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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윤현태, 윤현진, 배영복, 심성택, 엄주원
 왼쪽부터 윤현태, 윤현진, 배영복, 심성택, 엄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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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울산·양산(삼산지역) 항일독립운동사를 탐구하는 지역사 연구가 이병길(보광중학교 교사)씨가 1914년 윤현태 등 당시 양산 유력자들 사진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소산(所山) 윤현태는 우산(右山) 윤현진의 형으로, 1914년 11월 14일 <조선시보>에 양산 유력자들과 함께 윤현태와 윤현진 사진이 실려있다.

윤현태는 동래부사 윤필은의 장자로, 구포(경남)은행 주주이자 백산상회 무한책임대표 사원과 백산무역 전무를 지냈다. 백산무역 삼 거두가 안희제, 최준, 윤현태였다.

일제강점으로부터 나라를 독립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다. 경남은행과 백산무역은 중국 상해 임정과 독립군 단체에 자금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백산무역에 국권회복단원과 대동청년단원이 주주로 있었다. 백산무역은 윤현태가, 경남은행은 마산지점장인 윤현진이 했다. 형제는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는 고리였다.

일제는 윤현태를 "키 5척 3촌 정도. 둥근 얼굴에 하얀 피부. 눈이 크고 코가 낮음. 농후한 배일사상을 품고 조선 독립운동에 가담할 우려가 있음"으로 파악했다. 사진의 인물과 같은 묘사였다. 일제는 윤현태가 "1919년 3월 중 안희제와 함께 동생인 경남은행 마산지점장 윤현진에게 수만 엔을 줘 조선 독립운동비로 상해 임시정부에 제공하게 한 혐의가 있음"이라고 했다.

1914년 신문 보도에 따르면 양산 제1류 부자는 상삼마을 김정훈, 매형 중부동 엄주원, 교리 유덕섭으로 수천 석 이상 대자산가였다. 제2류 부자는 윤현태 형제, 엄주원 자형인 전석준과 배영복, 소석의 정순모, 읍내의 심성택과 지상호였다.

이들 지주 자산가들은 구포(경남)은행과 백산상회에 투자하기로 하고 양산지역민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엄주원은 윤현진의 자형이고, 엄주태와 사촌이다. 그리고 김정훈의 매형이다. 김교붕은 김정훈의 숙부고, 전석준과 배영복은 엄주원의 자형이다. 양산의 자산가들은 1920년 양산청년회관을 신축할 때, 윤현태(340평)를 비롯해 이규한(446평), 엄정섭(546평), 엄우영(376평)이 부지 1천708평을 기부했다. 엄우영은 엄주태의 아버지고, 윤현진 사돈집 어른이다.

이병길씨는 "양산지역 자산가들의 일제강점기 사회적 역할을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며 "다만, 아쉬운 것은 이들 후손이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양산인들의 '백산상회, 구포(경남)은행 주주인 윤현태(1914)'와 상관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족보 등 자료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백산상회, 구포(경남)은행 주주인 윤현태(1914)
 백산상회, 구포(경남)은행 주주인 윤현태(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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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임시정부 재무차장 윤현진(1914년 일본 유학 중)
 상해 임시정부 재무차장 윤현진(1914년 일본 유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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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자산가 배영복(양산유치원 설립, 양산자동차 경영)
 양산의 자산가 배영복(양산유치원 설립, 양산자동차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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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자산가 심성택(1914년)
 양산의 자산가 심성택(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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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진의 매형, 양산의 부호 엄주원(1914년)
 윤현진의 매형, 양산의 부호 엄주원(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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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양산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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