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인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한 장면.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인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한 장면.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영화의 시작은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숨을 힘겹게 내쉬며 제주 4.3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는 어머니를 향한 카메라의 시선도 무거워 보인다. 극영화 <가족의 나라> 이후 7년 만에 새 다큐멘터리를 발표한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 중 한 장면이다.

제주를 떠나 일본 오사카에 자리잡은 양 감독의 어머니 강정희씨는 남편과 함께 평생을 남한이 아닌 북한을 고향이자 조국처럼 생각하며 동경해왔다. 급기야 두 아들을 북한의 요청으로 보냈다. 일본 조총련 소속 활동가로 몸 바쳤지만 술만 마시면 고향인 제주도 노래를 흥얼 거리던 아버지, 그리고 음악을 좋아했지만 생이별하면서 북한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던 오빠들까지. 양영희 감독은 자신의 가족사를 카메라에 담아 왔다. <디어 평양>(2006), <굿바이, 평양>(2011)이 그 결과물이었다.

이번 영화로 가족 3부작이 된 셈이다. 딸과 사위를 위해 삼계탕을 정성스레 끓이던 건강했던 강정희씨의 모습부터 장장 10년의 세월이 영화 안에 담겨 있다. 치매를 자각하던 때에 딸에게 갑작스럽게 했던 고백, 바로 강정희씨는 제주 4.3의 피해자였다.

확장된 개인사

뒤늦게 알게된 어머니의 진실은 아버지, 오빠들의 그것과는 무게감과 깊이가 달라 보였다. 후자는 북한과 자신의 가족과의 관계를 들여다보며 한국 관객들이나 일본 사회가 쉽게 알 수 없는 사적 비극을 조명했다면 전자는 다름 아닌 한국과 자신, 자신의 가족 간 관계를 들여다 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평소 한국 방송은 물론이고, 한국 관련 어떤 소식도 달갑지 않아 했던 어머니를 양 감독은 속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카메라를 든 이후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제주 애월 하귀리 작은 마을에 살던 강정희씨는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4.3 학살로 약혼자를 잃었고 친척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일본을 떠나 고국으로 왔건만 고국은 큰 상처를 주었고, 살기 위해 강씨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다. 

그 모진 역사의 결과물이 바로 강정희씨의 삶이었다.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정성스럽게 쌓아간다. 오십대 전후로 뒤늦게 결혼 상대를 소개한 사람이 공교롭게도 평소 한국 사람, 일본 사람, 미국 사람을 지극히 반대하던 아버지의 유지를 거스르는 존재였다. 일본인 남편을 강정희씨는 마음을 열어 받아주고 음식을 해 먹인다.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인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한 장면.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인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한 장면.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좁게 보면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한 재일 동포의 성장기 내지는 화해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족이 품고 있는 사연 그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이며, 동아시아와 제국주의를 꿈꿨던 일본 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개인사가 단순히 개인사에 그칠 수 없는 이유다. 

영화 제목인 '수프'는 말 그대로 밥을 뜻하고 '이데올로기'는 남한, 조총련, 일본 등 그 어느 곳에도 속하기 어려웠던 강정희씨와 양영희 감독, 그리고 이들과 기꺼이 가족이 되길 두려워하지 않던 일본인 남편을 상징할 것이다. 배경과 역사가 서로 다른 개인, 그것도 반목과 갈등의 역사에 놓였던 개인이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는 건 또다른 가능성을 의미한다. 비극적인 개인사를 내보이면서도 이 작품이 무겁고 우울하지만은 않은 이유다.

올해로 13회를 맞은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는 유일한 분단 국가인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며 평화와 공존, 나아가 다큐멘터리의 다양한 가치를 고취하는 행사다. 그 어느 때보다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개막작으로 손색 없어 보인다. 
수프와 이데올로기 양영희 일본 북한 조총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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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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