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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연구에서 야간노동은 뇌·심혈관계질환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각성 능력을 떨어뜨려 사고유발 가능성을 높이며, 수면장애를 가져올 수 있고, 각종 기왕력의 악화를 가져온다고 지적하고 있다.
 수많은 연구에서 야간노동은 뇌·심혈관계질환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각성 능력을 떨어뜨려 사고유발 가능성을 높이며, 수면장애를 가져올 수 있고, 각종 기왕력의 악화를 가져온다고 지적하고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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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야간노동'에 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토론회가 열렸다. 일과건강이 주관하고 송옥주(더불어민주당)의원실·강은미(정의당)의원실·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였다.

간혹 단위 사업장 노동조합에서 교대제 개선을 할 경우(지하철 노동자의 근무방식을 '3조2교대제'에서 '4조2교대제'로 전환 또는 자동차 노동자들의 경우 '주간연속 2교대제'로의 개편 등 필요에 의해서 몇 차례 연구되거나 토론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자는 적극적 논의는 조직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렇게 물꼬를 트면서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더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야간노동으로 인한 노동자 사망이 너무 심각한 지경에 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에는 야간노동과 관련해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제56조 3항)하고 임금 대신 휴가를 줄 수 있다(제57조)는 내용만 명시되어 있다. 반면 핀란드와 영국은 법에 명시된 매우 한정된 업무에 대해서만 야간노동을 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뿐만 아니라 핀란드의 경우 2개 조로 나뉘는 업무는 23시에서 새벽 1시까지만 일할 수 있도록 규정했고, 영국은 야간에 8시간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야간근무 후에는 주당 평균 90시간 이상 쉬도록 하는 규제 조항도 넣었다.

프랑스의 경우 법정근로시간은 주당 35시간이며 하루 근로시간은 1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또한 하루에 연속적으로 최소 11시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야간노동의 경우 1일당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노동자의 삶과 시민사회의 질 떨어뜨리는 야간노동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3월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심야·새벽 배송 업무를 담당하던 쿠팡 택배 노동자가 숨진 것과 관련해 "처참한 심야·새벽배송이 부른 예고된 과로사이다"며 "더 이상의 택배노동자 죽음을 막기 위해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줄 것"을 촉구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3월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심야·새벽 배송 업무를 담당하던 쿠팡 택배 노동자가 숨진 것과 관련해 "처참한 심야·새벽배송이 부른 예고된 과로사이다"며 "더 이상의 택배노동자 죽음을 막기 위해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줄 것"을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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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는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또한 수많은 연구에서 야간노동은 뇌·심혈관계질환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각성 능력을 떨어뜨려 사고유발 가능성을 높이며, 수면장애를 가져올 수 있고, 각종 기왕력의 악화를 가져온다고 지적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이 지난 4월 15일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승인된 노동자 중 463명은 뇌 혈관 질환으로 사망했다. 산업재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신청을 하고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의 2019년 국민사망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순환기 계통의 질병으로 매년 6만 명이 사망하고 있다. 이 중 약 반 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나타난다. 이들의 사망이 직업과 전혀 관련이 없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업무 관련 뇌·심혈관계질환 사망자는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최근 야간노동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자동차 완성차 업계나 부품업계, 청소 노동 등에서 없애거나 줄여가고 있는 야간노동을 역행적으로 늘려가는 산업이 있다. 물류 산업이다. '총알배송', '당일배송'이라는 슬로건들이다. 쿠팡, 마켓컬리, 그 외 다른 배송업체에서도 보인다. 이는 신종 사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결과 2020년 택배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와 배송 노동자가 수없이 사망했다. 이 노동자들의 사망원인은 주로 과로사였고 야간노동·장시간 노동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
 
1년 5개월 동안 물류 노동자 중 21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야간 노동과 관련된 사망으로 확인되었다.
▲ 물류노동자 중 야간노동자 과로사 현황(2020.1~ 2021.5 기준)  1년 5개월 동안 물류 노동자 중 21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야간 노동과 관련된 사망으로 확인되었다.
ⓒ 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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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기업의 마케팅이 적중했다는 의미이다. 장 보러 가지 않고도 새벽에 반조리 된 신선한 식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야간노동의 위험에 빠진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소비자들의 생각은 바뀔 가능성이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택배종사자의 근로환경 개선에 대한 국민의견조사 결과(2020.11)'에 따르면, 택배 종사자 처우가 개선된다면 배송 지연을 감내할 수 있다고 응답한 국민이 87.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충분히 변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특수건강진단'을 하고 '휴게실 확보'를 하게 되면 야간노동 문제가 완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특수건강진단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예방적 조치는 '건강 이상이 있으니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일을 하라'는 정도의 소견밖에 들을 수 없다. 건강 이상이 생기지 않게 막아야 하는 것이다. 휴게실을 확보하면 뭘 하겠나. 물류센터에서 야간에 하루 5만 보씩을 뛰듯이 걸으며 물건을 옮겨야 하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데.

24시간 편의점, 24시간 운영 식당, 24시간 PC방, 24시간 찜질방, 24시간 스터디방, 24시간 카페 등이 급격하게 증가해 왔다. 식당의 경우는 코로나로 강제적인 영업시간 제한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코로나 상황이 완화되면 식당들은 24시간 불을 밝힐 것이고, 쇼핑몰도 24시간 현란하게 반짝일 것이다.

주민들은 빛 공해에 시달릴 것이고 노동자들은 누군가 야간노동을 해야 한다. 24시간 왁자지껄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도시는 누구를 위한 도시의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 모두가 24시간 흥청거리는 소비지향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늦었다, 이제는 규제가 시작되어야 한다
  
'새벽배송'으로 유명한 업체 마켓컬리 광고 중 일부
 "새벽배송"으로 유명한 업체 마켓컬리 광고 중 일부
ⓒ 마켓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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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의 조건을 만족하는 국가)에 속해 있다. 높은 소득수준은 물론 인구경쟁력도 가진 국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야말로 아침에 눈을 뜨니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한류는 어떠한가. 대한민국을 모르는 나라의 국민이 있기는 할까.

이런 상황에서 '미친 듯이'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러다가 돌연사를 하거나 정말 정신질환에 노출되어 자살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 자살률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 수준이다. 연간 자살자 1만4천여 명 중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약 반 수에 이른다. 이들 또한 업무 관련성이 전혀 없을까. 이제는 노동자들을 죽음의 길로 이르게 하는 모든 제도에 대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너무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야간노동이 주간노동보다 힘들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명제이다. 따라서 야간노동은 시간 자체를 줄여야 한다. 또는 야간 노동자에게는 더 많은 휴식권을 부여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야간노동 시에는 연장근로를 금지해야 한다.

또한 월 야간노동 일수는 14일 이내로 제한해야 하며 연속 야간근무는 3일 미만으로 제한해야 한다. 야간근무를 2일 이상 연속한 경우 48시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더불어 야간업무의 부담 경감을 위해 야간근무 시에는 주간보다 긴 휴게시간 등의 규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규제를 도입해도 이 규제가 작동되지 않는 노동자들이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이다. 그리고 5인 미만 사업장 취업자들이다. 약 200만 명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그리고 취업자의 36%에 이르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보호 대상이 아니다. 갈수록 산이다.

그러나 넘어가야 한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라고 근로기준법 적용을 못 받는 나라 역시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한 수준이다. 근로기준법에 대한 전면적인 개정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한인임 님은 일과건강 사무처장입니다.


태그:#야간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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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에서 일할 권리를 위해 공부하고 싸우고 있는 연구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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