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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약은 결코 숨길 이유도 없고 숨길 수도 없으니, 거짓 비법에 현혹되지 말고 가장 좋은 치료를 받으시길 권장합니다. (사진은 자료사진)
 좋은 약은 결코 숨길 이유도 없고 숨길 수도 없으니, 거짓 비법에 현혹되지 말고 가장 좋은 치료를 받으시길 권장합니다. (사진은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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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에 오시는 환자분들 중에서는 유독 '의사들은 모르는' 혹은 '의사들은 말해주지 않는' 건강 비법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이 보입니다. "아니, 의사도 모르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하면 아는 사람에게 들었다거나 인터넷에서 봤다고 하시니 근거를 되물을 수조차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지요.

한의학의 최고 의서인 '동의보감'에는 각종 질환과 증상들에 대한 처방이 나열돼 있는데, 비싸거나 구하기 힘든 약재들로 만든 처방들 외에 비교적 흔한 약재로 만든 처방, 그리고 마지막엔 단방(單方)이라고 하여 한 가지 약재로 쓸 수 있는 경우들도 나열해두었습니다.

선조 임금이 동의보감 저술을 명한 이유도 그러하거니와, 허준 선생이 책을 완성할 시기는 전란을 겪고 민생이 극도로 피폐해져 있을 때입니다. 비싼 약재를 구하기 힘들면 일반 백성들이 산과 들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소개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한방'이란 이름이 붙은 먹거리나 제품을 소개받을 때 보는 내용들이 주로 이런 것들입니다. 물론 어떤 식당엔 궁서체로 '동의보감에 따르면 고등어에는 오메가쓰리와 같은 항산화물질이 풍부하여' 같은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써놓기도 했지만, 대체로 예로부터 모든 음식은 일정한 약성을 지니고 있다 보니 아주 의미 없는 것들은 아닙니다.

몇 년 전, 주말 진료를 마치고 퇴근할 때가 되어 정리를 하고 있는데 한의원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70대 여성분으로 추정되는 다급한 목소리의 보호자는 "지금 우리 할아버지가 수돗물 틀어놓은 것처럼 땀을 줄줄 흘리면서 손을 떨고 있는데 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왜 한의원으로 전화를 하셨을까 생각하니 119는 왠지 큰일이 벌어진 것 같고, 주말에 진료를 하는 병원은 우리 한의원이 가장 먼저 생각나셨나 봅니다.

전화로만 전해듣기엔 저혈당 쇼크 증상이 아닌가 하여 '할아버지가 평소 당뇨병을 앓고 계시냐' 물었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그럼 당뇨병 때문인 것 같으니, 우선 집안에 사탕이나 초콜릿, 아니면 꿀물이라도 좀 타서 드리고 변화가 없으면 구급차를 부르셔야 한다고 안내했습니다. 안 그래도 방금 꿀물을 한 그릇 타드렸다고 합니다.

다행히 그 몇 마디 나누는 짧은 사이에 전화기 너머 저 멀리에서 "나 이제 괜찮어~" 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결국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 분은 제가 명의라고 하면서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고, 좀 멋쩍긴 했으나 손해보는 일은 아니라 저도 허허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겸양의 인사를 했습니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에 혈당이 너무 떨어져서 저혈당 쇼크가 왔을 때 우선 당분을 섭취하면 금세 호전되는 것은 당연한 원리이므로 꼭 알아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잘못 해석하면 '당뇨병에 단 것 먹지 말라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라거나, '인사불성이 되면 병원 갈 필요 없이 꿀물이 최고다'라는 식의 잘못된 '건강 비법'으로 비화되기 십상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틀린 정보임이 확실할 텐데, 작은 정보에도 흔들리기 쉬운 환자들에게는 큰 유혹으로 작용하기에, 의외로 믿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나만 알고 있는 '고급정보'는 일단 의심하고 보자
 

그리고 의학은 아직도 주술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신비로운 느낌을 좋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옛날 시골 한의사 선배가 축구를 하다 발목이 골절돼 다리를 절면서 진료했습니다. 치료를 잘 하시니 동네에 "용한 '절름발이' 침쟁이가 왔다"는 소문이 돌아서 환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그 바람에 발목이 다 나았는데도 다리를 계속 절어야 했다는 '한의계의 카이저소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굳이 파스를 안붙이고 생치자를 빻아서 밀가루풀에 개어 통증 부위에 붙이시는 환자를 만났습니다. 그분이 '파스보다 이게 더 좋다'고 하시는 걸 듣고 모처럼 잔소리를 좀 해드렸습니다.

"어머니, 치자가 파스보다 좋으면 약국에서 치자 팔지 파스 팔겠어요?"

"그거 의사들이 몰라서 그렇다. 우린 옛날부터 치자떡 개어서 붙였어."

"그거 옛날에 파스 없을 때 치자로 대신 쓰신 거예요. 선풍기 없을 때 부채 썼다고 부채가 선풍기보다 시원한 거 아니잖아요. 치자가 더 좋았으면 의사, 한의사에 제약회사들이 돈도 있고 힘도 있는데 왜 굳이 파스 만들어 팔겠어요. 치자를 간편하게 붙이게 해서 팔았겠지요. 고생하지 말고 파스 사서 쓰세요. 어머님 같은 분들 위해서 치자 들어간 파스도 나와요."

아직도 그 할머님은 저 몰래 치자떡을 붙이시나 봅니다. 몸 곳곳이 노랗게 물든 걸 보고 '어차피 치명적인 것도 아닌데 환자분 마음 편한 게 낫다' 싶어 "치자도 좋긴 좋다"고 안심시켜드리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언론이나 출판계에서는 의사들이 환자들 건강해질까봐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처럼 조장하거나 한의학을 무슨 연금술처럼 선전해서 자신들만 아는 비법이 있다고 속이는 장사치들이 활개를 치는 것 같아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거짓 의학정보를 걸러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일단 그런 고급정보가 있는데 의학계에 알리지 않고 당신에게만 전해진다면 의심하세요. 입장을 바꿔서 내가 아무도 모르는 비법을 알아냈다면, 누구에게 먼저 말하는 게 내게 이득이 될까요? 의학계에 발표하면 대대손손 팔자 고칠 수 있는 일인데 왜 나에게만 알려줄까요. 그건 나만 속을 것 같아서 아닐까요?

또, 여행을 갔는데 기가 막힌 약효를 가진 사향, 웅담, 녹용 등을 여행객인 나에게 판다고 한다면 역시 의심하세요. 내가 그렇게 좋은 약재를 구했을 땐 당연히 제약회사나 병원에 팔지 여행객에게 팔 리가 없습니다. 물론 어리숙한 여행객에게 몇 배 비싼 가격을 받아낼 자신이 있는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죠.

제약업계에서는 해마다 수백조 원이 연구개발비로 쓰이는데, 제대로 된 약 하나만 개발해도 그만큼 큰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모든 치료법과 약재들은 다 개발 중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약들을 우리가 지금 병원과 약국에서, 혹은 한의원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으며 간편하고 저렴하게 누리고 있는 겁니다. 좋은 약은 결코 숨길 이유도 없고 숨길 수도 없으니, 거짓 비법에 현혹되지 말고 가장 좋은 치료를 받으시길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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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 판교 한성주한의원 원장. 첨단의 전통의학을 꿈꾸는 판교의 한의사.
 
한성주(한성주 한의원 원장)
 한성주(한성주 한의원 원장)
ⓒ 한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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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제휴사인 <참소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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