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컷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프레디 머큐리와 파트너 짐 허튼이) 나중에 둘이 뜨겁게 키스하는 장면도 역시 가위질을 면치 못했다. 가장 심한 검열은 후반부에서 머큐리가 '난 자유롭게 살고 싶어(I Want To Break Free)'의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는 현장에 여자 옷을 입고 나타난 장면에서 자행됐다.

지금은 전설이 된 이 뮤직 비디오는 통째로 빠졌으며 이 비디오의 방영을 거절한 MTV측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장면이 바로 이어지고 있다.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는 가위질이다." (2019년 3월 <연합뉴스>, <'보헤미안 랩소디' 중국 개봉…동성애 장면 가위질 당해> 기사 중)


"자행됐다", "가위질이다"와 같은 표현이 꽤나 비판적인 논조를 반영하는 듯 보인다. 그 비판은 물론 중국 검열 당국을 향한 것이었다. 해당 기사에서 <연합뉴스>는 "CNN에 따르면 지난 22일 중국 영화팬들에게 선보인 '보헤미안 랩소디'는 남자들이 키스하는 것을 포함해 모두 6개 장면이 누락돼 있었다. 삭제된 분량은 2분 정도에 이른다"며 관련 장면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뿐만이 아니었다. YTN, SBS, 조선일보 등 주요 매체들이 이 중국발 뉴스를 다뤘다. 물론, 시대착오적인 검열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한 중국 당국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로 점철돼 있었다. 기사화하기 안성맞춤이게도, 중국 내에선 일부 평론가들을 중심으로 불매 운동이 일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들 매체가 이제 비슷한 제목의 기사를 쏟아낼 때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웬일인지 잠잠하다. 이것은 언론 매체의 '동업자 의식'의 발로인가, 국내 문제엔 그다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해서인가.

논란 자처한 SBS의 '검열'

"SBS를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영화를 지들 멋대로 편집할 수가 있지? 도대체 동성 간의 키스씬을 편집해서 뭘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보헤미안 랩소디는 콘서트 영상물이 아닌 프레디 머큐리 전기 영화잖아. 프레디 머큐리의 성지향성을 왜 지워? 게이라잖아. 게이는 키스하면 안 돼?" (@fr********)

어느 트위터 사용자가 물었다. 안 된다. SBS에선 게이가 키스해선 안 된다. 그렇다면 바로 '싹둑' 가위질을 못 면한다. 극장 개봉 시 '12세 관람가' 등급이었다고 해도 관계없다. 전국 994만 명이 이미 관람한 영화여도 아랑곳없다. 

SBS가 지난 13일 설 특선 영화로 방영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동성 간 키스 장면을 삭제해 논란이다. 앞서 중국이 삭제한 바로 그 장면 중 하나였다. 이런 논란을 예상 못했다면 여러모로 게으르거나 악의적이었거나 둘 중 하나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 하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개봉 당시 천만 돌파를 목전에 뒀을 만큼, '싱어롱 상영'을 필두로 가히 신드롬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이에 힘입어 TV 최초로 공개된 <보헤미안 랩소디>는 <백두산>, <반도>, <남산의 부장들> 등 지상파 및 종편과 케이블에서 방영된 2020년 최신 한국영화 흥행작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미 '흥행'이 보장된 만큼 동성 간 키스 장면을 '싹둑' 잘라냈을 때 수반될 논란을 SBS가 모를 리 없었을 거란 얘기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없다는 듯 SBS는 라미 말렉이 연기한 프레디 머큐리의 키스신 등을 삭제하거나 모자이크 처리하는 반인권적인 가위질을 자행했다. 이에 대해 SBS 관계자는 14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편집의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상파 방송국에서 저녁 시간대에 15세 이상 시청가로 방송하는 설 특선 영화라는 점을 진중하게 고려한 편집일 뿐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 지상파 채널에서 영화를 방영할 때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이나 흡연 장면을 임의로 편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헤미안 랩소디> 역시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연휴 기간·저녁 시간에 편성됐다는 점을 고려해 직접적인 스킨십 장면은 편집했다(...)." - (15일 <경향신문>, <SBS 설 특선 '보헤미안 랩소디', 동성 간 키스신 왜 삭제 됐을까?> 중에서)

그들만의 아이러니한 합작품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컷.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참으로 기묘한 동문서답이 아닐 수 없다. "설 명절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음악 영화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동성 간 키스 장면을 싹둑 자르는 것이 과연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가.

동성 간 키스 장면이 설 명절 TV 앞에 둘러앉은 가족들에게 어떤 심리적 위해를 가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해당 장면을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이나 "흡연 장면"과 비교한 것 역시 부적절하기 짝이 없다. 동성 간 키스는 삭제하고 모자이크 처리해야 할 '유해'한 행위인가.

굳이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영화 속의 아름다운 행위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장면을 방송사가 임의대로 '검열'한 것은 "음악영화"에 초점을 맞추거나 설 명절 가족이 함께 관람하는 행위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요약하자면, SBS의 이러한 가위질은 시청률은 얻고 싶고 혹시 모를 잡음은 피해가고픈 방송사가 자청한 검열이자 '게이'가 주인공인 완성도 높은 작품 전체에 대한 모독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가위질이 버젓이 자행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한국은 유독 '성'에 민감하다. 상영 영화의 등급을 심의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역시 각종 물리적‧신체적 폭력에 대한 표현은 관대하지만 성, 특히 여성의 노출이나 성행위 등엔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동성 간의 성은? 금기시돼 왔던 것이 당연하다. 최근 재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1997),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숏버스>(2009)도 개봉 당시 검열로부터, 사회적 편견과 싸우며 '표현의 자유'를 쟁취한 끝에 개봉할 수 있었다. 동선 간 성행위 장면의 삭제 여부 역시 논란의 대상이긴 마찬가지였다.

2018년 가위질 없이, 모자이크 없이 무사히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 수위가 키스신으로 한정돼 있어 다행인 경우였다고 할까. 지난 2015년 두 여고생의 키스와 포옹 장면을 방영한 JTBC <선암여고 탐정단>을 둘러싼 논란을 상기해 보시기를.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해당 장면을 두고 방송심의규정 제25조(윤리성) 1항과 제27조(품위유지) 5호, 제28조(건전성), 제35조(성표현) 1·2항, 제43조(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 1항 등의 위반여부를 심의했고, 그 결과 행정지도인 '의견제시'를 처분했다.

이러한 보수적 사회 분위기나 방송계의 눈치 보기가 여전한 상황에서 <보헤미안 랩소디>에 자행된 가위질은 어쩌면 예고된 참사였는지 모를 일이다. 방송사는 더 큰 논란이나 행정적 잡음을 피해가는 대신 작품을 훼손하는 손쉬운 길을 선택한 것이고.

이번 <보헤미안 랩소디> 논란은 그러한 사회 분위기에 방송사가 적극 응답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자기검열, 아니 실제 검열이 버젓이 자행되는 상황에서, 일종의 '퀴어 프렌들리'한 콘텐츠를 지상파나 케이블에서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날이 도래할 수 있을까. 

아울러 현재 바로 '그' 방송사는 폭력성과 자극적인 설정, 선정적인 장면이 난무하는 <펜트하우스>란 드라마를 통해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짭짤한 광고 수익은 두 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의 '선' 넘는 표현은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주며 장려하는 방송사가 '동성 간 키스'를 삭제하는 현실. 웃지 못할 아이러니이자 시대의 역행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 ⓒ SBS

보헤미안랩소디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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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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