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버지의 길> 포스터

영화 <아버지의 길> 포스터 ⓒ 전주국제영화제

 

세르비아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한 사내의 사연이 보도됐다. 생활고에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아이들을 뺏긴 그가 300km를 걸어 복지부 장관을 만나러 갔다는 내용이었다. 가난하면 가정을 꾸릴 수도 없고, 아이 인권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기에 국가가 강제로 위탁 가정에 맡기는 이 시스템은 누굴 위한 것이었을까.

세르비아 출신의 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은 영화 <아버지의 길>을 통해 내전의 아픔과 국가 시스템의 허점, 그리고 그 틈에 존재하는 비리와 유착관계까지 짚고 있다. 자칫 동유럽 특정 지역에 해당하는 먼 나라 이야기라 한정 짓기 쉽지만 가족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는 니콜(고란 보그단)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 사회 사람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주인공인 니콜은 타인들이 보기에 답답할 정도로 조용하고, 좀처럼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일용직을 전전하다 월급이 밀려 아내가 회사로 찾아가 분신까지 시도했음에도 포효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결심을 했을 뿐이다. 아내의 입원 이후 지역 복지 센터에서 아이들까지 데려가는 일을 겪은 그에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직접 세상에 진심을 알리겠다는 것이었다.

약자의 위치에서 부조리를 겪은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몇몇 친구들은 니콜에서 세르비아를 몰래 떠나서 이웃 나라로 가라고 충고하거나, 아이들을 포기하고 그냥 스스로의 인생부터 구제하라고 한다. 니콜은 거기에 대답하는 대신 진심을 보여주겠다며 약 5일에 걸쳐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까지 걸어간다.

물론 도중에 위기가 몇 번 있다. 탈진해 도로에 쓰러지기도 하고, 잠든 사이 짐을 도둑맞을 뻔하기도 한다. 그런 니콜을 해하는 것도 사람이고 기적처럼 도움을 주는 존재 또한 사람이다. 영화는 사람으로 상처받고 사람에게 구원받는 니콜의 모습을 잔잔하게 보여주며, 인생과 사람에 대해 새로운 환기를 시도한다.

<아버지의 길>은 올해 열린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고, 앞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파노라마 관객상, 에큐메니칼 심사위원상을 받은 바 있다. 전쟁의 상처로 시스템이 망가진 사회, 그리고 부패한 일부 관료들을 대상으로 한 아버지가 하는 행동은 지금껏 상업영화에서 보이곤 했던 강렬함과는 또 다른 울림을 주기 충분해 보인다.

장관을 만나기 위해 겨우 베오그라드에 온 그를 복지부 차관이 농락하지만 여전히 그를 지원하는 선량한 시민들도 존재했다. 사적 복수나 어떤 강력한 투쟁이 아닌 진심을 보이기 위해 그저 걸었던 니콜의 모습은 여러 각도로 생각해보고 조명할 만하다.

영국의 켄 로치, 프랑스의 다르덴 형제처럼 스르단 고루보비치의 행보 또한 소시민적 역설에 중심을 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선, 따뜻한 시각으로 담담하지만 묵직하게 자본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그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는 걸 추천한다.

한줄평: 진심에서 뽑아낸 묵직한 통찰력
평점: ★★★★(4/5)

 
영화 <아버지의 길> 관련 정보

원제 및 영제: OTAC / FATHER
감독: 스르단 고루보비치
출연: 고란 보그단
수입: 전주국제영화제
배급: ㈜엣나인필름
러닝타임: 120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1년 9월 30일
 
아버지의 길 세르비아 전주국제영화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