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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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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참나무 숯이 대접받는 것은 숯 굽는 데 최상급으로 여기는 가시나무가 없기 때문. 강원도에서는 참나무로 굽는 숯을 '참숯'이라 여긴다. 그러나 전남 완도에서는 붉가시나무로 만든 숯이라야만 '참숯' 대접을 받는다. 

대대로 숯을 굽는 장인이 있다. 전남 완도군 군외면 대야1구에 사는 정무삼씨가 그 주인공. 그는 숯 장인으로 대한명인 반열에 올랐다. 올해 79세. 여든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건장하다. 지난 5일 대야마을 노인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해까지 집 근처 숯가마에서 대대로 명품 숯을 구웠는데, 올 초부터는 쉬고 있다고. 노인회장직을 맡은 터라 매일 노인회관에 나와서 일을 하고 계신다. 다리에 힘이 없고 이제는 힘이 부쳐 지난해까지 조금씩 만들었단다. 여전히 그가 만든 숯을 찾는 사람 때문에 걱정이다. 

완도는 청해진 장보고가 상왕산 붉가시나무로 구운 백탄으로 당과 무역을 했을 정도로 숯의 역사가 길다. 숯을 굽고 마무리 가공하는 방법의 차이로 흑탄, 백탄이 나눠진다.

흑탄은 숯을 구운 후 아궁이를 흙으로 막아 서서히 식혀 표면이 검고, 백탄은 마지막 가마 속에 공기를 넣어 1000℃ 이상의 고온으로 달군 후 꺼내 재를 덮어 재빨리 식혀서 숯 표면 자체가 검은 바탕 위에 흰 기운이 돈다. 같은 무게일 경우 백탄이 흑탄보다 흡착 면적이 넓어서 공기 정화, 습도 조절 효과가 좋다. 음이온, 원적외선 발생률도 높다고. 

우리나라는 약 2600년 전부터 숯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조선시대는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해 공신들이 죽었을 때, 조정에서는 부의품(賻儀品)으로 숯을 하사하기도 했다. 

숯을 굽는 데 사용되는 나무는 충청지방이나 강원지방에서는 참나무로 굽지만,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완도에서 유일하게 상왕산 붉가시나무로 숯을 구워 공납한 내용이 있다고.

그는 20대 초반 군대를 제대한 이후, 부친과 함께 숯 장인으로 지금까지 전통을 이었다. 상왕산에서 생산하는 상록활엽수는 명품 숯을 만드는 데 최고란다. 숯을 굽는데 필요한 나무는 붉가시나무를 비롯해 동백나무 등 사철 푸른 나무가 제격이다. 

정 명인이 생산하는 백탄은 쇳소리가 날 정도로 단단하고 일반 숯에 비해 두 세배 정도 오래 타며 불의 온도 역시 배가 높다. 1970년 대만 해도 마을 사람 대부분이 숯 굽는 일에 전념했다. 

젊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도시로 떠나면서 숯 굽는 사람도 줄어들었고, 정 명인은 가업을 이어 이것이 천직이라 여기며 여태 숯 굽는 일에 매진했다고. 완도에는 품질 좋은 숯 재료가 많다. 이렇게 널려있는 나무가 숲 가꾸기 사업으로 인해 잘린 그대로 버려지고 있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대를 이어 3대째 숯을 굽고 있는 사람이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지금은 대야 수원지가 됐지만, 그 골짜기는 대수골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조상 대대로 살면서 숯을 구워왔던 정 명인은 그곳에 상수원이 만들어지면서 아랫마을로 이사를 했다.

정 명인은 "참나무 숯이 2시간 가면 붉가시나무 숯은 세 배 더 오래 탄다"고 말한다. 지금은 집 근처 조릿대 밭에 봉분만 한 가마터 하나가 있고, 올 초까지 한두 달에 한 번씩 가마를 지폈다. 나무를 채워 불을 놓고 구멍을 닫아놓는데, 숯이 되려면 보름 이상 걸린다. 대야리에서 30분 정도 오르면 하늘을 찌를 듯한 붉가시나무 숲이다.

숯은 '신선한 힘'이라는 뜻을 지닌 우리말이라고 한다. 숯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무엇일까? 아마 아기를 낳으면 대문에 걸어 두었던 금줄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도 있고, 간장을 담글때 메주 위에 동동 떠 있던 숯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겨울철 밤이나 고구마를 맛있게 구워 내던 화로 속의 숯도 생각날 것이다.  

숯은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일상생활에 두루 활용됐던 친근한 존재였다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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