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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자본가인 안소니 커비가 노리고 있는 것은 전쟁물자인 군수품이다. 감독인 프랭크 카프라는 영화 이후 전쟁(제2차 대전, 1939~1945년)이 다시 시작되리란 걸 알았다는 듯이, 영화 도입부는 군수업으로 사업을 확장해가며 탐욕에 눈이 먼 사람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그런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삶을 견지해나가는 어느 마을의 정신적 지주인 반더호프이다.

영화 <우리들의 낙원,>(You can't take it with you, 1938)은 자본주의적인 삶의 양식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반더호프와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기존에 퓰리처상을 받은 동명의 희곡을 각색하여 영화화했는데, 그해 아카데미 최우수감독상까지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아직 못 본 독자들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영화 중 하나이다. 특히나 고전적인 풍자와 해학을 좋아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것 말고 달리 하고 싶은 일은 없소?"

엄청난 금액을 제시해도 집을 팔 생각이 없는 반더호프는 그들의 부름에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방문했는데 이때 열심히 일하고 있는 노동자 포핀스를 만나게 된다. 반더호프는 포핀스에게 다가가 대화를 걸며 간단하지만 그를 흔드는 질문 다섯 개를 던진다.

그리하여 영화는 우리에게도 다음과 같이 묻는다. "이것 말고 달리 하고 싶은 일은 없소?" 일을 방해하는 반더호프의 말들이 포핀스에게 반가울 리 없지만 결국 포핀스는 반더호프의 마지막 한 마디를 듣고 난 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그와 함께 회사를 떠난다. 

물론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장면이겠지만,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 그 너머로 우리를 데려가 줄 수 있는 게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다른 말로 해보면, '그럴 수 없는', '그래선 안 되는' 불가능한 현실을 깨트리는 게 예술의 영역이듯이 말이다. 따라서 엄청나게 더 큰 돈을 얹어 줄 테니, 집을 내 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업자는 반더호프를 절대 설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
     
"디즈니랜드에 사는 것 같겠지" 
 
주인공 반더호프의 가족들. 영화 <우리들의 낙원> (1938)
 주인공 반더호프의 가족들. 영화 <우리들의 낙원> (1938)
ⓒ 영화 <우리들의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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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의 아들 토니 커비와 반더호프의 손녀 앨리스의 사랑이 한참 진행되면서 앨리스가 자신의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흥미롭게 듣던 토니는 마치 디즈니랜드에 사는 사람들 같다고 말하며 가벼운 웃음을 보낸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만화영화에나 나올 법한 사람들이라 비유한 걸까?

위의 사진은 반더호프의 가족들 중 일부인데 왼쪽부터 그의 첫째 손녀, 사위, 딸 그리고 첫째 손녀의 발레 교사이다. 첫째 손녀는 하루종일 집 안에서 발레를 추고 그녀의 아버지이자 반더호프의 사위는 집 지하 창고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어 하는 걸 만들며 산다. 요즘 말로 하면 메이커 운동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다만 사진에서는 잠시 아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모델로 포즈를 취해주고 있다). 

반더호프의 딸은 타자기로 쉬지 않고 글을 쓰는 작가이며, 맨 끝에 있는 발레교사는 남루한 차림으로 가진 것 없이 살아가지만 러시아 발레에 대한 자부심만은 가득 차 있는 사람이다. 사진에 등장하진 않으나 그 외 나머지 가족들 역시 지하 창고에서 각자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면서 지낸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반더호프 가족은 둘째 손녀인 앨리스 이외에 소득을 위해 노동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즉, 토니 커비가 말한 '디즈니랜드에 사는 것 같다'고 표현한 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 근로소득이 없는 사람들,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이란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묻는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노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반더호프 가족은 모두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만들고, 타자기로 글을 쓰고, 가사일을 분담하고,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모아내면서 쉬지 않고 '노동'을 하고 있다. 
 
주인공 반더호프와 타자기를 치고 있는 계산 노동자 포핀스
 주인공 반더호프와 타자기를 치고 있는 계산 노동자 포핀스
ⓒ 영화 <우리들의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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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돈은 필요 없어" 

언론과 지역 주민들은 법정에 선 반더호프 가족과 커비 가족 사이에서 과연 누구에게 죄를 물을지, 판결이 어떻게 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려있지만, 변호사들을 앞세워 무죄 판결을 받은 커비 가족과 달리 반더호프 가족이 유죄로부터 빗겨나갈 방법은 없어 보인다. 이윽고 판사가 주인공에게 벌금형을 선고하자 주민들은 인정할 수 없다는 거센 항의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자 안소니 커비는 변호사를 시켜 자신들이 반더호프의 벌금을 대신 내주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러자 주민 중 한 명이 분노에 찬 표정과 당당한 손짓으로 "당신들의 돈은 필요 없다"라고 외친다. 그리고 순식간에 주민들이 그 자리에서 반더호프네 가족이 내야 할 벌금 이상의 돈을 모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재판 후 유죄인 반더호프는 웃고 무죄인 안소니는 인상을 찌푸리며 법정을 떠난다. 

자신의 기업 이익을 위해서라면 친구마저 버리는 안소니 커비가 반더호프와 나눈 몇 번의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야말로 이 비현실적인 영화의 가장 비현실적인 장면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그나마 현실적인 부분을 반영한 장면을 꼽으라면 안소니 커비가 법정에서 돈으로 사고자 했지만, 살 수 없었던 주민들과 반더호프의 마음이 표현된 장면을 들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살 수 없거나 만들 수 없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돈의 위력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별 것 아닌 듯해 보이는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없는 게 돈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우리 현실에 비춰보면 어떨까? 만약 사회가 우리에게 머무를 집과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준다면, 의료 시스템, 사회보험 등의 사회보장 안전망이 잘 구축돼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돈을 조금 덜 버는 노동을 해도 되지 않을까? 나아가 돈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면, 우리의 노동이 지금보다는 자유로운 형태가 되지 않을까?

이렇듯 영화 <우리들의 낙원>은 돈을 벌기 위한 노동 너머의 노동에 대해 한 번 쯤 상상해 볼 것을 권유한다.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했던, 돈만 아는 저질을 향한 반더호프의 풍자와 해학이 그 작업에 어느 정도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문화사회연구소 김소형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8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우리들의낙원, #자본주의_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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