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단호박 주문하실 분 주문하세요."

우리 동사무소에서 온 문자다. 나는 문자를 받고 "3망 주문합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단호박 한 망에는 보통 6~7개 들어 있다. 한 망에 만 원이라서 엄청 싼 가격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에서는 천안의 북면과 2007년부터 자매결연을 맺고 서로 교류를 하고 있다.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바꾸어 사고팔면서 친목을 이어가고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천안 북면은 단호박과 옥수수를 군산으로 가져와서 팔고, 군산에서는 흰 찹쌀 보리를 천안 북면으로 가져다 팔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 있다.

매년 단호박과 옥수수가 나는 철이면 북면에서 트럭으로 호박과 옥수수를 가득 싣고 와 동사무소 마당에 내려놓고 판매를 한다.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30% 이상 싼 것 같다. 그런 연유로 호박과 옥수수는 삽시간에 품절이 되고 만다. 가격이 싸기도 하고 호박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서 이웃 들고 나누어 먹는 재미가 있다.
 
단호박을 사서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 단호박 단호박을 사서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 이숙자

관련사진보기

 
그냥 아무에게나 물건을 파는 건 아니다. 미리 주문을 해서 주문량만 가져다가 팔고 있다. 그러니 정보를 모르는 사람은 사지를 못한다. 나는 동사무소에서 수강하는 영어회화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다. 뉴욕에 살고 있는 손자 손녀와 전화를 할 때면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어 시도해 본 일이다. 동사무소를 오고 가며 그곳의 정보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매년 옥수수랑 단호박을 많이 서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정을 나누게 되니 마음이 흐뭇하고 넉넉해진다. 내가 자주 다니는 뜨개방 선생님에게도 가져다주고 옆에 사는 동생과 나머지는 다른 지인에게도 나누어 준다.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가지, 호박만으로도 정을 나눈다. 사람은 받는 것보다 줄 때가 더 좋다.
 
팥을 넣고 호박죽을 끓인다
▲ 호박 죽 팥을 넣고 호박죽을 끓인다
ⓒ 이숙자

관련사진보기

 
단호박은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 게 좋은 점이다. 아침이면 쪄서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고 호박죽도 끓여 먹는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가끔은 점심을 친구들과 먹기도 했는데, 지금은 거의 집에서 삼시 세끼를 먹어야 하니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반찬 만드는 수고를 피하기 위해서 아침은 밥이 아닌 대용식으로 먹는다. 단호박을 쪄서 야채와 과일로 아침 한 끼를 먹으면 간편해서 좋다.
 
단호박을 찌고 야채와 계란을 곁들인 아침 상
▲ 단호박을 쪄서 아침 밥 대신 먹는다 단호박을 찌고 야채와 계란을 곁들인 아침 상
ⓒ 이숙자

관련사진보기

 
팬데믹이 오면서 사람을 마음 놓고 만나지 못하고 살게 되니 자꾸만 정이 메마르고 외로워진다. 나는 나이가 많은 세대라서 그런지 자꾸만 옛날 정이 넘치는 세상이 그립다. 그리워한다고 옛날이 돌아올 리 없지만 가끔이면 그날로 돌아가고 싶다. 이웃끼리 정을 나누며 무엇이든 나누어 먹고 수다를 떨며 얼굴을 마주 보며 살던 때가 언제였던가.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고 이웃의 정이 메마른지 이미 오래다. 이제는 친척들 간에 왕래도 없다. 형제끼리 만나고 살았었는데 코로나로 그마저도 못 하니 세상 사는 것이 각박하고 쓸쓸하다. 특히 남편 형제는 정이 두터워 생일이면 모여 같이 밥 먹고, 명절이나 제사에는 빠지지 않고 만나고 살았었다. 지금은 그마저도 못 한다.

그러나 팬데믹 세상이 오면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거의 집에 갇혀 지내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살아있을 날이 점점 줄어드는데 좋은 사람과도  만남을 못하고 살고 있어 마치 내 시간을 도둑맞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온다. 그저 담담하게 침묵하면서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는 언제나 물러 가려는지...
                                                  
매일 무엇을 하는지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어제는 나머지 호박 하나를 가지고 호박죽을 끓였다. 호박 자체로도 달달하니 설탕을 넣지 않아도 맛있다. 특히 팥을 많이 넣어서 더 맛있는 것 같다. 나는 팥을 좋아한다. 팥밥, 팥죽, 팥빙수 팥이 들어간 음식은 무엇이든지 마다하지 않고 잘 먹는다. 누가 밥 먹자는 말을 할 때도 팥죽집을 찾는다. 팥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힘들 때도 나는 위로가 된다. 외식을 못하는 답답함을 호박죽을 먹으며 참아낸다.

단호박 팥죽 끓이기는 의외로 쉽다. 

1. 맨 먼저 호박을 깨끗이 씻어 썰어 조각을 내서 커다란 냄비에 물을 붓고 끓인다.
2. 호박이 말랑하게 익으면 불을 끄고 믹서기에 간다.
3. 호박을 삶으면서 팥은 다른 냄비에 삶아 놓는다. 
4. 갈아 놓은 호박에 팥도 넣고, 쌀가루를 적당히 넣어 저으면서 농도를 맞추어 끓이면 호박죽이 된다.


끓여 놓은 호박죽은 며칠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으면 맛도 있고 영양이 모자라지 않는다. 껍질을 벗기지 않아도 된다.

특히 단호박은 베타카로틴, 페놀산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어 성인병 면역력에도 좋다. 혈관 건강, 항암 효과, 눈 건강, 위장 건강, 부종 완화, 당뇨 개선, 치매 예방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효능을 가지고 있다. 값도 그다지 비싸지 않아 호박은 우리 집 식탁에 잘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남편은 혈관 질환이 있고, 위장이 좋지 않다. 나는 눈이 안 좋고 당뇨가 있어 호박이 가지고 있는 효능이 좋다. 사람이 날마다 무엇을 먹으며 건강을 유지하고 살지는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므로, 먹는 것에 신경이 쓰인다. 사는 날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을 지키는 일이기에 우리는 호박을 즐겨 먹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 실립니다.


태그:#호박죽, #단 호박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