모두가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크루즈 자체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온상'으로 취급받는 장면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봐야 했다.

여행하고 싶다는 열망은 그곳에 쉽게 갈 수 없을 때 더 증폭된다. 크루즈를 타고 도착했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또한 그런 여행지가 됐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친절한 러시아 사람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친절한 러시아 사람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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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선 저렴한 가격에 킹크랩을 맛볼 수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선 저렴한 가격에 킹크랩을 맛볼 수 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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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곳. 추위에 입김을 뿜으며 돌아다니던 혁명광장과 독수리 전망대는 인상적이었다.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던 유럽 스타일의 예쁜 건물들이 눈앞에 삼삼하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맛본 큼직한 킹크랩을 떠올리면 지금도 군침이 돈다.

포항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복하는 크루즈가 상설화됐다면 일흔다섯 살 노모를 모시고 한 번쯤 배에 오르려 했다. 그건 효도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자식의 소박한 꿈이었다. 비단 나만 그랬을까? 그런 여행을 계획한 아들과 딸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항해 중에는 노인들을 위해 준비된 각종 이벤트와 게임·노래자랑을 즐기게 해주고, 매일 식구들의 음식을 준비하느라 긴 세월 고생한 모친에게 한국에선 맛보기 어려운 러시아 특유의 요리를 대접하고 싶었는데…

이런 마음이 들 때면 '영원히 지속되는 수난과 고통은 없다'는 잠언을 떠올리게 된다.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러시아 전체가 코로나19가 가져온 수난과 고통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기를 기원한다.

그렇게 된다면 매서운 극동 러시아의 찬바람도 기꺼이 맞으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주일쯤 기차를 타고 멀고 먼 모스크바까지 달려 매력적인 러시아 관광지 곳곳을 돌아보고 싶다는 바람 간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러시아, #코로나19, #블라디보스토크, #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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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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