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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스포츠경향>에 김세훈 기자의 '학생선수가 당신 자녀라도 이런 탁상행정을 일삼겠나'라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교육부가 학생선수들의 훈련이나 대회출전 허용 일수(2021년 기준 초등 10일, 중학교 15일, 고등 30일)를 줄이는 것과 최저학력기준에 미도달한 경우 다음 학기에 대회출전을 제한한다는 내용에 대해 '탁상행정'이며 '역행 행정'이라는 인터뷰를 인용하여 '교육부가 없어져야 대한민국 교육이 바로 선다'라는 날 선 비판을 하였다.

사실 이 내용은 학교체육진흥법에 근거하여 이미 수년전부터 시행해온 교육부 정책이다. 연차적으로 인정결석 허용일수도 줄여갈 것을 예고하며 진행된 정책을 왜 이제야 뒤늦게 새롭게 시행하는 정책인 것처럼 비판하는지 의문스럽다. 그동안 '공부하는 학생선수' 정책을 차근차근 추진해온 교육부 정책의 일관성에 흠집을 내어 정책이 후퇴할까 우려스러운 마음으로 기사의 논리를 반박하고자 한다.

기사의 핵심은 '학생선수들의 꿈'이 운동선수가 되기 위한 것이고, '선수가 못될 경우'에도 스포츠 관련 직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즉 '일반학생 절반 이상이 외면하는 정규수업에 학생선수를 집어' 넣을 것이 아니라, 교내 훈련 인프라를 개선하고, '학생선수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으로 학습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내 훈련 인프라가 개선된다면 좋은 일이지만, 학생선수 전용 훈련시설이라면 대다수 학생들의 스포츠활동을 외면하는 주장이다. 기사에서 주장하는 '학생선수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은 아마도 일반학생과 다른 학생선수들을 위한 별도의 학습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별도 학습프로그램의 핵심은 당연히 학생선수들의 학습부담을 줄이는 것과 훈련 및 대회출전 등을 용이하게 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학생선수들의 꿈인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주장하는 것은 대다수 학생선수의 직업선수에 대한 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극소수 스타가 될 아이들의 학업 부담을 줄여주도록 하자는 것이다. '스포츠에서 스타가 왜 중요'한지를 논증하는 부분에서 이러한 생각이 드러난다. 스타가 나와야 시장이 형성되기 때문에 해외 빅리그 등 거대 스포츠 시장에 진출하는 스타를 길러야만 그들의 활약에 힘입어 스포츠 시장이 커진다는 논리다.

스타의 환상에 가로막힌 저변 확대 : 전문체육 스포츠 시장의 한계

물론 우리나라 선수가 해외리그에서 활약하는 것이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스포츠 스타의 경제적 가치가 자본주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스포츠 스타의 가치에 우선하여 교육과 학업의 가치는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중요한 가치다. 오히려 교육과 학업의 가치는 한 사람의 인격과 내면의 풍부한 지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에 결과적으로 스포츠 스타로서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요인이다. 학업을 등한시하고 운동에 '몰빵'해서 탄생한 스포츠 스타의 가치는 돈을 버는 수단일 수는 있으나,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가치를 높이지 못한다.

그렇기에 학생선수시절부터 운동에만 매몰되어 성장한 스포츠 스타의 지속적인 성장과 가치는 제한적이다. 또한 스포츠 시장과 산업에 미치는 영향 또한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울러 스포츠 스타의 해외 진출이 그들의 상품가치를 높여주기는 하겠지만, 실질적인 국민들의 스포츠 소비와 스포츠 활동의 직접 참여에는 인과성이 떨어지며,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는 근거가 미비하다. 이것은 상품으로 소비되는 스포츠 스타와 국민들이 스포츠에 참여하며 소비하는 스포츠가 유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학교체육에 있다. 전체 학생의 1%도 안되는 운동부 학생선수 중에 실제 직업선수가 되는 확률은 더욱 바늘구멍이다. 이 가운데 탄생한 스포츠 스타들이 스포츠 산업과 시장을 견인한다는 주장은 비약이다.

스포츠 시장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요인은 일반 국민의 스포츠 활동 참여와 소비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이른바 스포츠의 저변 확대이다. 자신이 즐기는 스포츠 종목의 스타에 대한 스포츠 팬덤문화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다. 미국 같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스포츠 산업 선진국은 그러한 팬덤문화의 저변과 확장성을 기반으로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과 팬덤문화를 창출한다. 즉 학창시절 스포츠 활동과 더불어 학생으로서 지성을 추구해온 인문적 소양의 기반 위에서 팬 자신이 직접 즐기는 스포츠 종목 스타에게 환호하고, 존경하고, '엘리트'라는 칭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 스타의 자질을 경기력에 국한된 가치만으로 이해하는 기자의 관점은 근시안적이다. 국가주도로 스포츠 영웅을 만들던 시절 학생선수가 운동에 전념하도록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학업부담을 줄여주자는 주장과 같다. 이제 스포츠 산업과 시장을 말한다면 전문체육에 의지하는 스포츠의 토양을 갈아엎어야 한다. 그런 시장에서 성장한 스포츠 스타는 그저 운동기능이 뛰어난 운동선수일 뿐이다.

숭문배무 사상은 달리 표현하자면 주지 교과 중심의 교육과정과 입시제도 등 우리나라 교육체제 전반의 뿌리가 깊다. 이 지적에 대한 김 기자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그 해법에서 '스포츠를 운동으로, 교육으로만 바라본다'라는 시각의 비판에서 찾는 것은 모순이다. 숭문배무 사상에 대한 비판은 국영수 과목 등 주지 교과를 중시하고, 체육을 포함한 비주지 교과를 중시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김 기자의 논리대로라면 운동선수가 '적당한 운동과 적당한 학업을'- 사실상 학업을 줄이고 훈련과 대회출전을 자유롭게 – 하자고 할 게 아니라 운동선수가 될 학생선수에게도 공부를 제대로 시키자고 해야 한다. 학생선수의 공부가 부족한 이유는 공부 하지 않은 결과이다.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는 학생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에도 공부하지 않은 결과를 숭문배무 사상에서 찾는 것은 공부가 하기 싫어 운동하려는 아이에게 핑계거리를 주는 논리와 다를바 없다.

애초에 모든 학생이 공부를 기본으로 하면서 과외활동으로 스포츠 활동을 해왔다면, 운동선수로서 숭문배무의 열등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 오히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서 스포츠정신을 발판으로 사회 인재로 성장하고, 때론 탁월한 경기력으로 운동선수의 길로 진출해 왔을 것이다. 그런 자기관리와 리더십을 함양하는 곳으로 운동부가 장려되었기에 미국의 '교육의 일부인 스포츠', 일본의 '문무양도'와 같은 교육과 운동부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스포츠 저변 확대를 가능케했다. 또한 이것이 스포츠 산업의 부흥과 강대국의 발판이 되는 스포츠 문화를 만들고 있다.

아들, 딸이라고 생각한다면 운동에 '몰빵'시킬 수 있나

기사의 주장과는 달리 교육부는 "영하 10도, 영상 40도에서" 축구 해야 한다고, "얼음판에서, 프라이팬에서 부상 위험을 무릅쓰면서 몸을" 던지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국민 누구도 경기력을 향상해야 한다고, 국제대회에서 메달 따야 한다고 강요한 적 없다. 교육부에서는 오히려 "날씨 좋고 컨디션이 좋은 봄, 가을에 대회를" 여는 것을 권장할 것이다. 단지 학생선수들이 공부하는 시간에 방해가 되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무리한 훈련으로 그들의 학업에 지장을 초래해선 안 된다는 취지이다.

기사는 "학생선수에게도 학업이 중요하다는 데는 동의"하면서 한편으로 학생선수들의 꿈을 선수가 되는 것으로 한정하고, 이들이 중도에 포기하거나 탈락했을 경우 스포츠 관련 직업을 갖기를 바란다고 규정짓는다. 어쩌면 이것은 학생선수의 삶에 대한 무리한 규정짓기의 오류가 될 수 있다.

학생선수는 운동선수로서 꿈을 포기했을 때부터 이미 패배 의식과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운동부의 억압과 폭력 피해를 이유로 운동을 그만둔 경우 운동부에 대한 아쉬움은 물론, 긍정적 인식이나 기억을 갖기 쉽지 않다. 학생선수를 등골 휘게 뒷바라지한 학부모들은 운동에 '몰빵'한 것에 대해 후회하며 자식의 새로운 진로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스포츠 관련 직업은 운동을 그만두고 쉽게 얻을 수 있는 만만한 직종이 아니다. 즉 거의 공부만 해온 스포츠 관련 직업 학생들이 그들의 경쟁자이기에,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도 학생선수는 반드시 공부와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동하면서도 틈틈이 공부해오지 않았다면 경쟁하기 쉽지 않을 일이다.

어차피 스포츠 스타로 성공할만한 아이들은 스스로 재능을 보이기 마련이고, 스스로 성장해 간다. 지도자의 섣부른 지시나 과도한 훈련이 오히려 스타로 성장할 아이의 가능성의 싹을 자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더 크고 위대하게 성장할 미래 스포츠 스타들의 가능성을 조급함 때문에 일찍부터 꺾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생선수들을 위한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은 바로 그 조급함과 '몰빵'의 빌미를 주는 일이지도 모른다.

기자가 언급한 '일반학생 절반 이상이 외면하는 정규수업'이라는 말은 우리 교육 현장에 대해 지나치고 섣부른 일반화이다. 물론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수업 참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 현실이 어찌 학생선수들이 학업을 등한시해도 되는 이유이며, 학업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이유가 될 수 있는가. 모든 학생이 집중하는 수업이라면 좋겠지만 그런 수업은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일 뿐이며, 전체주의가 아니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학생선수 모두가 동일한 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운동을 이유로 학업을 등한시해도 되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은 학생선수들의 미래를 제한하는 일이다.

아이들은 스포츠가 좋아서, 스포츠를 잘하고 싶어서, 그렇게 참여하다 보니 스포츠를 업으로 하는 직업선수의 꿈을 꾸게 된다. 굳이 학생선수 단계에서 무리하게 직업선수 수준의 훈련 시간과 강도를 가져갈 필요는 없다. 그저 즐겁게 꿈꾸며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스포츠 정신을 배우게 하면 된다. 정상적인 학업으로 교양과 인성을 쌓으며 방과 후에 자신이 꿈꾸는 직업선수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재능이 드러나 그 길로 갈 수 있고, 재능이 없어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장하는 시기에 한 곳에 '올인'하게 하는 일은 나쁜 일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학교운동부를 전문 체육에 예속시켜 학생선수에게 운동에 '올인'하도록 조장해왔다. 한 번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해볼 기회가 없었다. 최근에야 조금씩 학교운동부를 교육으로 환원하는 노력이 이어져 무분별한 대회 참가와 훈련의 기간을 정한 것이다. 고교 기준 과목 평균의 30%(전체 평균 50점이면 15점이 최저학력점수)인 그야말로 최저학력 수준이라도 공부하게 만드는 교육부의 노력이 '탁상행정'이라면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학생선수들을 공부시키지 말고 아예 운동에만 전념하게 하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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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분야와 학교체육, 그리고 학교운동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현상과 그 배후의 구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언젠가는 변화해야 하고 또 변화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비판적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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