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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비대면 약 배달'에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김부겸 국무총리가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무역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중소·중견기업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무역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중소·중견기업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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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pandemic·세계적대공황)이 전 세계를 패닉에 빠뜨린 지 1년 6개월이다.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고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전 국민이 방역지침을 준수하고, 백신 접종에 참여하고 있다. 지긋지긋한 비대면을 끝내고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를 좁힐 날을 기다리는 시점에 규제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원격진료, 원격조제, 의약품 택배가 등장했다.

지난 10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보건의료인 간담회가 아닌 중소·중견기업 간담회에서 "해외와 비교해 과도한 국내 규제가 있으면 과감히 없애는 규제챌린지를 추진하겠다"며 "세상의 변화에 정부가 제때 대응하지 못해 느끼는 기업들의 애로와 답답함을 풀어보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경제단체 조사 결과와 한국행정연구원 등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비대면 진료 및 의약품 원격조제 규제 개선 ▲약 배달 서비스 제한적 허용 등 15개를 선정했다. 

소비자 편의성 제고와 의약품 접근성 향상이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원격진료와 원격조제, 약 배달, 나아가 법인화된 약국을 통한 온라인 약국이라는 의제는 늘 보건의료 영역이 아닌 기업의 요구였다.

약국은 약이라는 재화만 공급하는 공간이 아니다
 
김부겸 총리가 '기업의 애로사항을 풀어보겠다'며 선언한 규제 개혁 과제들이 가장 원하는 모델은 미국의 온라인 약국 형태이며, 대표적으로 필팩(PillPack)을 인수한 아마존 파머시(Amazon Pharmacy)다.
 
필팩이 성장한 이유는 기존 미국의 약국에서 선보이지 않았던 두 가지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패키징이다. 미국 약국들은 처방된 약을 각각 따로 병 포장 형태로 조제하여 환자에게 제공한다. 필팩은 이를 한봉지, 한봉지 먹기 좋게 1회분 패키지 형태로 나누어 포장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두 번째는 보험 청구 대행이다. 전 국민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에서는, 약값이 환자의 보험 상태에 따라 다르고, 매번 처방전에 따라 보험사와 약값에 대한 협상을 해야 한다. 필팩은 이용자의 약값 청구를 대행해 주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개인 협상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만들어준다.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급격한 성장을 만들었다.

필팩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한국의 거의 모든 약국은 이미 전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변질 우려로 개봉하여 제공하면 안 되는 약이나 환자의 요청이 별도로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복약순응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약을 용법에 맞춰 혼합 조제하여 제공한다.

다수의 약국이 자동포장기(ATC) 혹은 반자동 포장기를 보유하고 있고, 각 약봉지에 복용자의 이름, 복용 날짜 혹은 조제 일자, 포장된 약의 이름 등 여러 정보를 기재하여 제공하고 있다.  
 
약사의 설정에 따라 각 포마다 환자 성명, 조제날짜, 복용법, 포장된 약의 이름과 성분, 복용날짜 등이 표기된다.
▲ 자동조제기 처방약 포장 약사의 설정에 따라 각 포마다 환자 성명, 조제날짜, 복용법, 포장된 약의 이름과 성분, 복용날짜 등이 표기된다.
ⓒ 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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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처방약의 본인부담금은 동일한 처방전을 가지고 동일한 약을 받으면, 전국의 어느 약국을 방문하여도 가격이 동일하다.⑴ 미국처럼 자신의 의료보험 상황이나 보험사와의 협상력, 이용하는 약국을 소유한 보험사에 따라 약값이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 국민건강보험이 이 모든 것을 동일하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개별 요양기관인 한국의 약국들은 심평원을 통해 환자의 처방전에 따른 약값을 건강보험에 청구한다. 필팩이 제공하는 두 가지의 서비스가 한국에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이렇듯 의료제도와 의약환경의 기본 바탕부터 전혀 다른 미국과 한국을 단순 비교하고, 마치 미국의 온라인 약국이 대단히 선진화된 것 마냥 포장하는 것은 약국을 오로지 약이라는 재화만 공급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1차원적 사고에서 비롯한 망상이다.
 
의료기관 방문 절약? 발기부전 판매처로 전락할 수도 
  
기업인들이 규제 혁파를 부르짖으며 얻어낸 원격진료와 약 배달은 현재 코로나 시기 한시적으로 가능하다. 비대면이 그 어느 때보다 대세이고 생존전략이 된 시기에 원격진료와 원격조제가 허용 취지와 달리 얼마나 빈약하게 운영됐는지는 일부 업체들이 실증하고 있다.

기업들은 동일한 처방약을 반복적으로 복용하는 만성질환자들의 불필요한 의료기관 방문을 줄일 것이라 했다. 도서산간지역 등 의료접근성이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을 위한 좋은 서비스가 될 것이라는 명분을 삼았다. 그런데 결과가 어떠한가. 

한 플랫폼 업체가 주요하게 광고하는 상품은 '다이어트약, 탈모약, 발기부전약'의 원격처방이다. 이용자 타깃도 서울 강남과 같은 직장인 중심의 의료 접근성이 좋은 것을 넘어 포화상태인 지역이다.
 
지난 3월 18일 보도된 <데일리팜>의 '"내 남편 비아그라 배달합니다"... 의약품 택배광고 논란'에 따르면, A 업체는 비대면의 허점을 파고 들어 일반인들에게 전문의약품 식욕억제제, 성기능개선제 등을 무료로 배달해 주겠다는 광고를 했다.
▲ 약배달앱 SNS 광고 지난 3월 18일 보도된 <데일리팜>의 ""내 남편 비아그라 배달합니다"... 의약품 택배광고 논란"에 따르면, A 업체는 비대면의 허점을 파고 들어 일반인들에게 전문의약품 식욕억제제, 성기능개선제 등을 무료로 배달해 주겠다는 광고를 했다.
ⓒ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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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에서 약 배달을 하려는 기업들은 약사와 환자 사이에 배달이라는 미명하에 개입하여 수수료 장사를 하려는 양면시장 구축이 목적이다. 마을과 읍내를 이어주는 유일하고 평화롭던 오솔길에 마적단이 진을 치고 통행세를 받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초기 양면시장 구축 때는 배달료 인하 전략과 가입 약국을 늘리기 위한 저가 수수료 경쟁이 있겠지만, 이용자가 늘면 결국 수익을 내기 위해 배달료와 수수료 인상을 택할 것이다. 그렇게 하고도 사업성이 없다면 생태계만 훼손하고 떠나면 그만이다. 
 
진정으로 정부가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과 편의성 제고를 위한 정책 추진이 필요했다면, 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규제개혁을 논의할 것이 아니라 의약계와 만나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어야 할 일이다. 단순히 원격진료, 원격조제, 약 배달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겐 원격과 더불어 방문 진료가 필요할 수 있고 만성질환자에게 의약품의 배달보다 약사의 가정방문을 통한 약력관리가 필요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을 투입해 운영하고 있는 공공심야약국의 활성화도 방법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원격조제와 의약품 배달이 꼭 필요한 환자의 케이스를 연구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건강증진에 필수적이라면, 건강보험 적용도 논의할 수 있다.
 
안전성과 편의성 모두 환자를 중심에 두고 사고하면 잘 있는 법과 규제를 없앨 것이 아니라 더 촘촘하고 현실적인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게 정답이다. 최소한의 안전성과 직업윤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법⑵들을 '규제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해체할 필요가 없다. 시장성과 돈벌이를 중심에 두고 사고하니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법과 제도가 시장주의자들에게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보일 뿐이다.

무엇이 더 안전하고 건강한가
 
약국은 더 이상 '약'이라는 재화만을 공급하는 곳이 아니다. 코로나 초기 공적마스크 유통량의 98%를 성공적으로 담당하며 증명했듯이, 약국은 국가적 재난위기 상황에서 공적 역할을 담당하고, 감염병 예방의 의무가 있는 기관이다. 로컬약국이 지니는 커뮤니티성이 자살예방, 치매안심지킴이, 아동/노인학대 신고 등 지역사회 취약계층과 사회안전망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제약물관리, 지역사회통합돌봄, 약물안전사용교육 등 지역 약사들은 조제와 투약 이후의 영역에서도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 온라인약국보다 지역약국에서 약사의 역할을 증대하는 방향이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노인 10명 중 9명이 만성질환을 1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또한 다제약물복용자(매일 10개 이상의 약물을 60일 이상 복용한 사람)도 2020년 기준으로 이미 200만 명을 넘어섰다. 약을 배달받지 못해 불건강한게 아니다. 다약제 복용과 만성질환 유병률이 늘어나는 지금의 초고령화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원격이 아니라 커뮤니티고 비대면이 아니라 방문과 돌봄이다.

 
지역사회에서 약국과 약사의 역할은 계속 증대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약국과 약사의 역할은 계속 증대되고 있다.
ⓒ 대한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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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조제와 약 배달 허용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편의성만을 생각하는 편협함이다. 보건의료 영역에서 기술의 발전과 제도의 개혁은 '그것이 얼마나 국민 건강에 기여하는가' 그리고 '보건의료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가'에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한다. 시장의 논리대로 편의성과 효율을 우선에 따져 혁신의 기준을 세우면, 약사는 세상에서 가장 불필요한 존재가 된다.

플랫폼만 남겨 영혼 없이 일하라면 그게 혁신인가. 편리하고 효율적인 사회가 안전하고 책임지는 사회를 전복하면서 일어난다면 그건 혁신이 아니라 파괴일 뿐이다. '규제를 풀면 혁신'이라는 공식은 깨져야 한다. 무엇이 더 안전하고 건강한가를 중심에 둔 기술도입과 제도 개혁이 비로소 '혁신'이다.

1) 전문의약품의 경우 요양급여의 대상이 되는 약물은 구매실거래가 제도에 의해 의약품으로 의한 이익을 전혀 남길 수 없다.
2) 의약품 택배서비스는 의료기관과 약국간의 담합우려 및 약화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의 문제 등에 기인하여 현행 약사법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대한약사회 정책이사 이자 늘픔약사회 운영위원입니다.


태그:#원격조제, #온라인약국, #커뮤니티케어, #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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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상이 작은 기여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노력합니다. 현) 대한약사회 정책이사 현) 늘픔약사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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