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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관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허성관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 민화협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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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은 한 사람만 건너면 대체로 그 연이 닿는다고 하여 흔히들 '그물코 인생'이라고 한다. 이는 물고기를 잡는 그물처럼 서로 촘촘히 연결됐다는 뜻일 게다. 나는 지난해부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롯데장학재단 후원의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사업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그 일로 롯데장학재단 허성관 이사장을 이태에 걸쳐 4차례 만난 바, 그분의 처신과 인품에 시쳇말로 푹 빠졌다.

그 첫째는 제1성이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안 하겠다"는 말 때문이요, 그 둘째는 독립유공자 후손 선정에 이념이나 사상을 따지지 않는 점이요, 그 셋째는 마지막 날 말씀이 당신 고향 사람도 지원했다는 말인데 누구라고 끝내 밝히지 않는 그 공정성 때문이었다.

이른바 선량이라는 국회의원들도 해마다 연말 예산 배정 때면 쪽지 예산이라 하여 청탁이 오간다는 데, 어찌 장학재단 이사장으로 청탁을 받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끝내 단 한 마디 부탁이 없었던 그 칼날 같은 공정성과 인품에 솔직히 나는 감동했다. 그래서 나는 헤어지면서 자청했다.

"언제 차담 한번 나누고 싶습니다."

내가 허성관 이사장을 만나고자 했던 이유는 그가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숨은 공로자요, 이번 독립운동가 후손 장학생 선발에 이념이나 사상문제로 장학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후손에게 거액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용기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뷰에 앞서 2004년 친일인명사전 모금 운동 당시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이준호)에게 그때 상황을 확인 겸 문의했다. 그는 "허성관 행자부 장관이 캠페인 초기 일찌감치 성금을 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모금 운동이 관심을 좀 더 끌기도 했다"고 증언해 주었다.

그리하여 지난 11일 오후 3시 서울 을지로 어귀에 있는 롯데장학재단에서 만나기로 했다. 민화협 이시종 사무차장과 김민아 간사의 길 안내로 롯데호텔 26층 장학재단 사무실로 가서 곧장 대담에 들어갔다.

"친일인명사전, 역사에 기록 남겼다는데 의의"
 
대담 장면.(왼쪽부터 박도 기자, 허성관 이사장, 이시종 민화협 사무차장)
 대담 장면.(왼쪽부터 박도 기자, 허성관 이사장, 이시종 민화협 사무차장)
ⓒ 민화협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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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인명사전 모금 운동 때 알려지지 않은 일들을 얘기해 주십시오.
"하찮은 일입니다. 돈 10만 원이 그렇게 소중히 쓰일 줄 몰랐습니다. 내가 후원했다는 소문이 모금 운동에 더욱 불을 붙였다고 하더구먼요. 아무튼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방해 공작으로 친일 인사들을 처벌은 하지 못해도 역사에 기록을 남겼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 1947년 경남 창원군 진천면 밀암리 대방마을에서 태어난 걸로 아는데 전남 광주 서석초등학교, 광주서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신 걸로 압니다. 그렇게 된 연유를 들려주십시오. 
"좀 곤혹스러운 질문입니다. 해방공간(6.25전쟁)에서 아버님이 인민군에게 보리쌀 한 말 준 게 부역죄로 복역하게 돼 고향에서 살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마침 고모부 집안사람이 광주에서 전남 건설국장을 하셨는데 그분이 아버님 친구로 광주로 오라고 하여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광주제일고는 8개 반으로 500여 명이었는데 경상도 학생은 둘뿐이었습니다. 좋은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왕따'나 영호남 차별 같은 것도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튼 그 이후도 아버님 죄목으로 연좌제에 걸려 엄청 고생했습니다."

- 연좌제로 고생한 분이 연좌제를 총괄했던 부서의 장관이 되신 셈이네요.
"이야기가 되네요(웃음)."

- 노무현 정부 당시 제10대 해양수산부 장관, 제6대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을 역임하셨는데 대통령에게 발탁된 연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동아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입니다. 막내아우가 노무현 대선 때 운동을 하였는데 어느 날 노 후보가 저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묻자 '그냥 알아서 도와주세요' 하더군요(웃음).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원으로 활동했는데 저에게 해수부장관을 하라고 말씀하더군요. 그 말에 겁이 덜컹 나대요. 집사람한테 상의하자 '당신이 해수부에 아는 게 뭐 있소? 괜히 우사하지 말고 그만 부산으로 내려오소'하더군요.

그런데 동서인 <중앙일보> 최우석 주필은 자네가 산전수전 공중전에 육박전까지 다 치른 역전의 용사인데 보통 이상은 잘 할 수 있을 거라면서 '해라'고 적극 밀더군요. '너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 아마도 부하 공무원들이 싫어하지 않을 거다. 미국에서 교수 생활까지 했으니까 국제 감각도 있다. 평소 독서량이 많아 실수도 적을 것이다. 기업, 은행, 대학, 경실련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니 능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엄청 용기를 돋우데요. 해수부장관직을 맡고 다행히 큰 실수하지 않고 마치자 노 대통령이 잘했다고 그러면서 다시 행자부장관직을 부탁하더군요." 

"같이 잘살아 보자는 방식으로 남과 북이 접근해야"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증서 수여식(왼쪽 끝이 허성관 이사장)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증서 수여식(왼쪽 끝이 허성관 이사장)
ⓒ 민화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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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관 이사장을 곁에서 지켜보니 대단히 세심한 분이었다. 지난 4월 28일 오후 2시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증서 수여식이 끝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그때 앞줄 중앙에는 장학생 수여자들을 세우고 심사위원들은 뒷줄에, 자신은 앞줄 맨 가에 섰다.

흔히들 상장이나 증서 수여 후 함께 기념 촬영할 때 심사위원은 전면 의자에 앉고 대상자는 그 언저리를 에워싸기 마련인데 허 이사장은 그날 주인공들을 전면에 서게 했다. 그리고 올해 탈락자에게는 내년에 다시 응모하면 좀 더 깊이 고민하겠다는 따뜻한 위로의 말도 전했다.

- 올해 세수 76세로 온갖 세파를 다 치른 그야말로 서당의 훈장과 같은 풍모요, 시골 촌장 같은 풍모입니다. '마흔을 넘긴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의 중후한 인품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제 인품이 중후하다는 말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첫째 누구하고나 잘 놉니다. 제가 전기 대학에서 떨어진 뒤 2차 대학인 부산 동아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할 때는 그 대학에 적만 두고 재수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학교에 다니고 보니까 동아대 학우들이 공부는 다소 뒤지지만 인간적인 면이 저보다 훨씬 훌륭하고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그때 저는 공부가 사람 사는 데 별 게 아닌 걸 알았습니다. 조숙했다고 할까 일찍 성숙한 셈이지요.

둘째 군대 생활을 졸병으로 최전방 휴전선 철책에서 복무했습니다. 시골 가난한 농사꾼 전우들과 같이 지냈습니다. 거기서 험한 꼴도 많이 보고, 바닥 세상사를 죄다 겪으면서 많이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셋째로 장관을 하면서 공익과 사익을 엄격히 구분하려고 애썼습니다. 장관에 부임하면서 간과 쓸개는 깨끗이 씻어 고향 집 고방에 뒀다 생각하고 시작했지요. 제 개인의 이익은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자세 탓인지 큰 과오 없이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었나 봅니다."
      
- 요즘 '백세 시대'라고 하는데 나라와 겨레를 위해 정치 일선에서 더 일할 생각은 없는지요?
"전혀 없습니다. 정치지도자는 젊을수록 좋습니다. 우리 정치판은 지금보다 더 젊어져야 합니다."

- 꽉 막힌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방안과 나라와 겨레를 위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문제에 대한 견해도 한 말씀 해 주십시오.
"남과 북은 서로 엮이는 게 많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서로 상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잃을 게 많아지게 되지요. 그러면 전쟁의 위험도가 팍 줄어듭니다. 남과 북은 서로 관리의 대상이지 결코 타도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됩니다.

서로 처지를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인내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통일이 당장 어렵다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비즈니스를 하면 남북 모두 엄청난 이익이 있을 겁니다. 서로 같이 잘살아 보자는 방식으로 남과 북이 접근해야 합니다."

'부끄럽지 않게 잘 먹고 잘 살자'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허성관 이사장.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허성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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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들의 일자리 문제 해결방안은?
"경제 운영의 발상 전환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기본 일자리는 만들어줘야 하고요. 또, 우리 사회 젊은이들의 출산율이 낮은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이익단체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사설유치원 경영자에게 휘둘려 어린이들의 무상 보육 문제를 해결치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지요.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기본 소득도 정부가 보장해 줘야 합니다. 그래야 소비가 살아나고 기업도 운영이 됩니다."
     
- 부동산 문제의 해결 방안은?
"정부의 규제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을 버려야 합니다. 역대 어느 정권도 부동산 규제로 해결치 못했습니다. 시장에 내버려 두고 대신에 정부는 집을 판 값에서 산값을 빼고 물가상승분을 제외한 나머지 이익금의 90% 정도는 세금으로 환수케 하면 저절로 집값이 잡히게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그 재원으로 공공주택을 건설하여 아주 싼값에 분양하거나 임대하면 부동산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겁니다."

- 미국 유학도 하시고 오랫동안 미국에서 사신 걸로 아는 데 바람직한 한미관계는?
"미국인은 자존심이 없는 사람을 대단히 멸시합니다. 외교는 당당하게 해야 합니다. 곧 우리의 주체성, 정체성, 애국심이 바탕이 돼야 합니다. 미국이 부당한 요구를 하면 거절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미래상은?
"전통사상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선도(仙道) 사상, 곧 '홍익인간' 속에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상생주의 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습니다."

- 평소 좌우명은?
"'부끄럽지 않게 잘 먹고 잘 살자'입니다(웃음). 좀 고상한 말을 하자면 논어의 자로(子路)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입니다. '제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제대로 되고, 제 자신이 올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한다 해도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는 말입니다."
      
- 인간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그분의 장점은 첫째 사고가 유연하고 아주 화끈한 전형적인 부산사람입니다. 둘째는 애국심이 대단히 강합니다. 셋째는 문제의 핵심을 아주 잘 짚습니다. 그 점은 아주 천재적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을 잘 설득합니다. 한 마디로 직관력이 뛰어났습니다. 매우 탁월한 분이었지요. 또한 내공이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남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 큰 단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 제가 미처 질문하지 않은 것 가운데 꼭 하실 말씀은?
"언론을 개혁해야 합니다. 지난날 언론인은 지사적 면모가 있었는데 이즈음에는 서생의 면모입니다. 서생(書生)이 아니고 서생(鼠生)입니다. 언론인들이 건전한 비판의 역할보다 스스로 플레이어 곧 경기자로 뛰려고 하지요. 자기들이 공직자를 낙마도 시키고, 정권도 창출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가짜 뉴스도 만듭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심층 취재는 없고 악의적인 뉴스를 양산하기도 하지요."

그는 롯데장학재단은 롯데 재벌이 '여론 무마용이나 벌칙으로 만든 게 아니라 창업자의 순수한 사회 환원 정신으로 만든 거'라는 기자가 미처 질문치 않은 말도 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기분 상쾌한 하루였다. 세상은 살만한 곳, 아름다운 사람이 살고 있기에.

태그:#허성관, #민화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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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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