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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연 5대 요구안 선언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근처에서 한 노조원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등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9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연 5대 요구안 선언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근처에서 한 노조원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등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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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심각하냐면요. 병가자, 사직자가 줄 서 있으니 당장 내달부터 인력이 없어 '수간호사'가 현장 근무로 내려옵니다. 십몇 년 근무한 샘들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 본인들도 다음 달부터 근무가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겠대요."


서울대병원 2년 차 간호사 A씨가 전한 간호 현장의 이야기다.

지난 23일 오후 2시, 드디어 국민 70% 이상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했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특히 현장은 지금 '사직 러쉬'다.

떠나는 간호사들... 상반기 서울 3개 병원 674명 퇴사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서울 3개 병원(서울의료원·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에서만 674명 간호사가 사직서를 냈다. 한 달에 96명꼴이다. 이 병원들은 모두 공공병원들로 코로나 전담병원이다. 부족한 인력 문제로 퇴사도 쉽지 않다. 최근 서울대병원 한 병동에선 간호사 2명이 동시에 사직서를 내자 한 명은 12월, 나머지 한 명은 1월에 퇴사해달라고 퇴사 순번을 부여받았다.

간호 현장은 '코로나 총알받이'란 말이 나올 만큼 코로나 유행의 직격탄을 받았다. 코로나와 관련된 각종 검사·행정 업무가 간호사에게 전가된 탓이 크다. 보호자 동선 통제 및 코로나 검사, 코로나 병동 입·퇴실 관리, 간호 기록 등 '진단·치료행위'를 뺀 거의 모든 부대업무를 맡고 있다. 가령 일반병동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면 코호트 격리와 동시에 보호자 격리 및 안내, 감염 검사, 감염자 노출 조사 모두 간호사가 맡는다. 환자와 보호자에 4중 보호구를 입혀주고 격리자의 택배도 받아 배달해준다. 이런 날엔 연장근로만 5시간이다.

서울대 병원 또다른 6년차 간호사 B씨는 "간호사들은 감염병동은 감염병동대로, 일반 병동은 일반 병동대로 업무가 2~3배 늘었다고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감염병동은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일하는 것 자체가 중노동이다. 워낙 더워 2시간만 지나도 땀에 젖고 손발이 쭈글쭈글해진다"며 "같은 일을 해도 두 배 시간과 노력이 걸리지만 업무량은 그만큼 안 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2시간마다 교대하는데, 일 특성상 갑자기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4~8시간 연속 일을 할 때도 있다.

일반 병동의 문제는 더 다양하다. 코로나 병동으로 차출된 인력을 메우는 일부터 문제였다. 3~4년차 이상의 경력 간호사들이 빠지면 공백은 보통 신규 간호사가 메웠다. A씨의 말이다. 

"간호 업무는 보통 최소 6개월~1년을 일하면 '제 몫을 제대로 한다'는 말이 나온다. 중환자실 경우는 1년 6개월 정도다. 그 시기를 거친 사람들이 떠나면 손실이 큰데 사직, 파견 등으로 다 떠났다."

환자, 보호자의 온갖 불만을 받아내는 감정 소모도 심하다. 병원에서 마스크를 쓰라고 할 때, 한 보호자가 감기 증상을 보여 교대를 요구할 때, 임종을 보러 온 환자 가족의 출입을 통제할 때 등의 경우다. A씨는 "모든 불만이 간호사에게 쏟아진다. 코로나 이후엔 하루가 이걸로(불만 접수·수습) 다 지나간다"며 "병원은 '지침대로 해'라는 말밖엔 안한다. 중간전달자인 간호사들이 모든 수습, 감정노동을 떠안는다"고 말했다.

"보라매병원 2년 동안 간호사 5명 충원" 
 
8월 5일 오전 서울시청앞에서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인력부족으로 쓰러지는 간호사들. 피해 입는 환자들의 모습을 담은 방호복 퍼포먼스를 하며, 서울시 공공병원(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서울의료원) 코로나19 감염병상 간호인력 충원을 촉구하고 있다.
 8월 5일 오전 서울시청앞에서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인력부족으로 쓰러지는 간호사들. 피해 입는 환자들의 모습을 담은 방호복 퍼포먼스를 하며, 서울시 공공병원(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서울의료원) 코로나19 감염병상 간호인력 충원을 촉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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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반 병동 간호사들은 한 명당 11~18명의 환자를 맡고 있다. 간호사 한 명당 6~8명을 맡는 상당수 OECD 국가들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여기에 코로나 업무까지 더해지니 극한 상황에까지 몰린다.

결국 해답은 인력 충원이지만 B씨는 "(보라매병원 경우)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지 2년 동안 간호사 5명 늘린 게 전부"라며 "병원은 재정 때문에 안 된다는 말밖에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A씨도 "2년 동안 인력 충원은 없었다"며 "개선의지도 전혀 느낄 수 없다"고 꼬집었다.

결국 간호사들은 국민 청원을 선택했다. 지난 10월 간호사들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린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 축소에 관한 청원'을 올렸다. 25일 자정, 국민 청원이 시작된 지 28일째 청원 동의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10만 명은 청원이 국회 소관위원회에 회부될 최소 자격. 국회 보건복지위는 곧 이 청원의 본회의 회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 관련 청원 바로)

간호사들이 국민 청원까지 찾게 된 데엔 '병원 스스로 나설 생각이 없으니 강제력 있는 법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현행 의료법에도 환자 수는 간호사 1인당 12명으로 정해져있으나 처벌조항이 없어 한국 병원의 40%가량이 지키지 않는다. 여기엔 서울대병원도 포함된다.
 
간호사 1명 당 환자 수 축소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 청원에 동의를 촉구하는 한 간호사의 메모.
 간호사 1명 당 환자 수 축소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 청원에 동의를 촉구하는 한 간호사의 메모.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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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1명 당 환자 수 축소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 청원에 동의를 촉구하는 한 간호사의 메모.
 간호사 1명 당 환자 수 축소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 청원에 동의를 촉구하는 한 간호사의 메모.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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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청원의 골자는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다. 일명 '간호인력인권법'을 제정해 일반병동은 환자 12명당 간호사 1명 이상, 중환자실은 환자 2명당 간호사 1명 이상, 외상 응급실은 환자 1명당 간호사 1명 등으로 정하자고 요구한다. 법안엔 이를 위반하면 벌금·징역형에 처한다는 조항도 넣었다. 이밖에 지역 간호사들 저임금 해결 방안, 폭언·성희롱 등으로부터 간호사 보호 방안 등도 조항으로 반영됐다.

이 기준에 비춰 실정은 어떨까. 서울 보라매병원 경우 코로나19 병상(169병상)을 간호사 160명이 맡고 있다. 법안을 제안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간호사 1인이 최대 9명까지 환자를 맡기도 한다며 추가 인력 '276명'이 더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이유다. '간호사 1명당 중증환자는 2.5명, 일반병상의 최중증 환자는 1명, 중환자실 입원 최중증 환자는 0.5명'이라는 의료연대 기준에 따라서다.

두 간호사 모두 정치권에 "'#덕분에챌린지' 같은 보여주기식 말고 제발 간호사들의 현실을 개선하는 일에 행동해달라"고 촉구했다. 실제로 지난 22일 한 서울대병원 11년 차 간호사는 "'덕분에'라고 말한 당신이 해줄 일이 있다. 간호인력을 일회용품처럼 쓰는 병원의 탐욕을 멈춰달라"는 편지를 대통령, 각 지방자치단체장, 300명 국회의원에게 직접 보냈다.

A씨는 "암 병동에 있는 나는 이틀에 한 명씩 환자가 임종을 맞지만 그 트라우마를 제대로 극복할 시간도 없다. 시체처리반이 된 기분"이라며 "환자들이 더 존엄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이번 청원의 법제화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간호 인력 확충은 환자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라며 국회를 향해 "간호사들이 사명감으로 견디는 현실에 기대지 말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달라"고 요구했다.

태그:#간호인력인권법, #코로나19, #의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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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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