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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을 기약하며 산수유 마을과 작별을 고하고, 기이한 나무가 근처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여주 남한강변 이포 쪽으로 차 머리를 돌려 나아가다 보면 백사면사무소에 닿기 직전 이천 반룡송이라는 표지판을 눈여겨보게 된다.

천연기념물 제381호로 지정된 나무라고 해서 깊은 산속 어딘가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을 줄 알았는데 주위에는 이제 막 수확을 끝낸 텅 빈 논두렁만 눈에 띈다. 일단 도로변에 마련되어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서 빗물이 꽤나 고여 있는 흙길을 따라 그 신비의 나무의 자태를 직접 친견하러 한발 한발 나아갔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긴 여름은 어느덧 종말을 고했고, 제법 선선한 공기가 온몸에서 느껴진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으며 마음은 더욱 포근해지는 듯하다. 근 2년간 지속된 역병으로 인해 우리 삶은 이전과 달라졌다. 특히 가장 폐부로 와닿는 변화라 하면 바로 여행이 아닐까 싶다.

해외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던 시절에는 약간의 여유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다. 당분간 그런 일이 힘들어졌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경기도의 매력을 다시금 고찰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거름냄새가 풀풀 풍기는 흙길을 10여 분 걸었을까?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듯한 반룡송 
 
수령이 850년에 가까운 반룡송은 높이가 약 4미터로 높진 않지만 가지가 옆으로 뻗은 모습이 신비로워 보인다.
▲ 이천의 명물 반룡송 수령이 850년에 가까운 반룡송은 높이가 약 4미터로 높진 않지만 가지가 옆으로 뻗은 모습이 신비로워 보인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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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오른편에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나지막한 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무속인들의 무속행위를 금지하는 팻말이 걸려있어서 이 나무의 신비함이 자자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소들의 배설물들로 인해 파리떼들로 불편함을 다소 겪게 된다.     

이윽고 가지가 사방에 뻗어 하나의 소나무가 아니라 마치 숲처럼 보이는 반룡송에 다다랐다. 어산마을의 광활한 논밭 한가운데 자리 잡았지만 겉에서 보았을 땐 도저히 하나의 소나무라 믿기 힘들 정도의 생김새다.

850년의 수령을 지닌 반룡송은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진가가 더욱 드러난다. 약 4m의 높이로 오래된 고목치곤 두드러지는 높이가 아니지만 하나의 몸통에서 부챗살을 펴듯 사방으로 뻗어 나간 나뭇가지의 위용이 정말 대단하다. 그 뻗은 모양새도 용이 똬리를 틀 듯 휘감기는 듯하다. 

그 광경에 한동안 넋을 잃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무껍질이 용비늘 같은 빨간색이고, 그 모습이 용이 하늘로 비상하기 직전 땅에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라 반룡송이라 명칭이 붙여졌고, 일만 년 이상 살아갈 소나무라 해서 만년송이라 불리기도 한다.      
 
반룡송의 가지는 용이 또아리를 틀듯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신비로움으로 인해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전설도 있을 정도다.
▲ 반룡송의 모습 반룡송의 가지는 용이 또아리를 틀듯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신비로움으로 인해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전설도 있을 정도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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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함을 넘어 신비함을 전해 줄 것만 같은 반룡송은 오랜 세월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신라 말기 풍수지리로 명성을 날린 도선 대사는 전국 팔도의 명당을 두루 찾아다니며 이천과 함흥, 계룡산 등지에 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함흥에는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태어났고, 계룡산에는 정감록의 저자 정감이 나타났다.

도선이 심은 나무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하고, 그 영험한 기운으로 인해 최근까지 반룡송 앞에서 굿을 하는 등 무속행위가 성행했었다. 수백 년 동안 다른 나무들은 위로 성장을 거듭하는 동안 반룡송은 옆으로 성장하는 길을 택하면서 그 존재감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있다. 모두에게 시사점을 안겨주는 이천의 반룡송이다.

이천 도자기의 현재를 알 수 있는 예스파크 
     
도자기 장인 들이 모여 만든 마을인 예스파크는 거리마다 공방이 널려 있고, 사람들이 모여 편안하게 도자기를 살 수 있게 되어있다.
▲ 예스파크의 거리 풍경 도자기 장인 들이 모여 만든 마을인 예스파크는 거리마다 공방이 널려 있고, 사람들이 모여 편안하게 도자기를 살 수 있게 되어있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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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더불어 이천의 상징적인 존재는 무엇일까? 나중에 소개할 온천도 있겠지만 이천의 도자기가 그 명성을 세간에 널리 퍼트리고 있다. 경기도는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요인 덕분에 임금과 관청에 공급할 도자기를 만드는 공방이 광주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생겨나기 시작했다. 광주와 근접한 이천, 여주까지 널리 퍼지기 시작하며 현재까지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본래는 광주에 관요도 설치되는 등 이쪽 지방의 도자기가 명성이 높았지만 이천 신둔면 쪽에 도자기 장인들이 점차 모여들었고, 도자기를 굽는 흙과 뗄나무 등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점으로 작용했다. 이천의 신둔면 지역의 도예촌의 명성이 지금처럼 높아진 계기는 이쪽을 중심으로 열린 세계 도자 엑스포였다.     
 
도자기를 테마로 하는 마을 답게 길거리의 가로등도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었다.
▲ 예스파크의 가로등  도자기를 테마로 하는 마을 답게 길거리의 가로등도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었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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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천의 도자기를 제대로 알아보고 싶으면 가야 할 곳이 있다. 신둔면 지역에 200여 개의 예술공방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는 이천 도자예술마을, 藝(예)`s park가 바로 그곳이다. 겉에서 보면 경기도의 어느 한적한 교외 주택단지를 보는 듯한 구성이지만 건물마다 다양한 예술공방과 체험시설이 들어서 있어 한국 현대 도자기의 흐름을 오밀조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물론 대대로 전해져 오는 장인들도 있지만 우리의 도자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실생활에도 쓰일 수 있는 생활용품을 만드는 젊은 사람들의 공방들도 눈에 띈다. 

예스 파크의 규모는 웬만한 마을 두 개를 합친 정도로 크기 때문에 걸어서 돌아보기가 수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땐 이곳의 카페거리를 비롯해 마을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카페를 찾아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확실히 예술인들이 자리 잡은 마을이기에 그들의 까다로운 취향을 만족시키려면 높은 품질의 원두와 향과 맛이 뛰어나야 하지 않을까? 일단 근처에 보이는 고풍스러운 카페에 들어가 한숨 돌리기로 한다.     

겉으로 보았을 땐 특별한 게 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니 여기는 비엔나커피 전문점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인슈페너는 기본이고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오스트리아의 커피를 마셔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마을의 풍경은 덤이었다.

예술인들이 한데 모이니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사부작길, 가마마을, 별마을, 회랑 마을 등 예스 파크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마을의 거리를 걷다 보면 공방은 물론이고 길거리에는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다. 매년 9, 10월이면 이천의 설봉공원에서는 도자기 축제도 열린다고 하니 이천에서 도자기 축제가 열릴 때 함께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우리가모르는경기도 : 경기별곡> 1편이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서 절찬리 판매중입니다. 다음 브런치,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했고, 사진자료 등을 더욱 추가해서 한번에 보기 편해졌습니다. 경기도 여행은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와 함께 합니다.


태그:#경기도, #경기도여행, #이천, #이천여행,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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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 경기별곡2편>, 경기별곡 3편 저자. kbs, mbc, ebs 등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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