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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 PD 동생 이대로씨
 이재학 PD 동생 이대로씨
ⓒ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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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싫다. 그날의 형을 짓눌렀던 이 차가운 공기와 내리는 눈이 너무 싫다.

2020년 2월 4일 형이 억울하게 세상을 등지고, 많은 법률전문가 심지어 사측 간부까지 참여했던 CJB청주방송에 대한 전수조사가 2020년 3월부터 6월까지 무려 3개월간 진행됐다. 결국 가해자들과 사측의 책임을 밝혀냈다.

200페이지가 넘는 진상조사보고서는 형의 부당해고 사실과 소송 과정 중 어떤 위법 부당한 행태들이 있었는지, 또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상세히 보여주고 있었다.

진상조사보고서를 모두 읽고 나서 먹먹해진 가슴을 치며 한참을 혼자 숨어 울었다. 혼자 떠안고 참아왔을 형에 대한 미안함과 이 사태를 만든 그들에 대한 분노, 참혹한 현실에 대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진상규명이 끝나고 나서야 사측은 진상조사결과에 따른 잘못을 인정했고 법적 효력이 있는 각종 합의안까지 작성해서 2020년 7월 기자회견을 통해 그것을 공식화했다.

그런데 스스로 인정하고 날인했던 합의안을 이제는 인정하지 않고 뒤집겠다고 한다. 심지어 합의안에는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을 인정하고, 향후 대내외에 다른 내용의 입장표명이나 주장을 하지 않겠다고 명시가 돼 있음에도 이를 어긴 것이다. 

그렇게 CJB청주방송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변한 것이 없고 참혹하게 가라앉고 있다. 청주방송 대주주 이두영 이사회 의장과 이사회의 개입이 계속된 영향도 무시 못 할 테다. 또한 사측이 독립적인 언론사임에도 스스로 대주주의 지배구조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변하려고 시늉만 할 뿐, 그 속에 암덩어리는 그대로 두고 있었다.

형과 닮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우린 살면서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다 하진 못하지만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들은 모두 하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다. 근데 CJB청주방송은 달랐다. 방송국이 갖춰야 할 윤리, 공정마저 무너진 곳처럼 보였다. 어떻게 이런 곳이 방송국인지 놀라울 뿐이다.

자칭 방송, 언론인이라는 사람들이 14년을 함께한 동료가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는데도 정의와 진실을 말하는 남은 동료들을 외면하고 짓누르며, 그저 흠집 가리는 데에 급급했다. 어제 했던 합의와 말들을 오늘 번복한다. 

이것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혼자 싸워나갔을 형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분노와 슬픔, 절망과 회의감들이 가득했을 것이다.

형은 당연히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이길 것이라 했다. 있어서 안 되는 부당해고였고, 그것을 밝히고 빼앗긴 권리를 되찾는 건 너무나 상식적이었으니까. 사측마저 이재학 PD의 근로자성, 부당해고에 대한 소송이니 본인들이 패소할 거라 예상했을 정도였다. 정의는 살아 있고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측은 증거들을 은폐하고 지우기 시작했으며, 형의 동료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또 사측 증인으로 몇몇을 내세워 진실을 왜곡하기 시작했고 가해자들은 재판정에서 위증까지 했다. 말도 안 되는 억울함과 거짓들로 얼룩진 그 과정을 형은 1년 반 넘게 버텼다.

2020년 2월 4일 저녁,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와 통화 속 떨리는 아버지의 목소리.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챘고 펑펑 쏟아지는 눈을 뚫고 미친 듯 운전해서 청주로 갔다. 응급실로 뛰어 들어간 나를 보고 병원 직원은 여기가 아닌 장례식장 쪽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몇 번을 다시 물었다. 뭔가 착오가 있고 형은 아직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쥔 채 가르쳐 준 그곳으로 뛰어갔다. 넋을 내려놓고 주저앉은 가족들을 마주했다. 가슴이 찢어지고 세상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절대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여서도 안 되는 현실이었다.
 
2020년 5월 13일 오후 충북 청주시 CJB청주방송 앞에서 열린 고 이재학 PD 100일 추모문화제에서 고인의 누나 이슬기씨와 동생 이대로씨가 추모의 글을 낭독하고 있다.
 2020년 5월 13일 오후 충북 청주시 CJB청주방송 앞에서 열린 고 이재학 PD 100일 추모문화제에서 고인의 누나 이슬기씨와 동생 이대로씨가 추모의 글을 낭독하고 있다.
ⓒ 박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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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에게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는 큰 위로가 되어주었고 올바른 길로 안내해주고 함께 걸어가자고 손까지 잡아주었다. 그들은 일면식도 없던 형과 우리 가족에게 기꺼이 동료가 되어줬고 나의 또 다른 형이 되어주었다.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깊은 괴로움에 빠진 가족을 부축해주고 마음을 나눠줬고 또 버팀목이 되어 줬다. 그리고 이렇게 함께 투쟁해주고 있다.

이 싸움에 큰 목표가 생겼다. 형과 닮아질 수 있을 것 같은 목표가 생긴 것 같다. 이제는 흔들리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타협하면 청주방송 대주주 이두영 이사회 회장, 이사회를 포함한 CJB청주방송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또 다른 피해자, 또 다른 이재학 PD가 생길 것이다. 이미 이 순간에도 많이 생기고 있으니 늦기 전에 바뀌어야 한다.

언론개혁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CJB청주방송부터 그 시작이 되어야 한다. 국민을 대신해 사회의 부조리들을 비판하고 목소리 내야 하는 방송, 언론사가 오히려 부조리와 비윤리, 불법들이 가득한 곳이라는 것을 이제라도 세상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국회 상임위, 정치인들과 관계 부처들은 대체 언제까지 의무를 저버리고 말만 하고 있을 것인지도 궁금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그날이 왔다. 형이 혼자 감당해왔을 그 시간과 무게에 비하면 내가 겪고 있는 이 과정들과 앞으로 겪어야 할 과정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형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형의 의지대로 모든 프리랜서, 비정규직들을 위해서 해야 한다.

가끔 이겨낼 수 없을 정도의 분노와 슬픔이 차오르면 형에게 말하곤 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힘을 빌려주고 돌봐주고 지켜봐 줘.' 언젠가 형을 다시 만날 때 고맙다는 말도 듣고 싶고 그렇게 자랑스러운 동생이 되고 싶다. 

하루에 수백 번씩 형을 떠올리고 추억하면서 되뇐다. 미안하고 보고 싶다는 그 말들만 가득하다. 형, 우리 빨리 다시 만나서 형이 해주는 요리에 술도 같이 한잔하자. 미안하고 많이 보고 싶다.

태그:#이재학, #유가족,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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