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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휴대전화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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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제목을 '쉬는 날'이라고 적으니 내 친구가 만든 노래인 '빨간 날'이 떠오른다. 일요일과 삼일절에 이어 부처님 오신 날이 빨간 날이라 좋다는 노래다. "내 생일도 빨간 날이었으면 좋겠다"라는 게 마지막 노랫말이다.

학교 가기 싫고 출근이 지옥 같을 때 달력의 빨간 날은 숨통 트이는 쉬는 날이 된다. 내 생일 날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쉬면 좋겠다는 염원. 이해가 된다.

나도 휴일을 하나 만들었다. 보름여 된다. 내 휴일이 아니다. 먹는 걸 쉬고 생각하는 걸 쉬며 지낸 1주 단식을 마치는 날에 크게 깨친 바가 있어 내 휴대전화에 휴일을 만들어 줬다. 이날은 내 손에 쥐어 뒷간까지 따라 다녀야 하던 휴대전화가 완전히 해방되는 날이다.

전화통화는 물론 문자나 카톡도 쉰다. '네이버'와 '다음'이 쉬니 뉴스도 쉰다. 당연히 유튜브도 쉰다. 즐겨 듣는 케이비에스 콩의 클래식 에프엠도 쉰다. 휴대전화가 안 보이면 어쩔 줄 몰라 하던 내 불안증도 쉰다.

자비로운 주인장의 선심으로 쉬는 날이 생긴 내 휴대전화가 지구에 있는 휴대전화 중 유일하게 자기 휴일을 갖게 되어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내가 좋아진 것만은 확실하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아무리 긴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라도 전화벨이 울리면 "잠시만요"라는 말을 하고는 누군지도 모르고 무슨 일인지도 모를 전화기부터 집어 들던 나를 보지 않게 됐다. 괜히 유튜브나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보게 되는 건강 채널, 정치 담론, 명상 채널, 쇼핑몰 순례 등에 내가 질질 끌려다니지 않아서 좋다.

휴대전화가 쉬는 날은 내가 보는 건지 휴대전화가 나를 보는 건지 주체와 객체가 뒤집히는 일이 없다. 이날은 생활의 유용한 도구여야 하는 휴대전화가 어느새 주인 자리를 넘보면서 주인의 생각과 감정과 하루 일정까지 쥐락펴락하는 일도 없다. 공짜 마일리지나 몇백 원 쿠폰에 눈이 멀어 함부로 누른 '동의합니다' 때문에 걸려오는 마케팅 전화를 안 받아서 좋다.

이날은 내 뜻과 내 결정에 따라 내 하루가 작동한다.

'연결의 과잉'을 끊어보니, 이렇게 좋네요 

밴드나 텔레그램, 페이스북을 끊은 지 오래된다. 인스타그램과 위챗도 지운 지 오래다. 그래도 아무 문제 없다. 카톡도 개인 문자 외에 단체 방에 올라온 글에는 아예 반응을 않기로 했다. 그래야 내 문자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일이 사라져서다.

내 동의를 얻지 않고 불쑥 초청된 단체 카톡방은 아예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부른다고 쪼르르 달려가는 것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어울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내 오감을 확실하게 내 관리 아래 두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내 에너지를 빨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내린 결정들이다. 연결의 과잉, 정보의 과잉은 참 앎을 방해한다. 나를 진짜로 필요로 하는 사람은 개인 연락이 온다. 그때 연결되어도 아무 탈이 없다.

내 휴대전화가 쉬는 날에 필요한 조치는 해 뒀다. 자동응답 앱을 설정해서 전화를 건 사람에게 저절로 안내문자가 보내진다. 카톡 프로필에도 같은 안내문을 올린다. "휴대전화가 쉬는 날입니다. 제 휴대전화에도 휴일을 주기로 했습니다. 문자 남겨 주세요"다. 문자가 남겨져 있으면 내가 대답하고 싶은 때 대답한다.

아울러 나는 내 문자에 바로 답이 안 와도, 내 전화를 잘 안 받아도 그려러니 하고 넘겨 버린다. 널리 알릴 게 있으면 단체 카톡방에 올리기 보다 시간이 걸려도 개개인에게 하나씩 보낸다.

잔치 지난 지 며칠 뒤에 쉰 떡 나누듯 하는 1/엔(n) 연결 따위를 나는 거부한다. 사람들이 'ㅋㅋ' 나 이모티콘을 날리며 종일 에스엔에스(sns)에 매달리는 것은 외로워서다. 그런데 그게 언 발에 오줌 누는 짓이다. 외로움을 더 쌓게 된다.

누군가의 종으로 살지 싶지 않아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를 종으로 부리려는 것들이 넘실대는 요즘이다. 지금은 휴대전화가 일주일에 한 번 쉰다. 봐서 쉬는 날을 더 늘일 생각이다. '지금 여기'를 온전히 살려는 발버둥이다.

덧붙이는 글 | <경남도민일보>에 실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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