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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미디어아트의 세계
▲ 정림사지 입구에 설치된 빛의 조형물  디지털 미디어아트의 세계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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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가 미디어아트를 만나는 순간 

"여기 한반도의 서남부에 있던 백제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세련되고 우아한 나라 백제, 백제인이 꿈꾸었던 이상의 세계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신비롭고 찬란했던 백제의 이야기가 여기서 시작됩니다."

주차장에서 정림사지 정문 쪽으로 가는 오솔길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이런 감미로운 나레이션이 들렸다. 설치된 메쉬 스크린에서는 나레이션과 어울리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세월의 진가가 녹아 있는 문화재가 있고, 부여 사람들에게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부여 정림사지에서 '사비, 빛의 화원'이라는 테마로 지난 12일부터 11월 13일까지 33일간 조용한 축제를 시작했다.

정림사지와 오층석탑은 부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재이다. 그곳에서 미디어아트의 거장 이이남 작가의 빛과 영상을 입혀 사비백제 시대와 현대의 첨단 예술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문화재에 대한 '고리타분하다'는 고정관념은 정림사지에서 디지털 IT 미디어아트를 만나는 순간 깨져버린다.
 
사비, 빛의 화원이 열렸다.
▲ 정림사지5층석탑과 미디어아트 사비, 빛의 화원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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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란 사진과 영상 등의 신기술을 활용한 융합 예술이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였던 백남준이 열어놓은 융합 예술의 세계를 이이남 작가가 미디어로 확장하는 중이다. 현대 작가들의 화폭은 종이에 머무르지 않고 시공을 초월한 세계를 지향한다.

천오백년의 세월을 지키고 있는 정림사지와 5층 석탑이 미디어아트의 화폭이 되었다. 문화재청과 부여군, 충청남도가 주최하고 충남 정보 문화 산업 진흥원에서 주관을 했다. 빛과 영상, 음향의 종합 디지털 IT 미디어를 문화재에 융합해 감수성을 이끌어내는 시도였다.

아직 팬데믹 상황이 종식이 되지 않은 상태라 예약을 통해서만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방역수칙 준수 때문에 정문을 통과해서 관람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점은 감수해야 한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백제의 옛 가람터가 되살아난 듯 여러 가지 조형물들이 반겨준다. 백제의 대표적 문화재인 규암면 외리에서 발굴된 산수무늬 벽돌 문양의 조형물과 연꽃 도깨비 무늬 12면 주사위도 보인다. 그동안 보도블록 같은 평면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백제의 문양들에게 빛을 연출하니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조형물마다 형형색색의 빛을 발해 가을밤의 분위기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천오백년의 정적 속에 잠겨 있던 정림사지가 미디어아트를 만나는 순간 깨어났다. 화려했던 사비백제 예술의 세계를 빛으로 이야기할 준비가 되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을 감싸안은 미디어아트
▲ 산수무늬 병풍이 된 미디어아트 정림사지 5층 석탑을 감싸안은 미디어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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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릴것 같지 조합들이 미디어아트와 화학적 결합으로 아름다운 춤사위로 살아났다.
▲ 애니메이션 크루 비보이 공연과 미디어아트, 정림사지5층석탑 어울릴것 같지 조합들이 미디어아트와 화학적 결합으로 아름다운 춤사위로 살아났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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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에선 부여에 살고 있는 동남 아시아인들의 대표들과 부여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 농부가 부여의 인사들과 손을 잡고 빛의 축제를 여는 세리모니를 연출했다. 탈권위적이고 예술적으로 진행한 이벤트가 정림사지를 압도하며 박수를 받았다.

곧이어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현란하지만 품격이 있는 빛의 세계가 펼쳐졌다. 퍼포먼스엔 백제인들이 현대의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2년간의 팬데믹 상황으로 누리지 못했던 문화적 갈증이 정림에서 빛으로 깨어났다.

산수무늬는 병풍이 되어 5층 석탑을 감싸 안았고 꽃비가 내려 세상을 적시고 황금새가 날아왔다. 순식간에 금색 옷을 입었다가 신비한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 변검술사 같은 빛의 마술이 5층 석탑에서 벌어졌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백제 석공들이 정을 두드려 조성한 이후로 이런 호사스러운 세월을 처음 맞는 것일 테다.

부여 정림사지에 찾아 온 미디어아트의 세계는 5층 석탑에서 제대로 빛을 발했다. 전시와 공연의 경계를 넘어 조근조근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백제의 유산이며 세계의 유산인 정림사지에서 제대로 놀았다.

미디어아트에 공연까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개막식 초청 공연으로 애니메이션 크루라는 비보이 댄스 그룹이 등장했다. 고고한 문화재와 디지털 미디어아트, 비보이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었다. 비보이들은 백제의 미마지 탈을 썼다. 미디어아트가 이끄는대로 5층 석탑의 변신에 따라 절도 있고 유연한 동작으로 춤사위를 이끌어 냈다.

어색할 것 같은 조합이 미디어아트와 화학적 결합이 되자 시공을 초월한 춤사위로 훨훨 날았다. 문화 강국의 유전자는 시대를 초월하는 강력한 연결 고리가 되어 정림(定林)의 세상을 지배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밤이어었다. 천오백년의 정적을 깨운 미디어아트의 세상은 백제의 후예들의 혼을 쏙 빼놓았고 자긍심을 느끼게 했다.
 
가을 향기가 깊어가는 곳에서 품격있는 백제의 이야기를 들을 있는 공간
▲ 배우 조진웅의 목소리가 있는 감미로운 정림사지 솔받길 정원 가을 향기가 깊어가는 곳에서 품격있는 백제의 이야기를 들을 있는 공간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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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주차장에서 내려 솔밭길을 지나 정문으로 향하는 길에도 디지털 아트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조성해놓았다. 백제 역사를 자연 속에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금동대향로 속의 동물 조형물을 설치했고 디지털 아트를 감상할 수 있게 해놓았다. 솔밭길에서 조진웅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백제의 옛 이야기는 감미로웠다. 가을 향기가 묻어나면서도 품격이 있는 내레이션은 가슴 속에서 뭉클함을 솟아오르게 했다. 이곳도 놓치면 안 된다.

11월 13일까지, 오후 5시부터 전시를 하고 미디어아트 공연은 오후 6시 30분, 9시30분 2회 진행한다고 한다. 천오백년의 백제가 살아서 움직이는 정림의 세계로 여러분들을 초대한다. 

*관람문의 070-7772-7343
홈페이지 www.sabi-lightgarden.kr
주소 충남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태그:#미디어아트, #정림사지, #충남 부여 , #사비, 빛의화원, #이이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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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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