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 tvN

 
신혜선의 연기력이 빛난 tvN 주말드라마 <철인왕후>(극본 박계옥-최아일, 연출 윤성식)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14일 방송한 마지막회(20부)에서는 김소용(신혜선)과 철종(김정현)이 반대파의 역모를 저지하고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결말을 담아냈다.

소용과 철종은 김좌근(김태우)이 보낸 자객에게 저격을 당하여 위기를 맞고, 쓰러진 소용의 육체에 깃들어있던 장봉환(최진혁)의 영혼은 다시 현대로 돌아와 식물인간에서 깨어난다. 장봉환은 역사책을 구하여 철종과 소용의 뒷이야기를 확인한다. 방탄복으로 목숨을 구한 두 사람은 정적들을 물리치고 왕권을 되찾는다. 봉환은 철종이 훗날의 역사에 '철조'라는 성군으로, 소용은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철인왕후'로서 기록된 사실을 확인하고 기뻐한다. 타임슬립 당시 음모에 빠져 위기에 놓여있던 봉환도 달라진 현실에서는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는 공익제보자가 되어 있었다.

한편 봉환의 영혼이 떠난 뒤에도 소용의 몸에 여전히 그의 습관이 남아 있어 봉환이 쓰던 육두문자를 자신도 모르게 날리고 스스로 놀라는 등 소용의 성격도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숱한 고비를 넘기고 성장한 소용은 봉환이 했던 것처럼 패기롭게 내명부를 휘어잡는 중전이 되었고, 철종과의 사랑도 지키며 해피엔딩을 맞았다.

<철인왕후>는 대한민국 대표 허세남이자 바람둥이였던 봉환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과거로 타임슬립하여 조선시대 왕후 김소용의 몸에 영혼이 깃들게 되며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코믹 판타지 대체역사물'이다.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웹드라마 <태자비승직기>(太子妃升职记, 2015)를 한국적인 설정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기도 하다.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의 한 장면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의 한 장면 ⓒ tvN

 
<철인왕후>는 색다른 소재와 유쾌한 전개를 앞세워 비슷힌 시기에 방영된 KBS <암행어사-조선비밀수사단>과 함께 2021년 초반 '퓨전 사극'의 인기 열풍을 견인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방영 초반부 <철인왕후>는 큰 고비를 맞이하기도 했다. 드라마의 원작인 <태자비승직기> 작가가 과거 극중 '한국인 비하 설정'으로 도마에 오른 사실이 밝혀지며 구설수에 휩싸였다. 가상의 대체역사를 다룬 퓨전 사극이라고 하지만 실존인물들의 이름과 시대 배경을 그대로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고증과 개연성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설정들은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제작진은 원작자를 둘러싼 논란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현대 남성의 영혼이 왕후 몸에 들어간다는 설정'을 제외하면 <태자비승직기>와는 이야기 전개나 방향이 전혀 다른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선왕조실록 지라시 비하'나, 실존 인물(신정왕후, 안동 김문) 왜곡 논란에서 대해서도 사과와 함께 캐릭터의 이름을 수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으로 비교적 빠르게 대응했다.

하지만 <철인왕후>를 살린 진짜 일등공신은 주연배우 신혜선의 연기력이었다. <철인왕후>는 제목에서부터 알수있듯이 타이틀 롤인 중전 김소용의 비중이 절대적인 작품이다. 청순가련한 비운의 왕후에서 걸쭉한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허세남의 캐릭터까지 한 몸에 두 개의 영혼을 표현해야 하는 1인2역 설정, 사극과 현대극의 다른 대사톤, 남성과 여성의 다른 '성별 체인지'를 수시로 넘나들어야 하는 감정표현은, 배우의 연기력이 조금만 부족해도 자칫 어색해 보이기 십상이다. 

신혜선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엄격한 규율과 시대의 모순 속을 살아가야했던 조선시대 중전, 그와는 정반대로 자유분방한 현대의 바람둥이 허세남을 오가는 소용의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소화해냈다. 몸은 여성이 되었지만 영혼은 아직 남성이다보니 철종과는 '로맨스와 브로맨스(?)'를 넘나드는 기묘한 케미, 조선시대의 궁중예법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소용의 자유분방한 '저세상 텐션', 현대적인 신조어와 K뷰티 등 다양한 패러디로 퓨전 사극의 묘미를 극대화한 설정들은 신혜선의 맛깔쓰러운 연기와 맞물려 황당한 설정과 부족한 개연성이라는 약점을 보완해줬다. 
 
 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 tvN

 
신혜선은 오직 연기 외길을 통하여 단역과 조연을 거쳐 차근차근 주연급 스타의 반열에까지 오른 '성장형 배우'의 모범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학교 2013>으로 데뷔한 이후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그녀는 예뻤다>, <아이가 다섯>, <고교처세왕>, <푸른 바다의 전설>, <비밀의 숲> 등에서 작은 배역부터 시작하여 점차 존재감을 키웠다.

신혜선은 2017년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주인공 서지안 역을 맡아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KBS 주말극은 예전부터 젊은 스타급 배우들의 거쳐가는 등용문으로 꼽혀왔지만, 특히 <황금빛 내인생>은 극과 극을 오가는 여주인공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신혜선의 연기 내공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며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남주인공 최도경(박시후)에게 "니가 뭔데 내 인생에 끼어들어"하고 사자후를 날릴 때의 독기서린 분노 연기, "근데 어떻게 신경 안 쓰냐고 이 그지 같은 자식아!"하고 원망을 가장한 고백연기 등은 지금도 시청자들에게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이후 신혜선은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단 하나의 사랑> <사의 찬미>, 영화<결백> 등을 통하여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평범함과 우아함이 교차하는 분위기, 귀에 쏙쏙 박히는 정확한 대사 전달력은 동시대의 젊은 여배우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신혜선만의 장점이기도 하다. 검사, 발레리나, 변호사, 평범한 회사원 각기 다른 배역과 장르를 넘나들며 연기했음에도 동일한 배우의 이미지가 겹쳐지지 않고 그 흔한 연기력 논란도 단 한 번 없었다.

<철인왕후>는 신혜선의 작품활동의 또다른 이정표가 될 수 있을 만한 작품이다.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활약해온 신혜선이지만 퓨전사극-정통 코믹 연기를 비롯하여 원톱 주연도 사실상 처음이었다. <철인왕후>는 설정상 주연배우의 연기력과 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는 작품이었고, 자칫 원맨쇼로 전락하기도 쉬운 이야기였다. 여기서 신혜선은 '현대 남성의 영혼이 깃든 조선시대 왕후'라는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캐릭터에 자연스러운 설득력을 불어넣었다. 극중 좌충우돌하는 소용의 걸쭉한 육두문자 구사나 악동같은 행보까지도 오버스럽기보다는 사랑스럽게 느껴졌는데, 그것은 온전히 극본의 힘이라기보다는 신혜선의 연기력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신혜선의 호연에 힘입어 <철인왕후>는 방송내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마지막 20회는 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 평균 18.6% 최고 20.5%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를 경신했다.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 동시간대 시청률 수위를 달성하며 완벽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철인왕후>의 극적 완성도만 놓고 봤을 때는 퓨전사극의 매력과 한계 또한 분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만, 특유의 '팔색조'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무서운 성장세를 증명한 신혜선에게 있어서는 그녀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만하다.
철인왕후 신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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