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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에 성큼 다가섰다. 아침저녁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돈다. 길섶에는 '찌르르' 풀벌레 소리가 짙다. 팬데믹으로 섬 투어 제동이 걸려 답답하던 차 해거름에 걸어보는 명사갯길, 몸과 마음이 한껏 가볍다. 

이곳에 오면 명사산이 먼저 떠오른다. 명사십리의 명칭 때문이다. 중국 돈황시 남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 있는 모래와 암반으로 이루어진 산 이름. '명사(鳴砂)'는 언덕의 모래들이 바람에 굴러다니면서 내는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 같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명사산은 서역이 시작되는 실크로드의 관문이다. 황금 모래사막이 바다처럼 넘실거려 산을 이루고, 2천 년 동안 마르지 않은 샘이 솟아난 절경이 사람들을 부른다. 명사산은 모래언덕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산울림처럼 들려서 '모래가 울다'라는 의미를 더한다.

청해진의 장보고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해신(海神)>에서도 중국의 명사산이 소개된 바 있다. 신라의 백성이 노예로 팔려 가는 현장을 목격한 장보고가 그들을 구출한 장면이 각인된 곳이 명사산 사구였다. 그곳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죽어 간 원혼의 울음소리가 명사의 전설이 되어 전해지기도 한다. 그 소리는 한 맺힌 절규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전남 완도 신지도의 명사십리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한다. 신지도에 유배 온 사람들의 절규, 그중에서도 왕가의 자손이었던 이세보의 뼈아픈 절규가 십리에 들린다고까지 비유했다. 

명사십리 모래밭에는 정말로 울음소리가 들릴까? 한 방송사의 예능프로그램이 실험했다. 그 결과 입자가 고운 모래는 사람들이 걸을 때마다 미세한 진동과 울음소리를 토해낸 것으로 밝혀졌다. 고운 모래가 있는 해변의 미세한 입자에 의해 사람이 걸을 때 공명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바위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는 거칠게도 산산이 부서지는데, 모래 해변은 세찬 파도를 부드럽게 잠재운다. 신지도 명사십리는 고운 모래가 일품이다.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어린아이를 안전하게 품어내는 어머니의 품속 같다. 그 품처럼 명사 해변은 마치 현대인이 겪는 모든 시름을 말끔히 씻어주는 해양치유의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여름의 끝자락 해변은 여유롭다. 밀려왔다 밀려드는 파도에 발 담그고 모래밭을 두리번거리며 조개 줍는 사람,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뒤로하고 습하고 무더웠던 여름이 벌써 작별을 고한다. 

순비기나무, 약효와 효능이 으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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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는 어느새 보랏빛 들꽃이 하나둘 핀다. 순비기꽃이다. 사시사철 상록의 잎을 뻗고 여름의 끝자락에 꽃을 피우는 순비기나무, 언제부터 이곳에 뿌리를 내렸을까?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고 납작 엎드려 피서객의 발길이 뜸한 해변에 무성히도 자라고 있다. 

"머리 아프고 골속이 울리는 것과 눈물 나는 것을 낫게 한다. 몸속에 기생충을 없앤다. 이빨을 튼튼하게 한다. 눈을 밝게 하고, 머리털을 잘 자라게 한다. 뼈마디가 저리고 쑤시는 습비(濕痺)로 살이 오그라드는 것을 낫게 한다. 술에 축여서 찌고 햇빛에 말린 다음 짓찧어서 쓴다."

순비기나무는 <동의보감>에 그 쓰임이 널리 알려졌다. 그 외에도 민간요법으로는 열매를 가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 다음 베개에 넣어두면 두통에 효과가 있다. 잎과 가지는 은은한 향기가 있어서 입욕제로 사용하기에 좋다. 

물질할 때 해녀가 숨을 참고 들어갔다 나오면서 숨을 길게 내쉬는 소리를 '숨비 소리'라고 한다. 순비기나무는 제주도와 해안지방에 주로 서식하는데, 해녀들은 이 나무를 '숨비기나무'라고 부른단다. '만형자'라는 순비기나무 열매는 해녀의 잠수병으로 인한 만성적 두통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제주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순비기나무는 해녀에게는 유용한 식물이다. 모래 땅속 깊이 뿌리가 뻗어나가며 온통 모래사장을 덮어 세찬 바람에 해변의 모래가 날리는 것을 막아준다. 순비기나무의 열매와 꽃과 잎으로 동의보감과 민간요법에 밝혀진 약효를 활용해 만든 제품이 이미 판매되고 있다.

순비기나무 약효와 효능, 관련 연구 목록과 학계의 논문도 수두룩하다. 문헌에 기록된 것을 넘어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밝힌 해외논문까지 있을 정도라고 하니 신통방통한 나무임이 분명하다. 누군가 이곳에 계획해 심어 놓은 것이라는 예감은 안내 푯말에 뚜렷하다. 완도군의 해양치유산업을 기획한 세심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해양치유산업 어떻게 준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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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대교 개통 이후, 명사십리를 찾는 관광객 수는 해마다 늘었다. 여름철 모래찜질은 신경통과 관절염, 각종 피부질환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옛사람들이 찾았다. 근래에는 기업의 단체휴가지로 하계휴양소를 설치하여 이용하기도 한다. 이제는 백사장을 포함한 명사갯길 따라 해안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신지대교는 해변의 야경을 연출하는 완도의 명물이 된 지 오래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1980년 지정된 것이 지난 2004년 해제됨에 따라 군은 다도해해상공원관리법에 의해 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신지해수욕장 일대에 관광숙박시설, 기반시설과 편의시설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관광 휴양시설로 단계적으로 개발했다. 

완도군은 정부가 선택한 전국 4개 지자체 중 가장 먼저 해양기후치유센터를 건립했다.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을 준비해 왔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운동하면 젖산 농도의 수치가 낮게 나타나며 기관지에도 좋다고 한다. 그동안 해양치유를 위해 준비한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노르딕워킹과 필라테스이다. 몸의 균형을 바로 잡아주며 유연성 향상, 기혈 순환을 도와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군은 2020년 7월까지 해양기후치유 프로그램실, 건강 측정실 등의 시설과 20여 종의 테라피 시설을 갖출 계획이며, 기후치유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여 새로운 웰니스 관광 흐름을 이어나가고 있다. 자체적으로 양성한 초급지도사들도 지속 배출, 관리하여 해양기후치유 프로그램 운영에 투입하는 등 해양치유산업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완도군의 해양치유산업이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 일각에서는 시설 위주의 사업이라며 염려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군민 모두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단계적 사업의 준비가 더욱 필요한 때가 아닐까?

정지승/다큐사진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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