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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업계가 내달 설 연휴를 앞두고 택배 물량에 대응하기 위한 인력을 추가 투입하기로 한 가운데 26일 오전 서울의 한 택배물류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물품을 옮기고 있다.
 택배업계가 내달 설 연휴를 앞두고 택배 물량에 대응하기 위한 인력을 추가 투입하기로 한 가운데 26일 오전 서울의 한 택배물류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물품을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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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택배량이 늘어나면서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2020년 한해 16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했는데 그중 6명이 추석을 앞두고 택배량이 늘어나는 10월에 돌아가셨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과로사 대책위)에는 추석이 끝나고 거짓말처럼 두어 달 동안 사고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12월, 연말 택배량이 다시 늘어서일까? 12월 22일 한진택배 노동자가 흑석동 재래시장에서 택배를 배송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사고 소식이 들렸다. 가족들은 아직도 병원에서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23일에는 롯데택배의 한 노동자가 출근하지 않아 동료가 집으로 찾아갔더니 숨진 채 쓰러져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과로사 발생이 택배 물량과 연동되어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끼는 과정이었다.

사실 코로나 이후 택배 산업에 최고의 성수기를 누리고 있다. 쏟아지는 택배는 이미 업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30% 이상 늘어나 있는 택배량에 명절 특수기까지 겹치면 택배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살인적인 노동에 직면한다. 지 2020년 9월 과로사 대책위가 택배 노동자 7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80.4%가 과로사에 대해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이므로 두렵다"고 답했다.

설을 앞둔 택배 노동자들은 '나도 쓰러질까?' 두렵다. 설을 앞두고 택배 노동자들이 또다시 파업을 선언한 이유다.

며칠 만에 물거품 된 합의문

다행히도 '택배 노동자 과로사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가 꾸려졌고, 합의문까지 도출되었다. '공짜노동'으로 지적된 분류작업은 이제 택배 노동자들의 몫이 아님을 확인했다. 합의문이 당장 실행된다고 해도 택배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지 확신하긴 힘들었다. 그래도 당장 분류작업에서 해방된다는 희망에 택배 노동자들은 감사했다.

하지만, 합의는 며칠 만에 물거품이 되었다. 택배사들이 약속한 분류인력 투입 외에 택배비가 오르기 전까지 분류작업 비용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또 한 번 택배사의 말장난에 속은 셈이 되었다. 지난해 추석 때도 그랬다. 국민적 여론에 밀린 택배사들이 추석 전 분류작업 인력을 대거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생색내기식으로 인력을 투입해 현장 노동자들의 원성을 샀다.

두 번째 기만에 노동자들은 '이제 사회적 합의도 못 믿겠으니 노동조합이 단체협상을 체결하자'며 파업을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노동조합의 합법적 권한인 쟁의를 통해 분류작업 인력투입도, 현장의 부조리함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29일을 파업개시일로 잡았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실제 파업에 돌입할 기미를 보이자, 택배 노동자의 고통을 이해한다며 과로사를 해결하자던 정치권과 언론이 갑자기 '중립'을 자처하고 나섰다. 택배사가 약속을 지켜야 하지만 노동자들의 '과도한 주장'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쪽이 한발씩 물러나라며 기자회견을 연다.

생각해 본다. 하루 12시간의 장시간 노동으로 바로 옆 동료가 쓰러지는데, 새벽 일찍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그래서 과로사가 언젠가 나에게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는 택배 노동자에게, 이들이 말하는 '과도함'이란 어떤 의미일까? 살겠다는 요구에 과도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짧은 인생의 경험으로 중립이란 결국 기득권 편이었다. '늦어도 괜찮아'라는 응원은 택배 노동자에게 용기를 주지만, 장시간 노동을 해결할 수는 없다. 참고 견디라는 말도 하루 이틀이다. 지금 택배 노동자들의 권리선언에 응원만 허락될 뿐, 그들의 선택을 '과도하다' 탓해서는 안 된다. 탓한다면, 16명이 죽을 때까지 지켜만 본 우리 사회를 탓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으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택배, #과로사, #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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