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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참여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를 비롯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6월 2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의 종부세·양도소득세 기준 완화 정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참여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를 비롯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6월 2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의 종부세·양도소득세 기준 완화 정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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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통령이 양도세 깎아준다, 종부세 깎아준다고 공약하면 그 사람은 1% 대통령입니다. 많아야 4% 대통령입니다. 우리 국민 중에는 가장 넉넉한 그 4%를 위해서 세금을 깎아 주겠다고 공약하는 대통령,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겠습니까?"

지난 2007년 5월 고 노무현 대통령이 MBN 특별대담에서 부동산 세금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했던 말입니다. 지난 2005년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지만, 야당과 보수 언론으로부터 '세금폭탄'이라는 십자 포화를 맞으면서 정권 지지율도 하락하던 때였습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정치적인 차원에서 불리하게 돌아가는 여론을 달랠 만한 '당근'을 제시할 법도 했지만, 노무현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종부세를 깎자는 대통령은 1% 대통령"이라고 비판하면서 종부세·양도세 완화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종부세 제도를 손대지 않고 임기를 마무리했습니다. 

물러서지 않았던 노무현

하지만 부자감세를 전면에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 대통령이 지키려했던 정책들은 철저히 부정됩니다. 종부세 과세 기준을 공시가격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 조정해 과세 대상을 크게 줄이고 세율도 크게 낮췄습니다. 2008년 헌법재판소는 종부세 세대별 과세는 위헌이라며, 종부세 경감에 더욱 힘을 실어줬습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철저하게 '1%'를 대변했습니다. 

지금 민주당은 노무현을 버리고 이명박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수언론의 세금폭탄론에 휘둘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종부세를 철저히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종부세 과세 대상을 상위 2%로 제한하고, 세금 부담도 완화하는 법안 통과를 밀어 붙이고 있습니다.

법안을 자세히 보면, 개인이 보유한 부동산 공시가격 합계액으로 0∼100%까지 순위를 매긴 뒤 상위 2% 기준선을 정하고 그 아래 구간의 1주택자는 종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입니다.

지난해 종부세 부과 대상자는 총 74만4000명이었습니다. 전체 주택 소유자(11월 기준, 1812만7000명)의 4.1%가 종부세 대상자였는데, 이 법이 통과되면 대상자가 절반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1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부동산 세제 논의를 위한 정책 의원총회에서 김진표 부동산특위 위원장(우측)이 박완주 정책위의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1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부동산 세제 논의를 위한 정책 의원총회에서 김진표 부동산특위 위원장(우측)이 박완주 정책위의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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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과되는 세금도 줄어듭니다. 정의당 분석에 따르면, 상위 2%의 경계에 있는 공시가격 11억원 주택의 세 부담은 82만원 감소합니다. 공시가격 20억원, 즉 시가 28억원이 넘는 주택의 세 부담은 220만원 넘게 줄어듭니다. 집값이 오른 게 문제라면, 집값을 낮출 생각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세금 깎아주면서, 지역구 표 얻을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이명박의 뒤를 따라 1% 정당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종부세 완화 논의를 주도한 김진표 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장은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갖고 있으면서, 경기 안양에서 처남 일가와 함께 도시형생활주택 건축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주택 건축 사업이 이해충돌에 해당한다며 정의당과 시민단체가 사퇴를 요구했지만 김 의원은 침묵하면서 버텼고, 결국에는 종부세 개악까지 이끌었습니다. 종부세 개악안은 국회 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거대 여당과 보수 야당의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은지라 통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수 여당 의원들의 목소리는 묻혔습니다.

2018년 7월 맹탕 종부세 개편안의 악몽

또다시 집값 상승을 불러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지난 2018년 7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밋밋한 종부세 개편 방안을 내놓은 뒤,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던 전례가 있습니다.

때마침 나온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용산 통개발' 발언도 한몫을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느슨한 종부세 개편안으로 인한 시장 기대감 상승이었습니다. KB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12월 1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은 12.3% 올랐습니다. 그런데 2018년 7~9월 기간에 오른 것만 따져도 5.05%에 달합니다. 한마디로 대형 화재가 발생한 셈입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종부세 개편안으로 장작이 쌓인 상태에서 박원순 시장 발언이 불을 붙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랴부랴 정부가 같은 해 9월 종부세를 최대 3.2%까지 인상하는 9·13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나서야 상승세가 다소 꺾였습니다.

이번에 민주당이 추진하는 종부세 개악안은 과거 재정개혁특위가 내놨던 맹탕 개편안보다 훨씬 더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옵니다. '세금을 덜 올리는' 방안을 발표해도 집값이 올랐는데 '세금 깎아주는 방안'이 나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집값이 올라서 문제라면 집값을 낮추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집값이 올랐으니 부자들 세금 깎아주자고 하는 게 지금의 집권당입니다.

"부동산에 대한 그런 어떤 이상한 기대 심리를 만들어 내게 되면, 그야말로 우리 국가 경제와 우리 국민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히게 될 것입니다. 정말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기심과 욕망으로 움직이는 부동산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주면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말입니다. 국가의 미래에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지역구 민심과 재선할 고민만 하는 여당 국회의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태그:#노무현, #김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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