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23 07:24최종 업데이트 21.09.23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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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10주기 특별기획전 《목소리》는 2021년 8월 31일부터 2022년 5월 29일까지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년관에서 진행된다. ⓒ 유성호

 
전시는 미술이라는 형식으로 세계를 번역하고, 관객에게 점진적으로 말을 거는 사유의 공간이다. 하나의 전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미술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뿐만이 아니라, 전시를 기획하는 기획자와 전시공간을 구성하는 노동자, 기술자들이 연동되어 움직여야 한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노동자의 삶을 '전시'라는 형식으로 함께 직조한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오민수 작가와 유현아 전태일기념관 문화사업팀장, 강재영 전태일기념관 학예연구원은 약 6개월의 시간 동안 하나의 전시 '이소선 10주기 특별기획전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이야기의 실타래를 뽑아냈다.


함께 일하는 사람과 생각과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은 공유할지언정,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일을 함께 할 때는 수많은 변수와 갈등을 감내해야 한다. 각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의 구분을 명확히 해야만 자신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한다. '내 생각에 공감해주고 함께 고민하며 걸어줄 사람만 있다면'이라고 말이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 '예술'이라는 방대하고 난해한 분야일 경우 일과 노동, 예술과 개인, 창작과 생계라는 쉽지 않은 문제를 끊임없이 풀어야 할 때도 있다. 

전시를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전시를 그저 '일'로만 규정짓지 않고 우리를 위태롭게 하는 사회적 문제는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특히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노동을 하기 위해서 창작자와 조력자 사이에는 어떤 태도와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빠르고 효율적으로 사는 것이 정답처럼 여겨지는 세계에서 '함께 예술하는 법'을 묻기 위해 지난 6일 오민수 작가와 유현아 전태일기념관 문화사업팀장, 강재영 전태일기념관 학예연구원을 만났다. 현재 전태일기념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소선 10주기 특별기획전 <목소리>의 전시 현장에서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

이 시대 예술가들이 말하는 '노동'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10주기를 맞아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이 개최한 특별기획전 《목소리》에서 <철과 피> 설치작품을 전시한 오민수 작가(뒤쪽)와 전시를 도와준 유현아 전태일기념관 문화사업팀장(앞 왼쪽), 강재영 전태일기념관 학예연구원. ⓒ 유성호

 
- 각자 자기소개를 해달라.

오민수: "바깥은 전쟁 중인데 전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에 대해, 세상에서 가려진 죽음과 외면하는 진실에 대해 작업하는 작가이다. 극적인 섹션을 통해서 현대사회의 이야기들을 추상화된 형식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미술 작업을 해오고 있다."

유현아: "현재 전태일기념관 문화사업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평범하게 회사 다니다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문화예술기획 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0년 정도 프리랜서로 일하다 2018년 전태일기념관 개관준비팀에 합류하면서 전태일기념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전태일기념관에서 진행하는 문화사업 관련 업무를 총괄했다."

강재영: "예술이라는 현상에 대해 어릴 적부터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예술작품이나 전시의 뒷면에서 코디네이터(전시를 개최하기 위한 전반적인 작업을 담당하는 사람)라고 불리는 일을 주로 해왔다.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전태일 기념관 학예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 지금 전태일기념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소선 10주기 특별기획전 <목소리>를 기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유현아: 노동과 노동자들의 삶을 다루는 전시는 전태일기념관의 전시 사료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노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작년부터 '이제는 현재를 사는 예술가들의 목소리로 노동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노동 분야에 천착해서 작업하는 미술작가들을 알아보다가 오민수 작가와 신민 작가를 알게 되었다.

두 작가에게 작품을 제안하기 전에 6개월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들과 유기적으로 전시를 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 전시의 가치가 공유되었다. 전시의 완성은 오민수 작가와 신민 작가 그리고 강재영 큐레이터가 했고 나는 밥만 사줬다. (웃음)"

강재영: "나는 유현아 시인(전태일기념관 문화사업팀장)과 오민수 작가가 합을 맞추고 물리적 교감을 하고 연대하는 과정 중에 끼어있었다. 작가들과 교감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오랜 시간 동안 정서적인 유대를 갖게 되면서 나의 역할을 찾고 내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다. '작가가 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지원하자'는 게 목표였다.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울 때, 우회해서라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 오민수 작가는 작년 전시 '전기는 흐른다'를 통해 대전의 물류창고에서 사망한 일용직 노동자의 죽음을 예술작품으로 애도하는 작업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작업 역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과정을 담는 작업인지 궁금하다. 6개월 동안 기획자들과 이야기를 하며 어떤 과정을 작품에 담아냈는지 궁금하다.

오민수: "든든한 협업자가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작업을 하다 보니 마음에 기복이 심했는데 두 사람이 그런 부분을 잡아주었다. 두 사람은 사회 전반의 시스템에 대해 다양한 이론과 이야기를 해줬는데, 이것이 작업을 구체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예술가라는 직업은 위태롭고 불안하다. 늘 소속감이라는 것이 결여된 상태였는데 이번 작업을 하는 동안 계속 작업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의지를 가질 수 있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유현아, 강재영 선생님과 평택항에도 다녀왔다. 지난 5월 평택항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일하다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함께 평택항을 가서 고 이선호군을 생각하며 묵념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고 이선호군 일했던 평택항은 국가보안시설이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 <철과 피>는 그때 평택항에서 체감한 감각들이 담겨 있다."

- 하나의 기획전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작가와 이야기를 나눈 이유는 무엇이었나?

유현아: "기획자는 작가가 작품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상상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작가와 일종의 라포 형성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충분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다.

작가들은 항상 시간에 쫓겨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늘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긴 호흡으로 하고 싶었고, 전태일 기념관 안에서도 토론과 설득의 과정을 거칠 수 있었다."

강재영: "전태일기념관은 공공기관이다 보니 그 안에서 지켜져야 하는 것들이 분명 있다. 행정체계는 분명 필요하다.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작가의 메시지가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애썼다. 예산책정과 집행에 대한 부분도 전시작품과 함께 내부적으로 이해되고 수용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이번 오민수 작가의 <철과 피>는 큰 수조가 설치되는 작품이었다. 작품에 '물'이 사용되어야 했는데 공공기관 전시장에서는 쉽게 설치할 수 없는 작품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작가와 쌓은 유대를 바탕으로, 어느 순간에는 나 스스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하나하나 풀 수 있는 원동력이 생겼던 것 같다.

실제로 오민수 작가의 작품 <철과 피>의 수조에 물을 채울 때는 모두가 긴장했다. 우려했던 대로 물이 전시장에 새기도 했는데 유현아 팀장님이 개관일 아침에 물을 치웠던 에피소드가 있다."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노동자들의 죽음
 

오민수 작가 설치작품 <철과 피> ⓒ 유성호

 
-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욱 이번 전시가 작가와 기획자, 큐레이터가 함께 만든 전시였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한 어려운 과정 중에 설치된 오민수 작가의 <철과 피>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전시장에 설치된 <철과 피>는 거대한 수조 위에 지속적으로 날카로운 초침의 쇠막대가 두꺼운 원형 철판 위에서 시계처럼 회전한다. 또, 산업현장의 소리와 같은 사운드와 함께 작품의 주변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작품이었다. 매우 복합적인 감각과 이야기가 담겨있는 듯했다.

오민수: "이번 작품에서는 '철'이라는 물성에 집중했다. 평택항에서 일어났던 노동자 사망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평택항에서 고 이선호군을 깔려 죽게 한 것은 철 덩어리였다. 철은 청동기, 철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인간 문명의 변화를 가져온 물질이다. 그런데 지금 그러한 문명의 발전이 왜 인간을 죽이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철이 전쟁의 도구가 되고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도구가 되고, 역으로 그것을 만드는 노동자들을 죽게 하는 것에 대해 주목했다. 인체를 이루는 주요한 물질은 피인데, 피에는 철분이 들어있다. 요한계시록 11장 6절에는 물이 피로 변하는 순간이 묘사되어있다. 물이 피로 변하는 순간은 무엇일지, 그것에 대한 답을 이번 작업해서 풀어보고 싶었고, 이번 작품에서 철과 피로 상징되는 물을 사용하여 작업하게 되었다."

- 오민수 작가가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집중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오민수: "어렸을 때 죽음의 고통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 10층 건물에서 떨어져서 크게 다친 경험이 있어서인지 죽음의 감각에 대해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다. 나는 미술작가이기도 하지만 플랫폼 노동자다. 나 역시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죽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지만, 노동현장에서의 죽음은 급작스럽게 닥친다.

그런데 노동자의 죽음은 기업에 의해 블랙 처리가 되거나 애도가 안 되는 시점들이 존재한다. 이번 작업은 그런 부분에서 죽음에 대한 애도를 담고 있다. 고 김용균, 이선호군을 생각할 때면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그들을 잘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번 작업의 출발은 일종의 씻김굿으로 그들을 다시금 애도하자는 것이었다."

강재영: "오민수 작가가 사람을 대하는 마음, 그리고 작품을 대하는 마음들이 이번 작업을 하면서 크게 다가왔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마음을 다잡고 이번 작품의 무게를 잘 드러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현아: "오민수 작가는 불편한 사람이다. 불편해야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오민수 작가의 불편함은 변화를 껴안을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이라는 것이 가진 쓸모없음을 붙잡고 관객들에게 쓸모없음의 쓸모를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민수 작가가 그러한 불편함을 가지고 끊임없이 작업을 이어갔으면 한다."

세 사람과 전태일기념관에서 인터뷰하는 동안 기념관이 위치한 청계천에는 끊임없는 기계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1970년 전태일과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이 쉴 새 없이 돌던 재봉틀을 멈추고 거리로 나왔던 청계천에서 이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현재의 노동자'들의 삶을 잠시 제대로 바라보기를 제안하고 있었다.

지금, 잠시 일을 멈추고 과거와 지금에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이소선 10주기 특별기획전 《목소리》는 억울하고 소외된 사람들 편에서 신념과 가치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이소선의 목소리와 일상,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상, 유품, 사진 등 사료 90여 점을 전시한다. ⓒ 유성호

덧붙이는 글 *이번 전시 ‘이소선 10주기 특별기획전 <목소리>’는 2021년 8월 31일부터 2022년 5월 29일까지 진행된다. 관람은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전태일 기념관 홈페이지에서 예약 후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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