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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읽고 쓰는 것이 금지입니다. 위반 시 지하실에서 '교정'을 당합니다. 외출 시에는 머리쓰개를 비롯하여 온몸을 가리는 긴 원피스를 입습니다. 가임기 여자들은 징집해서 필요한 가정에 배급합니다. 여자들은 이름과 직업을 빼앗기고 국가를 위한 출산의 의무에 동원됩니다.

강력한 종교가 통치 이념이 되고, 규율을 어기거나 체제에 저항한다면, 비밀경찰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갑니다. 위반자들은 목을 매달아 장벽에 걸고, 여자들은 (서로 감시해야 하므로) 2인 1조로 조를 이루어 장벽까지 산책을 다녀와야 합니다.

이런 국가가 어디에 있을까요? 혹시 떠오르는 국가가 있습니까? 저는 요즘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카불 입성과 정권 장악 소식을 들으며 이 국가를 떠올렸습니다. 종교 교리에 의해 여성들의 인권이 철저히 말살되는 사회, 그것이 탈레반이 20년 전 자행했던 일이고, 오늘 다시 반복될까 두려워 아프간 시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길리어드는 얼마나 멀리 있는가
 
마거릿 애트우드 장편소설 <증언들> 표지
 마거릿 애트우드 장편소설 <증언들> 표지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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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을 철저히 억압하고, 계급으로 분류하고, 자유를 박탈한 국가가 있습니다. 그 국가의 이름은 길리어드 공화국. 어느 날, 일련의 남성들은 군대를 일으켜 쿠데타의 방식으로 여성들의 계좌를 막고, 감금한 다음, 그들의 필요에 따라 분류합니다. 오직 출산만 담당하는 '시녀'부터 허울만 좋은 '아내', 어리석은 교육 제도로 길러지고 강제로 정략결혼 대상이 되는 '딸들', 그리고 체제에 저항하다 독극물 공장 같은 곳으로 보내지는 '비여성'까지. 이 길리어드 공화국은 마거릿 애트우드 소설 <증언들>에 나오는 국가입니다.

<증언들 The Testaments>는 2019년 작품으로, 1985년 출간된 인기있는 스테디셀러이자 페미니즘 소설인 <시녀 이야기>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속편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원래 책보다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다릅니다. 제가 보기엔 오히려 <시녀 이야기>보다 더 스케일이 크고 압도적이며, 장중한 책입니다. 작가는 <시녀 이야기> 이후 35년간 독자들이 던진 무수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시녀 이야기> 장면의 일러스트레이션
▲ <시녀 이야기> 일러스트레이션  <시녀 이야기> 장면의 일러스트레이션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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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기본적으로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긴박하고 스릴 넘치는 전개에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한편 책을 읽으며, 자주 멈추고 한숨을 쉬고 두려움에 떨기도 했습니다. 특히 고문과 살인 같은 무시무시한 장면이 전개될 때 그러합니다.

몸서리치게 느끼면서도 끔찍한 장면들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은 기시감 때문입니다. 언젠가,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들, 한국에서 혹은 멀리 타국에서 있었을 법한 이야기들.

작가는 이 책을 쓰면서 약속했다고 합니다.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은 하나도 쓰지 않겠다고. 그래서 그녀는 이 책을 쓰기 위하여 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했던 레지스탕스들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여성들이 저항을 꿈꾸지 못하도록 하는 권력자들의 방식은 폭력의 전시 그리고 감시입니다.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말과 글을 빼앗는 것은 물론이고요. 체제 밖의 사람들은 쉽게 죽임을 당하고 그 죽음들은 장벽에 교훈 삼아 전시됩니다. 여성들은 그 전시를 보아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작가는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35년 전에 비해 세상은 좋아졌는가? 그녀의 대답은 회의적입니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시민들은 30년 전보다 더 큰 압박을 받고 있다.'

살아남고, 견디고, 연대하는 힘

'어떻게 그렇게 서툴게, 그렇게 잔인하게, 그렇게 어리석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당신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당신이라면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텐데!' (<증언들> P578)

이 책에는 세 명의 여성 화자가 등장합니다. 그중에 핵심 화자가 리디아 아주머니, 전직 판사였으나 남자들에게 감금과 고문을 당하고 죽음의 목전까지 갔다가 체제에 가장 잘 순응하는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그러니까, 리디아 아주머니는 모멸을 견디고 살아남았고, 치욕을 견디며 살아가고, 끝내 다른 여성들을 (앞으로 올 미래의 젊은 여성들) 위해 연대합니다.

지난 8월 15일, 우리가 광복의 기쁨을 누리던 날에 탈레반은 카불에 입성해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합니다. 그날 이후 많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생명을 위협받는 전쟁이 시작된 셈입니다. 공포에 떨고 있는 그 여성들을 위해, 그들이 살아남고 견딜 수 있도록 우리는 어떻게 연대해야 할까요. <증언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증언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은이), 김선형 (옮긴이), 황금가지(2020)


태그:#증언들, #탈레반 , #아프가니스탄 , #여성인권 , #마거릿 애트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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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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