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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휴지가 비치되어있는 것처럼 화장실에 생리대가 있는 걸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어디서나 누구든지 생리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여성환경연대는 이러한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5월 24일부터 공공월경대 프로젝트 '여기 있어, 생리대!'를 시작했습니다. 공공월경대 프로젝트를 통해 수도권 지역 19개의 개방 화장실에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생리대를 비치하는 사업을 운영하며 겪은 경험을 연재합니다. [기자말]
산돌학교는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에 있는 비인가 대안학교이다. 5년 과정의 기숙형 대안학교로 중 1학년부터 고 2학년까지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지내고 있다. 비인가 대안학교인 우리 학교는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 학교에서 지내며 필요하고 바라는 것들이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라면 그것을 금방 실현하기란 쉽지 않고, 학교 식구들은 아낄 수 있는 것은 아끼며 살림을 꾸려나간다. 이 공공월경대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건 학교의 넉넉하지 않은 재정 면에서 봐도 참 소중한 기회였다.

우리 학교는 매주 학교의 모든 구성원이 모여 회의하는 시간이 있다. 이 전체모임 시간에 여성환경연대에서 제작한 월경 빈곤에 대한 카드뉴스로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평등 수업을 하는 나 또한 월경과 인권을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누구나 안전하고 자유롭게 월경할 수 있도록 공공 월경 정책 마련에 힘쓰는 여성환경연대의 활동에 산돌학교도 작은 역할로나마 함께 한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리 지역의 더 많은 여성 비/청소년이 함께할 수 있길 바랐지만, 우리 기관은 학교였기에 외부인의 출입이 자유로울 수 없었다. 위치 또한 큰길로부터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 조금 더 개방된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기는 어려웠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도 코로나19라는 상황과 맞물려, 지역의 더 많은 사람에게 안전한 화장실로 내어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왜 월경은 개인의 몫인가

청소년, 비청소년, 어떤 성별 정체성을 가진 사람에게든, 아직 이 사회는 나답게 살기 참 어려운 사회다. 해결할 숙제가 참 많다. 온갖 광고와 미디어는 특정한 몸이 예쁜 몸이라고 말한다. 정부 부처가 부족한 감수성으로 가임기 여성이 어느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있는지를 나타내는 지도 같은 것을 만들어내고 있을 때, 안전하고자 하는 의지로 유기농 친환경 생리대를 저렴한 값에 찾아야 하는 건 개인의 몫이다.

다양한 몸이 있고, 다양한 경제적 배경이 있다. 정부와 각 지자체,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이들은 더는 손 놓고 있지 말고, 여성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생리대 한 장이 얼마 꼴인지 계산하고, 내 몸에서 달마다 일어나는 일이 곧 돈이 필요한 일이라는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게 말이다. 월경에 경제적 비용은 치러야 하면서, 티 나거나 드러나지 않게 '처리'해야 하는 일로 여겨지는 사회 말고, 개인의 고민으로 남기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안전한 월경, 내 몸이 존중받고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일 때, 저마다 더 자신 있는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 학생은 '생리대를 따로 들고 다니지 않아도 학교 화장실에 있다는 게 정말 편리했고, 돈을 아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는 이야길 해주었다.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학교에 오래 머무는 내게도, 익숙했던 화장실이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공공 생리대가 비치돼있다는 점 하나로 더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다. '아차'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이곳에 내가 필요한 게 있다는 것.

공공 생리대가 비치되니 "좋다"고 말하는 학생들의 목소리와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학교뿐 아니라, 어느 학교 어느 곳에서든, "생리대 너무 비싸요"라는 한숨 섞인 말을 들을 수 없게 되면 좋겠다. 삶의 터전 곳곳이 여성들의 더 활기차고 즐거운 이야기들로 가득 찰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태그:#여성환경연대, #생리대, #공공월경대, #보편지급, #월경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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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창립한 여성환경연대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녹색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태적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환경단체 입니다. 환경 파괴가 여성의 몸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여성건강운동, 대안생활운동, 교육운동, 풀뿌리운동 등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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