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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폐업한 상점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폐업한 상점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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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 어느 날, 우리 브랜드 매출 1위 가맹점주 A씨로부터 카톡이 왔다. 가게를 최종 정리했다는 내용이었다.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는 2019년 말에 설립된 영세한 규모의 신생 브랜드다. 해당 가게는 그동안 주변 관계자들로부터 이름 없는 브랜드의 가맹점치고는 매출도 준수하고 이 정도면 전도유망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래서 그 가맹점은 우리의 '간판' 같은 존재였다. 그런 가게가 코로나19 재난 중 매출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폐점을 결정한 것이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비록 가맹점 매매에는 실패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바닥 권리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아직 젊다 보니(30대 초반) 운 좋게 물류 회사에 정직원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상황이 그나마 좋게 마무리된 탓인지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밝았고 서로 마지막 덕담을 나누고 통화를 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행운이 모두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보다 2개월 앞선 지난 8월, 모 지역 가맹점주 B씨가 폐점을 알려왔었다. 그도 앞서 소개한 점주 A씨처럼 올해 막 30에 접어든 젊은이였고, 열심히 가게를 운영하여 A씨와 우리 브랜드 매출 순위 1, 2위를 다투었던 점주였다. 그러나 코로나 장기화로 촉발된 자영업 생태계의 변화를 그도 이겨내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는 심야 영업을 넘어 철야 영업이라는 극한의 방법까지 선택했지만, 바닥 권리금조차 건지지 못하고 폐점했다.

고육지책의 끝

코로나 장기화로 비대면 외식 시장, 즉 식사용 배달 음식 시장이 나날이 커지자 코로나 영업 제한에 직격탄을 맞은 외식업종의 접객 전문 업소들은 물론 여행업 등 비 외식업 종사자들까지 너도나도 배달 외식 시장에 뛰어들면서 배달 음식 시장이 과열되기 시작했다. 과열된 시장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건 영세한 규모의 이름 없는 브랜드일 수밖에 없다.

이면 도로의 소규모 배달 전문 음식점들은 치열한 경쟁으로 주간에 매출이 떨어지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새벽 시간까지 영업을 연장하는 고육지책을 선택한다. 점주 A씨도 그런 전철을 밟았다. 그가 운영하는 가게의 원래 영업 종료 시각은 자정(오전 0시)이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한 작년부터 새벽 3시까지 영업을 연장했고 길어진 영업시간을 혼자 감당할 수 없자 그의 부모님까지 나서 주간 영업을 대신 해주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나마 A씨의 사정은 나은 편이었다. 점주 B씨도 A씨처럼 영업시간을 새벽 시간까지 조금씩 연장하였지만, 그에게는 A씨처럼 도와줄 부모가 없었다. 오로지 젊은 부부 둘이서만 그 긴 영업시간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언젠가부터 아예 오후 5시에 개점하여 새벽 5시까지 영업하는 '철야'를 선택했다.

물론 영업시간 연장이나 경쟁을 피한 철야 영업 전략은 분명 이전보다 조금은 매출을 올리는 효과를 가져다주긴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가족과 자신을 희생하는 고육지책이란 거였다. 가족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대에 활동해야 했던 이들에게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이 두 명의 젊은 사장들은 둘 다 작년에 결혼했다. 그리고 B씨는 아이까지 낳아 인구절벽 시대의 애국자(?)가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부부 둘이서 운영해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소규모 영세 자영업의 특성상 어린 아기를 가게에서 보살피며 운영했지만, 철야 영업 때는 그럴 수 없었다. 결국, B씨는 심야에 홀로 가게를 운영했고 아직 신혼인 이들은 서로 깨어 있는 얼굴 보는 시간조차 버거운 상황에 부딪혔다. 

"집에 가면 잠을 못 자요... 어떻게 해서든 자야 하는데 아기도 보고 싶고. 그래도 부부인데 아내하고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하다 보면 점심이 다되어야 겨우 자게 돼요. 그리고 오후 4시에 일어나야 해서, 이러니 잘 자야 하루 3, 4시간 자게 되더라고요... 온종일 머리가 멍해요..."

몇 달 전 B씨가 내게 털어놓은 탄식이다. 이런 모진 상황에서도 당시 B씨는 폐업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 했다. 어릴 적 단순직 아르바이트에서 시작해 주방까지 책임지는 점장에 오르는 등 나이에 비해 외식업종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그는 이번 가게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최초의 가게라며 애정이 남달랐다. 그런 그가 견디다 못해 폐점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최근 지인의 소개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구조조정'이란 그럴 듯한 말 뒤에 숨겨진 진짜 문제
 
전국실내체육시설비대위, 한국자영업자협의회,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손실보상심의위원회에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당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게 100% 손실보상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실내체육시설비대위, 한국자영업자협의회,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손실보상심의위원회에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당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게 100% 손실보상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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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지난 13일 내놓은 '2021년 9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1년 전보다 취업자 수는 67만여 명이 증가한 2768만 3천 명이었으나 자영업자 수는 오히려 2만6000명이 감소한 552만8000명이라고 한다. 이는 동월 기준으로 1993년 이후 28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라고 한다. 그리고 외환위기(1997년) 때도 굳건히 유지되었던 20%대의 자영업자 비중(전체 취업자 중)이 통계작성 이래 처음으로 19.97%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번 통계청의 보도자료가 아니더라도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자영업계 상황은 늦가을 나뭇가지에 겨우 매달려 있는 마른 잎사귀처럼 위태롭기 그지없다. 당장 필자의 회사도 가맹점들의 매출 하락과 연이은 폐점으로 심각한 경영 위기에 빠졌다. 그런데 현재까지 우리 회사는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1차부터 4차까지는 황당한 매출 비교로(2019년 말에 설립한 회사인데 2019년과 2020년 매출 비교), 5차는 아예 지원 대상 '업종코드'에 오르지도 못했다. 바로 우리 회사가 정부 지원 정책의 대표적 '구멍'이었던 것이다. 필자의 핸드폰으로 전송된 지원책이라고는 오로지 저금리를 강조한 '대출'이었다.

혹자는 요즘 자영업계의 위기 상황을 두고 '필연적 구조조정'이란 표현을 쓰며 힘들지만 언젠가 터질 상황이 마침 지금 도래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참 냉정하고 씁쓸한 주장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 '구조조정'이라는 그럴듯한 말 뒤에 벌어질 일이 진짜 문제라고 본다. 앞서 언급한 그 두 젊은이는 일자리의 질은 논외로 하더라도 취업을 할 수나 있었다. 그러나 중장년들에게 그런 기회는 없다.

최근 용접 기술을 배워 재취업을 했다가 한 달 만에 그만두어야 했던 어느 50대의 재취업 실패담을 들었는데, 그것이 한 예일 것이다. 결국 중장년에겐 더 많은 빚을 지고 또 다른 자영업으로 갈아타거나, 자영업자 등에 올라타 승승장구하고 있는 쿠팡이나 배달의민족 같은 대형 플랫폼 기업에 물류 노동자로 종속되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선택지다. 그러니 이들의 좌절과 분노가 가벼울 리 없다.

쌓여가는 좌절과 분노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이것이 실현된다 해도 자영업 상황은 이전처럼 회복되기 어렵다고 본다. 정부는 '손실보상'을 논하지만, 이 또한 부실하다는 것이 자영업계의 중론이다. 부채만 잔뜩 짊어진 자영업자들은 이제 막다른 길에 몰렸다. 그런 상황에 놓인 이들이 행복할 리 없다.

이들의 불행은 우리 사회에 파열음을 낼 것이 분명하다. 인터넷에서 검색된 어느 자영업자의 이 글처럼 말이다.

"헬스장, 노래방, 호프집 등등 힘없는 소상공인에 대한 제한 조치는 쉽고 과감한 것 같다. 표가 많거나(종교), 돈이 많거나(대기업), 힘 있는(의대생) 이들에게 비굴하리만큼 관대하다. (중략) 차가운 분노가 끓는 아침" - 필명 오프더레코드의 브런치 글 중에서

태그:#자영업, #폐업, #손실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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