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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수술을 했다.

오른쪽 허벅지에 불룩하게 뼈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아이가 고3 수험생이던 2년 전 여름이었다. 통증도 조금 있었지만 약을 먹으면서 견딜 수 있는 정도면 입시 이후에 수술을 해도 문제없을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어 수술을 미뤄두었다.

대학 새내기가 되고는 과 특성상 연이어 현장에 투입될 일이 많았다. 방학을 기다렸지만 방학엔 학과 일정이 더 바쁘게 돌아갔다. 그렇게 2년을 절뚝이며 살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섰는지 학기 중임에도 서둘러 수술을 강행하게 되었다. 다행히 수술은 어렵지 않았고 입원 기간도 생각보다 짧았다.

문제는 퇴원 후였다. 막내는 아직 온전히 걷지 못해 당분간 목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뼈를 깎는' 아픔을 겪었는데 하루아침에 회복이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주 이틀 대면 수업이 있다.

등교를 위해서는 버스와 지하철을 몇 번씩 갈아타야 한다. 버스 오르내리는 것도 문제지만 환승 지하철역은 환승거리가 꽤 길어서 목발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에게 무리라는 생각에 퇴원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오랫동안 자차 운전을 해왔지만 차가 없어진 이후로 지금도 크게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지만 이럴 때 한 번씩 차가 아쉽다.

남편의 직장과 아이의 학교는 시, 도를 넘나드는 수십 키로 정반대의 거리, 남편을 출근시키고 등교를 시키는 건 애초부터 계획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방법은 내가 새벽같이 남편을 출근시키고 집에 와서 다시 아이를 픽업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새벽 4시부터는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고민 끝에 결국 하룻밤 남편이 회사에서 자고 전날 내가 차를 가져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이를 강의실에 들여보내고 학교 앞 카페에 들어왔다. 목발을 짚은 아이의 뒷모습은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지켜보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생전 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스물한 살 아이의 발걸음도 썩 자연스럽지 못하고 위태로웠다. 그래 봐야 겨우 며칠일 텐데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그저 까마득하기만 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불편한 몸이 되었다는 것으로 인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 모두가 함께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내가 비장애인으로 불편 없이 살다 보니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에 참 무심하게 살다가 불편함을 느끼고 나서야 이런 깨달음을 갖게 된다니 그 무심했음이 참 부끄럽다.

지난 봄 지역 모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 십여 명과 치유의 글쓰기를 진행했다. 수강생 대부분이 글쓰기를 어려워했고 센터의 강요에 가까운 설득으로 참여한 경우였다. 첫 수업에서 센터의 사업이니 어쩔 수 없어서 참석했다는 표가 역력히 드러났다. 그런 상황에서 막무가내로 수업을 이끌어 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과거에도 나는 교도소 수감자들과 글쓰기 수업을 진행해 본 경험이 있다. 그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과 먼저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벽을 두껍게 쌓아놓은 상태로는 스스로 단 한 마디의 진심도 들여다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하는 나 역시도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오로지 글쓰기의 방식만 가르친다고 해서 쓰고 싶은 글이 나올 리가 만무하다.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몸보다 마음이 아픈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글쓰기가 그런 나의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가감 없이 얘기하다 보면 그분들의 상체가 점점 앞쪽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본인들이 볼 때 건강하고 완벽하게만 보이던 선생도 저렇게 결핍이 많지만 밝게 긍정의 힘을 뿜어가며 살고 있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이쯤 살아보니 만 명의 사람이 모이면 만 가지의 고민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중의 많은 사람이 몸이든 마음이든 한 번쯤 앓지 않고 살아간다고 누가 장담 할 수가 있을까. 놀라운 것은 그 십여 명의 수강자 중에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후천적 장애인들이었다.

제일 어려서 장애를 입은 사람이라고 해봐야 초등 저학년 정도였다. 그렇다면 지금 비장애인이라고 영원히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잠재적 장애인으로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비껴갈 수 없는 사실 앞에 한 번쯤은 마주 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 아침 겪어보고 나서야 깨달음이 온 것처럼 숙연해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한편으로 그간 무심하고 냉정했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참 많이 부끄럽다.

태그:##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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