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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수 과정을 놓고 미국 정부가 다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민간인 차량을 자살폭탄 테러 차량으로 오인하는 바람에 10명의 민간인을 숨지게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궁지에 몰렸다.

가뜩이나 아프간 정부 붕괴 시점을 오판해 탈레반의 협조를 얻어 '대혼란' 끝에 철수하는 치욕을 겪은 상황에서 국내외적으로 냉혹한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실수가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라 조 바이든 대통령과 국방부를 상대로 미군 철수 과정에 대한 의회 조사가 필요하다는 공화당의 요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오인 공습은 미군 철수 시한을 이틀 남겨둔 지난달 29일 카불에서 일어났다.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 아프간 지부(IS-K)의 카불 공항 자폭테러가 발생한 뒤여서 추가 테러 위협에 대한 긴장감이 고조된 시점이었다.

미군은 카불 도심에서 흰색 도요타 세단 차량을 자폭테러 위험 차량으로 간주하고 드론을 동원해 폭격했다.

당시 미국 중부사령부는 성명을 통해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 대한 IS-K의 임박한 위협을 제거했다"면서 " 민간인 피해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그런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미국 국방부는 흰색 차량이 IS-K의 은신처를 떠난 것을 수시간 동안 추적했다면서 "정의로운 타격"이라고 방어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공격 초기부터 민간인 사망설이 나왔다.

급기야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0일 기사에서 자체 취재를 통해, 공습 표적이던 차량 운전자가 미국 구호단체 '영양·교육인터내셔널'(NEI)의 협력자인 제마리 아흐마디라는 남성이었고, 공습으로 아흐마디와 그의 자녀 등 10명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결국 케네스 매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17일 브리핑에서 어린이 최대 7명을 포함해 10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오폭을 시인했다.

미군이 아흐마디가 IS-K의 은신처로 보이는 곳에서 폭발물을 실은 것으로 의심했지만, 이런 판단은 잘못됐었다. 그의 차량에는 물통이 실렸다.

잘못된 정보로 인해 애초부터 IS와 전혀 관련이 없는 민간인을 계속 추적하다가, 결국 그와 가족을 몰살하는 참사를 일으킨 것이다.

매켄지 사령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참담한 실수였다"며 뒤늦게 사과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흐마디가 그의 집 마당에 차량을 주차했을 때 미군은 공격 결정을 내렸다.

3명의 어린이가 차량을 맞이하기 위해 마당에 나와 있었고, 이들 중 한 명은 아흐마디가 차량에서 내린 뒤 올라타 핸들을 잡는 모습이 항공 사진에 찍혔다.

미군은 이런 사진을 토대로 어린이 7명을 포함해 10명이 사망했다고 결론지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도 성명을 내고 오폭 책임 여부 등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오폭 사태의 파장은 국방부 자체 조사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국방부 고위급들은 의회로부터 오폭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군 철수 과정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루벤 갈레고 하원의원은 성명에서 "국방부는 공습 목표를 설정하고 타격 결정을 내린 과정에 대해 우리에게 상세히 브리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민주당 소속인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도 성명에서 "향후 비슷한 비극을 막기 위해 타격에 이르기까지 잘못된 과정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은 공세의 고삐를 바싹 당겼다.

공화당의 제임스 인호프 상원 군사위원장은 성명에서 "궁극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도 이번 사태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오폭은 아프간에서 지상군 철수로 항공 타격만으로는 테러 분자들에 대한 대처가 어려워졌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해 미 행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철수 이후 대(對)중국 견제론을 내세우며 비판 여론을 추스르려 했지만, 오폭 사태로 계산에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보인다.

lkbi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태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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