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3 07:26최종 업데이트 21.07.13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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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정의 운동가인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전강수 교수가 경제정의와 부동산 문제에 관해 정론을 피력하고 그때그때 부각하는 경제 이슈를 해설하는 '전강수의 경세제민'을 연재합니다. '경세제민'은 세상을 잘 경영해 국민을 편안히 한다는 뜻으로 썼으며 이 말을 줄인 것이 '경제'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잠시 실현했던 '평등지권 사회'를 회복하기를 꿈꿉니다.[편집자말]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기간 중 9명의 후보는 다양한 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그중에는 상당히 참신한 내용도 있었지만 형편없는 내용도 있었다. 필자는 경제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최악의 공약을 발표한 후보, 주목할 만한 공약을 발표한 후보, 어정쩡한 공약을 발표한 후보를 가려내고 그들의 문제적 공약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는 후보도 있는데, 그들의 경제정책 공약에 대해서는 필자가 대체로 만족하거나 별 관심이 없다고 보면 되겠다. 

[최악의 공약] 박용진 후보와 정세균 후보의 경우

9명의 경선 후보 가운데 최악의 공약을 제시한 후보는 박용진 후보와 정세균 후보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박용진 후보는 김포공항 부지를 활용해서 20만 호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법인세와 소득세를 동시에 감면하겠다고 공약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대선경선 예비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한편 정세균 후보는 2025년까지 "공급을 대폭적으로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며 "만약 대통령이 되면 5년 동안 280만 호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공급폭탄'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했다('폭탄'이라는 용어 때문에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엄청난 고초를 당했음을 기억한다면 감히 이런 용어를 사용할 수는 없으리라). 정 후보는 반값, 반반값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격언을 생각하면 별 믿음이 가지 않는다. 

박용진 후보가 법인세·소득세 감세를 공약하며 내세운 명분이 재미있다. 일자리 창출과 내수 진작을 위해 새로운 길을 가는 실용 행보라고 주장했으니 말이다. 본인은 운동장을 넓게 쓰는 과감한 중도 확장 전략이라고 믿는 듯하지만, 사실 이는 시대착오적인 정책일 뿐이다. 이미 1980년대에 레이건과 대처가 각각 미국과 영국에서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펼쳤고 그 정책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레이건과 대처의 감세 정책이 시행된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 불평등은 급격하게 심화했고 저성장 기조가 고착되었다. 


감세 정책이 시행되기 전 1940년대~1970년대에는 미국과 영국에서 소득세와 상속세의 최고구간에 적용되는 한계세율이 무려 90%에 달했고, 법인세도 현재의 두 배 세율로 부과되었다. 이때 미국과 영국의 자본주의는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룩했으며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도 뚜렷이 완화되었다. 이 시기가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불리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니다. 

박용진 후보는 앞으로 대한민국이 이미 실패로 드러난 레이건식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소위 감세로 부자를 부유하게 하면 떡고물이 저소득층에게까지 떨어진다는 '낙수효과'를 믿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낙수효과라는 건 없다고 단언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주장은 어떻게 평가할까? 박용진 후보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도 감세 정책을 추진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아닌가? 박 후보는 저 유명한 줄푸세 정책을 까먹은 것일까? 

박용진 후보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길, 발상 전환의 정치를 추구한다고 말을 하지만, 그것은 이미 낡은 정책일 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의 정체성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박 후보는 새로운 길이라든가 실용 행보라는 레토릭으로 궤도 이탈을 가릴 생각은 하지 말기 바란다.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대선경선 예비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박용진 후보와 정세균 후보가 공통적으로 공약하는 주택정책은 서울과 수도권에 주택공급을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미 문재인 정부가 2.4대책을 통해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투기 광풍이 불 때 공급확대로 대처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킨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이는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주장에 굴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들은 투기적 가수요를 완전히 외면한 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므로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앵무새처럼 뇌까리는 사람들이다. 

투기 국면에서 공급확대를 추진하면 투기가 사그라지고 부동산값이 안정되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투기가 촉발된다. 게다가 실제로 공급이 이루어지는 4, 5년 뒤가 되면 부동산 시장의 상황이 역전되어 가격이 하락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데, 그 경우 투기 국면에서 결정한 물량이 쏟아져 나오면서 가격 하락을 가속한다. 그러므로 공급확대 정책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정책이 아니라 그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정책이라고 해야 한다. 

사실 수도권의 부동산 문제는 공급을 늘려서 대처할 일이 아니라 수요를 분산시켜서 해결하는 것이 옳다. 여기에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던 지역균형발전 정책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품은 사람들이 전국을 골고루 발전시키는 데는 관심없이 자기 코앞의 문제가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 행동하니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주목되는 공약] 김두관 후보와 양승조 후보의 경우

지지율이 낮아서 약체로 평가되는 양승조 후보와 김두관 후보가 주목할 만한 공약을 내놓았다. 두 사람은 수도권에서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에 반대하면서 지역으로 주택 수요를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두관 후보는 대담한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제시하면서 이를 주택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규정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대선경선 예비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김두관 후보는 지방을 5개 메가시티와 2개 특별자치도로 재편하여 지역균형발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미 100여 개의 기초지자체가 소멸 위험 단계에 도달했고 20, 30년 후에는 약 30%의 지방 도시들이 소멸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이 공약은 실질적으로 지방을 살리고 수도권 비대화를 완화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이라고 판단한다. 더욱이 김 후보는 이를 수도권 주택 문제를 해결할 근본 대책으로 파악하고 있으니 실로 혜안을 가졌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향후 최종적으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사람은 김두관 후보의 이 정책을 수용하여 자신의 핵심공약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양승조 대선경선 예비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양승조 후보도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수도권 3기 신도시를 전면 재검토하고 국토 균형발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양 후보는 김두관 후보처럼 이를 부동산 문제의 근본 해결책으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박용진 후보와 정세균 후보의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정책과는 결을 달리하는 의미 있는 공약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칭찬을 받을 만하다. 

김두관 후보는 예비경선을 통과하고 양승조 후보는 탈락했지만, 두 사람이 지역균형발전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수도권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값 폭등이 공급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을 내면화한 박용진 후보와 정세균 후보 그리고 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양승조 후보와 김두관 후보의 공약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깊이 있게 검토하기 바란다. 

[어정쩡한 공약] 이낙연 후보의 경우 

지난 연말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거론하여 스스로 지지율을 까먹은 이낙연 후보가 의외로 의미 있는 공약을 제시했다. 바로 토지공개념을 명확히 하는 헌법개정을 약속한 것이다. 이 후보는 출마 선언에서 "토지공개념이 명확해져 불로소득을 부자들이 독점하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땅에서 얻은 이익을 좀 더 나누고 사회 불평등을 줄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토지공개념을 헌법 가운데 구체적으로 기록할 것을 주장해온 필자로서는 환영할 만한 공약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선경선 예비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대한민국 헌법은 토지공개념 조항(제122조)을 갖고 있음에도 그간 그 정신을 구현한 제도가 도입될 때마다 위헌 시비가 일어나곤 했다. 헌법상 토지공개념 조항이 추상적이고 애매한 탓이었다. 따라서 우리 헌법에 토지공개념 조항을 좀 더 구체적으로 명기해 넣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이낙연 후보가 토지공개념을 명확히 하는 헌법개정을 공약한 데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토지공개념 정신을 구현할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 후보가 제시한 내용이 좀 이상하다. 핵심은 피하고 변죽만 울렸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낙연 후보는 택지소유상한법을 제정해 법인의 택지 소유 자체를 제한하고 개인의 택지 소유에 상한선을 두며, 개발이익환수법을 개정해 개발이익 환수를 강화하며, 종합부동산세법을 개정해 유휴토지에 가산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고, 여기서 생기는 추가 세수의 50%를 균형발전에, 나머지 50%를 청년 주거복지 사업 및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토지공개념을 이야기하면서 내놓은 대책이어서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핵심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현재 투기 광풍의 와중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아파트인데 뜬금없이 택지 소유를 제한하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낙연 후보가 제시한 대책으로는 아파트 아래 토지와 빌딩 아래 토지에서 생기는 불로소득을 환수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는 현재 문제가 되는 주택 투기와 빌딩 투기를 막을 수 없다. 더욱이 의미 있는 세수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이낙연 후보 측이 이 대책으로 추가 세수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계산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필시 세수는 얼마 되지 않을 텐데, 그것을 균형발전에 50%, 청년 주거복지 사업과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50%를 쓰겠다니 무슨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올지 모르겠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이라고 했던가? 큰 산이 울릴 정도였지만 튀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뿐이었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이낙연 후보는 토지공개념이라고 하는 말로 뭔가 엄청난 개혁을 추진하겠거니 착각하게 만들었지만 막상 그 내용은 너무도 초라해서 이 고사성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어떤 유형의 토지든 거기서 생기는 불로소득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환수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각종 특권에도 중과세해서 상당한 세수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미 우리 사회에 고착화된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할 수가 없다.

불로소득 과세와 특권 과세로 세수가 확보되면 '요람에서 대학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대형 국가재건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공화국'의 폐해가 극심해서 마침내 출산율이 0.9 이하로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도달한 지금, 다음 정권을 책임지겠다는 대선 후보라면 이 정도로 대담한 공약을 구상해야지 변죽만 울리는 어정쩡한 공약으로 무얼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국민의힘과 윤석열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경선을 통과한 김두관, 박용진, 이낙연, 정세균, 이재명, 추미애 후보 ⓒ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경우 이상과 같이 비판할 거리라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나 윤석열 후보, 그리고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경우 경제정책과 관련한 공약을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살림을 책임지는 존재다. 나라 살림에 관한 구상을 내놓지 않은 사람을 지지하는 국민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정말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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