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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108건 속 피해자 죽음... 연인 관계인 남성 폭력·협박 치명적
판사 따라 복불복인 양형 지적... 국회·지자체·여가부 등 책무도 강조


'열흘에 한 명.' 책을 읽는 내내 부닥치게 되는 통계 수치다. 초반에 '이게 실화냐?'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중반에는 '과연 이것뿐일까?'라는 의심이 들고, 책을 덮을 때쯤이면 '단 한 명도 안 된다'라고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지난 3년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교제살인에 희생당한 여성들 숫자다.

<오마이뉴스> 이주연·이정환 기자가 2020년 11~12월 19차례에 걸쳐 보도한 '교제살인' 특별기획 기사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두 기자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서로 사귀다가 상대를 죽인 사건' 판결문 108건을 분석했다. 1362쪽에 달하는 판결문에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죽임을 당한 피해자들이 말없이 활자로만 남아 있다.
 
책 '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이주연·이정환 저) 표지 이미지
 책 "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이주연·이정환 저) 표지 이미지
ⓒ 오마이북
 

◇최소한의 숫자 = "세계는 수치 없이 이해할 수도, 수치만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한스 로슬링이 책 <팩트풀니스>에서 쓴 말이다.

두 기자는 이 말을 인용하며 108명은 '최소한의 숫자'라고 강조한다. 취재를 시작한 2020년 1월 당시 가장 최근 공식 통계인 경찰청 자료에는 3년간 데이트폭력 사망 여성이 51명으로 집계됐다. '한국여성의 전화'가 언론에 보도된 살인 사건을 분석했더니 2017년 한 해에만 85명이라고 발표했다. 틈이 큰 이유를 찾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 죽음을 제대로 짚어낼 공식적인 숫자조차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손품 발품 팔아 찾아낸 것이 판결문 108건이다.

2019년 12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시행으로 여성에 관한 폭력범죄 통계를 국가가 통합적으로 구축하고 공표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2021년 3월까지도 젠더폭력에 관한 국가 통계는 없다.

◇왜 교제살인인가 = "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는 무대책·무관심·망각을 눈감아주고, 완충해주고, 흐리게 하고, 가장하고, 회피하고, 심지어 장려하는 거짓말들을 끊어낸다. 호명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호명은 분명 중요한 단계다." 세계적인 여성운동가 리베카 솔닛이 책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한 주장이다.

두 기자는 108건 판결문을 분석하면서 비극이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대부분 '살인 전조'가 있었다. 애인이라는 남성이 이유 없이 때리거나, 자기 목숨을 무기 삼아 협박을 해대며 피해자들을 옭아맸다. 단 한 번의 폭력으로 죽음에 이른 사건도 있었다. 그렇기에 데이트폭력은 그 자체로 교제살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귀던 사람이 괴한으로 돌변하고, 나를 너무 많이 알아 벗어날 수 없고, 주위에서 아무도 지켜줄 수 없을 때 느끼는 공포가 얼마나 치명적이고 심각한지 알릴 수 있는 이름이 필요한 것이다. 데이트 맛집, 코스, 비용 등 낭만적으로 소비돼온 데이트라는 말로는 한계가 있다.

또 데이트 하면 젊은이들을 떠올린다.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존재하는 말이다. 열흘에 한 번꼴로 발생한 교제살인 사건 피해자는 특정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았다. 교제 남성에게 죽임을 당한 108명 피해 여성 중 60대 이상이 6명, 50대 26명, 40대 33명으로 중년 이상 여성이 60%를 넘었다.
 
지난 2020년 11월 11일 양산여성회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경남지방경찰청 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양산 교제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대응을 규탄하면서 여성폭력방지기본조례 제정을 촉구했다.
 지난 2020년 11월 11일 양산여성회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경남지방경찰청 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양산 교제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대응을 규탄하면서 여성폭력방지기본조례 제정을 촉구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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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도 많다 = 지금도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데이트폭력을 검색하면 관련 기사들이 쏟아진다. 특히 10월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각종 통계자료가 쏟아지고 있다. 의원실마다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구속수사 반토막, 솜방망이 처벌, 강력한 처벌 필요 등을 지적한다.

하지만 국감용일 뿐 데이트폭력을 방지할 의지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책에는 국회가 그동안 어떻게 직무유기를 해왔는지 밝히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데이트폭력 관련 법안은 임기 만료 폐기됐고, 2020년 11월 윤영석(국민의힘·양산 갑)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아직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넘겨지지도 않은 상태다. 스토킹처벌법은 1999년 첫 발의 22년 만인 올해 3월에야 통과됐다.

두 기자는 또한 미국 '덜루스 모델'과 스웨덴 등 선진 사례 등을 제시하며 대한민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책무를 묻는다. 무엇보다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여성가족부를 겨냥해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점잖게 따진다. 판사의 성인지 감수성에 따라 판결 형량이 복불복인 법원 양형 문제는 서둘러 바로잡아야 할 과제다.

4부로 나뉜 책은 교제살인 사건 실체에 접근하고자 하면서 더는 이런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대안을 찾는 과정을 거듭 풀어내고 있다. 마지막 장 '나는 죽어서야 헤어졌다'에는 108명에 관한 기록이 짧게 정리돼 있다. '2016년 1월 16일 28세 여자의 삶이 끝났다'로 시작해 '살아 있었다면 여자는 지금 33세다'로 끝맺는 식이다. 108명 모두 똑같은 서술이다. 살아 있었어야 할 나이에 그들은 지금 이곳에 없다.

누군가와 교제 중인, 앞으로 교제할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연애의 참견이 아니라 연애의 필독서라고 할 만하다. 오마이북. 280쪽.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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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 - 교제살인, 그 108명의 죽음

이주연, 이정환 (지은이), 오마이북(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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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기사제휴 협약에 따라 경남도민일보가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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