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0 12:03최종 업데이트 21.04.2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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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언 3년이 흘렀다. 그의 3주기에 즈음하여 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함께 공동기획으로, 4월 16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우리 시대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의 정치실천: 기록으로 기억하다] 기록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말]
(* 지난 기사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 청소미화원분들과 노회찬①에서 이어집니다.)

'6411 청소노동자'와 노회찬재단 : "노회찬의 꿈, 여전히 미완성"
 

노회찬과 함께 꿈꾸는 사람들 노회찬재단 창립기념공연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이 2019년 1월 2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을 당시 모습. 500여 석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 가운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사진은 다함께 마지막 순서로 '그날이 오면'을 부르는 모습. ⓒ 곽우신

 
2019년 1월 24일 서울시청 다목적홀. 

노회찬의 꿈과 뜻을 이어가기 위해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이 출범했다. 노회찬재단 창립기념 공연 <노회찬, 함께 꾸는 꿈>은 그를 함께 기억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6411번 버스'로 대표되는 그의 뜻을 이어받는 자리였다(곽우신, 6411 첫차 탄 사람들의 약속 "노회찬과 함께 할게요", <오마이뉴스>, 2019년 1월 25일).
 

노회찬과 함께 꿈꾸는 사람들 노회찬재단 창립기념공연 '노회찬, 함께 꾸는 꿈' 중<작은 뮤지컬 6411>에서. ⓒ 곽우신


축하공연으로 올라온 <작은 뮤지컬 6411>은 이렇게 노래했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그 이름. 내가 불러줄게요, 당신의 이름. 아무도 알려하지 않던 사람들. 내가 기억할게요, 그 이름."


2020년 1월 노회찬정치학교 1기생들은 노회찬을 기억하며 새벽첫차에 올랐다. 재단 창립 1주년 기념식('우리, 이어지다' 1.21.)에서는 자발적으로 모여 개그맨 윤형빈 크루와 6411 버스를 주제로 콩트를 했다.

이들은 집값 걱정을 하는 신혼부부, 홀로 청소일을 하는 할머니, 육아 걱정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약자들로 분해 현실의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재단 창립 1주년 기념식('우리, 이어지다'). ⓒ 노회찬재단

   
이런 노력들이 모인 결과였을까? 

2019년 6월 10일 서울시는 새벽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 노선을 파악, 4개 노선에서 첫차의 배차를 늘려 운행하기 시작했다. 해당 노선은 146번(상계~강남), 240번(중랑~신사), 504번(광명~남대문), 160번(도봉~온수)이다. 6411번 버스는 빠졌다.

그러나 체감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새벽 출근길 만원 버스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고단함을 덜겠다는 취지에서 일부 노선 첫차를 2대씩 배차·운행했지만 혼잡도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7월 21일 KBS 9시뉴스의 <'6411 버스의 투명인간들'은 바뀌었을까>는 이렇게 보도했다.  

"노회찬 전 의원 때문에 유명세를 탄 6411번 버스, 버스 안은 여전히 콩나물시루 같습니다. ["(노회찬 의원) 돌아가셨을 때 얼마나 (언론을) 탔어요. 날마다, 방송국마다. 그런데 하나도 변한 게 없지."]

최근 서울시가 새벽 만원버스를 줄이기 위해 증차를 했는데 6411은 빠졌습니다. 한 시간 넘게 꽉 찼던 버스는 일터가 있는 강남으로 넘어오고 나서야 자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투명인간을 위해 정치가 존재해야 한다던 노회찬의 꿈. 여전히 미완성입니다. KBS 뉴스 김연주입니다."

 

2019년 7월 21일 의 '6411 버스의 투명인간들은 바뀌었을까 보도 중 화면갈무리 ⓒ KBS뉴스9

 
경향신문 이명희 기자의 칼럼(과연 남의 일인가, 2019.6.25.)은 영화 <기생충>과 '새벽첫차'를 함께 불러내며 지금·여기의 현실과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내 처지를 벗어나 다른 이의 삶을 알아채는 것은 쉽지 않다. 동 트기 전 집을 나선 노동자들로 버스 첫차가 얼마나 붐비는지, 그 안에서 그들이 새벽잠 쫓으며 밀리지 않기 위해 두 다리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를. 컵라면이 아닌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야만 하는 누군가의 '현실'은 보이지도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재빨리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재단해 버린다. 나와는 상관없는 삶이라고.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나는 내내 불편했다. '봉테일'이 꾸며놓은 영화 속 가난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인 것처럼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을 보면서 마음이 서늘해졌다. 과연 지금의 나는 그들과 다른가."


노회찬 재단의 <6411 프로젝트>
: "새벽의 노동보다, 변하지 않는 노동 현실이 더 고된 게 아닐까"


2020년 노회찬재단은 봉제, 청소, 돌봄, 원전 노동 영역에서 일하는 '투명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 그 대안을 종합적으로 제시하는 <6411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작업의 결과는 전태일 50주기 국제학술포럼(2020.11.10.)에서 노회찬재단이 주관하는 <노동존중사회와 정치> 세션에서 발표됐다.

이 가운데 '6411 버스 첫 승객 분석을 통한 청소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가톨릭대 사회학과 신희주 교수팀)는 6411번 버스 탑승객 전수 설문조사와 교통카드 빅데이터 분석 등 7개 데이터 자료를 바탕으로 새벽 4시에 출발하는 두 대의 첫차를 분석한 결과다.

6411번 버스는 서울 구로구에서 출발해 영등포구, 동작구를 거쳐 강남구에 도착한다. 탑승객 가운데 여성이 78.7%, 60대 이상이 83%, 청소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85%에 달한다. 문제는 열악한 처우의 청소원이라는 업종 내에서마저 성별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여성일수록, 고령일수록 초단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내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청소업 내부에서도 성별 불평등 지속"... 새벽 4시 출근하는 노동자들 

"청소업은 다른 직종에 비해 고령화가 심하고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평균연령은 61.1세(전체 노동자 평균연령 45세). 남성에 비해 여성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과 월평균 수입이 낮습니다. 연령집단 간 임금격차는 줄고 있는데, 성별 간 임금격차는 줄지 않아 청소업 내부에서도 구조적 성별 불평등이 지속됨을 주목해야 합니다."

청소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규모는 2010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한국 표준직업분류의 소분류 150여 개 직업 집단에서 6번째로 큰 규모다. 하지만 정규직 대신 시간제 일자리가 증가하고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 최저임금 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 상승 등 열악한 고용 조건을 갖고 있다. 65살 이상 청소원 중 43%가 1인가구로 노인 빈곤 가구 증가 추세도 높다. 

연구책임자인 신희주 교수는 "6411 새벽 첫차를 타는 승객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여성 청소노동자들로 6411번 버스를 포함해 서울에서만 첫차 탑승객이 매일 최소 2만5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주로 구로구와 영등포구에서 거주하며 강남구와 서초구로 출근하며 평균 2시간 이상을 임금으로 책정되지 않는 출퇴근 시간에 쏟고 있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6411번 새벽 첫차를 타는 청소노동자들의 평균 오전 3시 20분에 일어나 1시간 후 출근 버스를 타고 5시 44분에 도착한다. 퇴근 후 집에 귀가하면 오후 3시 40분이다. 신 교수는 "노회찬 전 의원이 말했던 대로 이들은 대부분 9시 뉴스를 보기도 전에 잠드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유하라, 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 '6411' 버스의 첫 승객들은 누구일까, <레디앙>, 2020.11.10.).

신희주 교수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저희가 설문조사를 실시할 때 설문을 거부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신문, 방송 이런 데서 많이 나왔었다. 이런 거 하면 자꾸 하면 뭐 하냐? 소용없다. 뭐가 변하느냐?'

이런 말씀을 하실 때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지죠. 그래서 새벽의 고된 노동보다 그들한테는 변하지 않는 노동 현실이 더 어렵고 고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해봤습니다."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2020.8.5.).


"변하지 않는 노동 현실이 더 어렵고 고된 게 아닐까?"라고 신희주 교수가 대신 전하는 말에 이어,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를 꿈꾼 노회찬의 말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6411번 버스 '투명인간'과 노회찬. ⓒ 노회찬재단

 
"촛불 이후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지난 87년 이후 30년간 우리 사회는 정치적 민주주의는 진전됐지만, 경제민주화와 노동자들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소득의 격차는 더 커져 나가고 있습니다. GDP가 높아야 선진국이 아닙니다." 

"저에겐 꿈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선진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꿈입니다. 좋은 노동과 함께 하지 않는 복지는 다 가짜라고 봐도 됩니다. 노동이 존중될 때 선진복지국가는 그만큼 빨리 실현될 수 있습니다."


기록 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 다음 기사는 4월 23일(금) 게재 예정입니다('현대차 철탑 위 비정규직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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