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9월 17일 오후 그린 뉴딜 현장인 경남 창원시 두산중공업을 방문, 가스터빈 고온부품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9월 17일 오후 그린 뉴딜 현장인 경남 창원시 두산중공업을 방문, 가스터빈 고온부품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기후변화가 산업과 고용을 변화시키는 일이 이제 우리에게도 성큼 다가섰다.

최근의 두 장면을 보자. 지난 1월 20일, 울산의 현대자동차 1공장에서는 노동조합원들이 전기차인 아이오닉5 테스트 차량이 라인에 투입되는 것을 저지하고 나섰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생산하던 공장이 전기차를 생산하게 될 경우, 간단하게 배터리와 모터 구조만 있으면 되므로 파워트레인이라 불리는 엔진과 변속기 등 핵심 부품들이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절반 이상의 일감이 줄어들 수 있고, 전기차 부품마저 외주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노동자들은 이런 미래를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 자동차시장이 전기차 등 저탄소 차량 중심으로 바뀌고 주요 국가들이 2030년을 전후로 내연기관차의 등록과 생산을 중단할 방침을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저항만으로 맞서기 어렵다는 고민이 있다. 

또 하나는 지난해 9월 17일, 문 대통령이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두산중공업은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과 운영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기후변화 문제로 세계적으로 석탄화력발전이 퇴출 위기를 맞게 되니까 대형 발전소 설비 기술을 경쟁력으로 삼아온 두산중공업이 어려워진 것인데, 다른 한편 두산은 풍력터빈과 가스터빈, 배터리 저장장치에 대해서도 국내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재생가능에너지 시장이 성숙할 때까지 몇 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산중공업 노동조합은 정부가 취소한 신울진 3·4호기 핵발전소 사업이라도 재개해 숨통을 틔어달라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날 탈석탄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라는 기후활동가들과 신울진 핵발전소를 재개하라는 노동조합 모두가 대통령을 만나러 갔지만, 둘 다 만나지 못한 채 어색한 조우가 연출됐다. 

정부의 탈탄소 정책과 에너지전환 정책 모두 구체적인 내용과 수단이 미흡한 데다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대한 배려도 없다 보니 연출되는 광경들이다. 그러나 이런 장면은 기후위기가 격화될수록 더욱 잦아질 것이고, 대안과 전망을 갖추지 못하는 수세적인 저항은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사회적 갈등과 고통도 크게 만들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트럭운전사들이 주도한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지역경제 붕괴를 우려하며 석탄 산업의 유지를 원하는 독일의 탄광지대의 사례처럼 세계 여러 곳에서 겪고 있는 일이다. 미국 민주당이 발의한 '그린뉴딜' 결의안에 대해 AFL-CIO(미국 노동총연맹) 산하의 일부 산별 노조들이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서한을 보낸 일도 있다. 

다가올 숙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간단히 말해서 환경적으로 위해한 산업과 공장은 지속가능한 녹색 산업과 일자리로 바뀌어야 하며, 그 과정과 결과가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희생을 초래하지 않는 정의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다.

이 개념은 1980년대 미국 노동운동가 토니 마조치에서 비롯돼 점차 국제 노동운동의 정책으로 발전했고,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국제노총(ITUC)은 유엔 기후체제에 정의로운 전환을 공식 의제로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2015년에 '파리협정'의 전문에 몇 줄로 포함되는 성과를 거두었고,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과 성과를 평가하는 기후투명성 기구는 평가 항목 중 하나로 정의로운 전환을 포함하고 있다. 

이 기구의 2020년 보고서에서 한국의 정의로운 전환을 평가하는 부분은 이렇다.
 
전력 믹스에서 석탄 의존에서 벗어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석탄발전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기 위한 구체적인 국가적 약속, 틀 또는 정책 도구가 부재하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 추진과 관련해 진행된 논의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특히 에너지, 교통, 공공 부문 노동자를 대표하는 한국 노동조합은 석탄과 핵 에너지의 단계적 폐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촉구했지만, 동시에 정부에게 로드맵을 개발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은 건강하고 정의로운 탈석탄으로 대기질 개선,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더 많은 투자를 통한 일자리 기회 확대, 에너지 수입 의존도 감소 등 다양한 공익을 달성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한 마디로 한국 정부 정책에서 무엇이 빠져 있고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정부의 한국판 '그린뉴딜' 정책에는 '정의'나 '전환'이라 할 만한 뼈대와 디테일이 부족하며, '새로운' 사업이라 할 만한 것도 없어 보인다. 이는 정책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조만간 다가올 중요한 숙제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에 언급한 창원 두산중공업,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 같은 지역사회와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업종과 사이트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부가 내놓은 이렇다 할 구상이 없다.   
 
충남 당진 석탄 화력발전소(자료사진)
 충남 당진 석탄 화력발전소(자료사진)
ⓒ 환경운동연합

관련사진보기

   
탈석탄을 추진할 경우 가장 크고 넓은 영향을 받게 될 충남지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조기 폐쇄가 일어날 경우 현재 한국전력의 발전 자회사에 고용돼 있는 노동자보다 연료 공급과 회처리 작업을 하는 협력업체의 노동자들이 직접적인 고용 축소 영향을 받을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이 가스터빈 발전이나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으로 바뀔 경우 총 고용은 줄어들지 않더라도 충남 지역의 일자리는 줄어들 공산이 크다. 지자체의 세수와 지역경제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조사부터가 시급하며, 노동자들과 지역사회의 대표들과 머리를 맞대기 시작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다양한 수준과 범위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제안을 끌어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공장이나 발전소가 당장 6개월 뒤에 폐쇄돼야 한다면 대응이 쉽지 않겠지만, 5년이나 10년 앞을 예상하면서 여러 변수를 점검하고 지역과 부문의 자원을 동원한다면 기후위기도 완화하고 더 나은 일자리와 지역을 만들 수 있는 대안을 충분히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의로운 전환이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대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모양을 갖춰야 한다. 여기서 단지 정부의 의지 부족과 근시안만을 탓할 게 아니라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자신의 일로서, 그리고 보다 나은/다른 미래를 그리는 주체로서 나설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걸어가 보지 않은 길을 열어가는 일은 많은 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다.

다른 충남, 탈석탄 시대의 보다 좋은 충남을 위한 청사진을 위한 논의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현우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입니다.


태그:#탈석탄
댓글1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