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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과 우려를 뒤로하고 '조 바이든' 내정자가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취임식날 소요는 일어나지 않았고 의외로 조용하게 치러졌다. 곧이어 미국은 물론 세계가 그의 펜 끝을 예의 주시하며 바라 보고 있다. 취임 직후부터 대통령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각종 행정명령에 서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새로운 코로나19 대응 지침 발표를 중계하는 CNN 갈무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새로운 코로나19 대응 지침 발표를 중계하는 CNN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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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취임 후 100일간의 행적으로 그 정권의 성격과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이 시기에 새 정부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정치, 경제, 외교, 안보의 청사진을 완성시키고, 정권을 안정시키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지지율을 끌어올린다. 국정지지율 조사에서 55%를 넘어서면 안정권에 들어선 것으로 간주한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시기라  완급을 조절하며 빠르지도 더디지도 않게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바이든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갈 길이 바쁘다. 두 가지 항목의 일감부터 먼저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의 과제

두 가지 항목의 일감이란, 트럼프 정부의 잔재를 청산하는 일과 오바마 정부의 유산을 계승하기 위한 정지작업이다. 현재 트럼프 정부에서 배출한 쓰레기(?) 중에서 버릴 것과 남길 것 그리고 재활용할 것 등등을 분류하는 작업이 한창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간간히 언론을 통해 그 내용이 공개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에서 눈에 띄게 드러났던 실정을 바로잡는 것이야 쉬운 일이겠지만 버리기에는 아깝고 지속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계륵'같은 성질의 정책들은 어떻게든 재활용하려는 수순을 밟을 텐데 겉모양을 바꾼다 하더라도 여론의 반응에 따라 내용을 조절해야 하는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될 것이다.  
 
갤럽의 최근(1월 19일) 조사에서는 바이든 정부의 정권인수 작업에 68%의 높은 지지율을 보여줬다. 선호도 조사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57%, 해리스 부통령은 53% 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무난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출처 Gallop Web Site)
▲ 갤럽조사 2021-1-19 갤럽의 최근(1월 19일) 조사에서는 바이든 정부의 정권인수 작업에 68%의 높은 지지율을 보여줬다. 선호도 조사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57%, 해리스 부통령은 53% 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무난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출처 Gallop Web Site)
ⓒ 갤럽사이트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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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 들수 있는 것이 중국을 적대시하는 정책이다. 중국과의 무역분쟁 수위를 낮추지 않겠다고 언질을 줌으로써 트럼프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쳤다. 상당한 수준으로 문턱을 높여놨던 이민정책 역시 대표적인 사안이다. 민주당이라고 해서 불법체류자에게 관대한 것도 아니어서 트럼프의 강성 이민정책에 거부감은 없을 테지만, 히스패닉계 의원들과 히스패닉계 지지층이 이해할 만한 수준의 이민정책으로 수정, 보완하여 가닥을 잡아나갈 것으로 보인다. 

유럽, 태평양-아시아의 동맹국과 주변국을 상대하던 군사 및 외교 정책 역시 미국우선주의 노선과 괘를 같이하는 정책으로 계승될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동북아시아 정세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반도 관련 정책 또한 당면하여 커다란 변화를 맞이 할 것같지도 않다. 트럼프 정부에서 'America First' 로 이름 붙여 노골적으로 실리를 추구하던 정책들이 동맹국과의 관계를 어긋나게 했다고 비판받았지만 실제로 관계가 틀어질 정도 외교와 군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경우는 없었다. 즉 강성 정책의 실효성이 입증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과연 바이든 정부에서 트럼프 정부에서 일관되게 주장했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파기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동맹국이나 적대국의 입장에서는 순화되거나 우선주의 정책들이 파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겠지만 무늬만 다른 민주당에서 자국 이익에 도움되는 정책을 무작정 파기한다는 것은 그저 억측과 상상만으로 그려지는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월 25일 'Buy American' 라 이름 붙여진 정책에 서명하는 행정명령을 발동시켰다. 그 내용이란 정부에 조달되는 물품을 가급적 자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으로 구매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였다.  유럽은 즉각 반응했다. '바이 아메리카'는 보호무역주의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반응이었다.

이처럼, 바이든 정부에서도 미국 우선주의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의 백악관 반응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영국은 바이든 정부에게 유럽연합에서 탈퇴하였으니 새로운 내용을 가진 무역협정을 맺을 것을 요구했으나 백악관은 한 마디로 단호하게 거절했다. 현 상황에서는 그 어떤 형태의 무역협정도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표면적 이유는 코로나로 초래한 자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것이다. 영국을 비롯하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전통적인 유럽 우방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를 마치고 연설하고 있다.(워싱턴 AFP/Getty=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를 마치고 연설하고 있다.(워싱턴 AFP/Getty=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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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기 어려운 난제는 오바마의 정책을 계승하는 일이다. 부통령으로서 8년을 함께 했던것 만큼 오마바 정부에서 미처 끝내지 못한 미완의 정책을 계승하여 마무리 짓는 것은 바이든 개인을 위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일종의 책임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것은, 오바마 정권에서 미완성으로 남겨진 숙제를 정권 전반기에 처리하기에는 적합한 환경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연방 상원과 하원에서 차지한 다수당의 지위를 십 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고, 정권 초반기에 이변이 없는 한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한다는 것도 긍정적인 요소다. 

다만 몇 가지 변수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첫 번째 변수는 바이든 정권의 개혁 의지다.  존재 여부는 아직까지 미지수로 남아있다. 모두의 바람대로 개혁을 단행하고 한 발작이라도 진보적 방향으로 움직이겠는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또 다른 변수는 다름 아닌 팬더믹 상황이다. 취임 초기부터 백신의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안감힘쓰는 터라 여름 이전에 팬더믹으로 초래된 위기상황이 진정국면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나 예기치 못한 결과로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지 않을 경우 바이든 정권 역시 실정을 거듭할 수도 있다. 

바이든이 완수해야 할 오바마 정부의 미완 정책들

오바마 정부에서 결실을 보지 못했거나 추진하다 유명무실해진 정책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국가재정의 안정화(Fiscal Stimulus Package)
- 전 국민의료보험(Obamacare Health Reform)
- 금융산업 규제정책(Dodd-Frank Financial Reform)
- 군축회담(New START Arms Control Treaty)
- 담배 판매 규제 법안
- 군부대 동성애 허용 


실패했거나 미완성 상태로 남겨진 것에는 반드시 이유와 원인이 있다. 위의 정책을 세세히 살펴보면 무리한 정책이거나, 의지가 아예 없었거나, 현실성이 부족하고 여건이 성숙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비판가들의 엄중한 잣대로 재어보면 오바마 정권의 개혁 의지는 의외로 턱없이 부족했던 것으로 판명된다. 특히 외교와 군사 정책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거나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한 지루한 현상이 8년간 지속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자신을 외교가로 규정할 만큼 외교 정책에 공들일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러시아와의 군축 회담을 확대하고,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저지하기 위해 동맹국과 러시아, 중국이 참여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을 재가동시키기 위해 매진할 공산이 크다.  때마침 1월 21에 러시아에 START를 5년간 더 연장할 것을 제안하는 대통령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그 첫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며칠 후 1월 26일에는 군대 내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금지했던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폐기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트럼프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워밍업까지 마쳤다. 

바이든 정부의 성격을 가늠할 정책들

바이든 정권의 성격이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 확인할 방법은 다음의 두 가지 정책을 통해서 확인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는 '더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 법안 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으로 명명된 금융산업 규제 정책과, 또 한 가지는 '오바마케어 Obamacare Health Reform'로 널리 알려진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다. 이 중에서도 2018년 5월에 트럼프 정부에서 끝내 사문화시켜버린 '더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 법안'을 임기 내에 부활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세간에서는 이미 잊힌 법안이지만 2009~2010년 입법안이 이슈화될 당시에는 오바마 정부의 최대 업적이 될 것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그야말로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한편 법안의 원래 명칭은 하나의 긴 문장으로 되어있다. 워낙 길다 보니 언론에서조차 편의상 '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 또는 'Dodd-Frank Act'라는 별칭을 사용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법안을 고안해낸 두 사람의 이름이다. 연방 상원의원 '크리스 더드 Chris Dodd' 와 연방 하원의원 '바니 프랭크 Barney Frank', 이 두 사람이 공동 발의하여 만들어진 법안이라 그렇게 부르겠지만, 국가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몰고 간 월스트리트를 관리, 감독하는 것은 하원과 상원의 일치된 관심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두 사람의 이름을 일부러 부각한 것으로 여겨진다. 

애초 법안의 취지와 목적은 고삐 풀린 황소처럼 날뛰어 다니는 거대 은행을 통제하고 길들임으로써 피해자이자 소비자인 국민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이 법안은 입법 과정에서부터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고, 입법 이후에도 그 실효성에 지속적으로 의문이 제기되었다. 법안은 열여섯 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었고 240여 개의 세부규칙과  67개 연구 자료가 첨부된 방대한 작업이었지만 애초부터 거대 은행을 관리 감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법안의 주안점은 은행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은행의 대출 업무를 행정적으로 관리하고 감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 결과 복수의 관리 및 감독 기관을 신설하여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것으로 법안은 일단 윤곽이 갖춰지고 실행되었다. 물론 이 법안이 발효됨으로써 2008년 이전과 같은 무분별한 대출 행위은 원천적으로 가로막혔고 불량 채권이 발생할 여지가 사라졌다.  

의회와 정부에서는 '금융위기'가 재발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자평하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거대 은행은 살아남았지만, 오히려 중소 은행(대부분 토착 자본)이 폭삭 망하는 사태로 이어졌고 그로 인한 금융산업에서 대규모로 실업자가 발생했다. 입법 당시부터 줄곧 반대해 왔던 공화당으로서는 실효성도 미비하고 연방 차원의 규제만 양산해낸 것을 못마땅해하던 차에, 이 법안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트럼프의 당선으로 사문화시키는 절차를 하나씩 밟아 나갔던 것이다.  

이제 달라진 환경에서 이 법안의 실존 여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바이든 자신이 직접 참여한 법안이고, 선거기간 동안 참모진에게서 은행과 금융산업을 조절 통제하는 '이 법안' 의 부활시키는 것이 바이든 정권의 핵심 사안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던 만큼 임기 내에 반드시 구체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혹자는 임기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이 사안이 본격적으로 거론될 것으로 기대한다.  

때마침 재무부 장관으로 전직 FRB 의장이었던 '자넷 엘렌 Janet Yellen'이 결정되었다. 엘렌은 더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 법안의 내용이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었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규제와 연방정부의 간섭으로 금융산업과 경제 전반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 그녀의 소신이었다. 그녀의 관점은 금융기관 자체의 정화기능을 신뢰해야 하며 그것이 시장의 순리라는 것이다. 엘렌 재무부 장관에 주도하에 은행 자체의 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개정안이 마련되지 않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 유권자의 열망 반영할 수 있을까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은 이 법안에 담겨있는 기본적 가치, 즉 초심을 되살리려는 의지가 과연 바이든 정부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결국 직접적인 피해를 본 것은 소비자였고 그중에서도 중산층의 피해가 가장 컸다. 누구는 실업자 대열에 합류했고 누구는 은퇴 연금이 절반으로 토막 나는 현실을 목도했다. 젊은 층이 취업난을 겪었던 것은 덤으로 주어지는 고통이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탐욕스러운 월스트리트의 이윤 창출 방식이 온 세상에 까밝혀지고 그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고통받는 선량한 시민들이 더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제도적 방식으로 근절시키는 것이었다.

오바마 정권의 탄생이 이러한 염원의 반영이었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 오바마 정부에서 서둘러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관점의 차이였다. '더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 법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소비자 보호'에 치중한다. 역으로 해석하자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각종 규제 장치를 통해 제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즉 문제가 되었던 파생상품의 출현이라든가, 서브프라임(sub-prime mortgage loan) 사태가 소비자의 과도한 욕심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금융시장의 붕괴를 예견하면서도 방임했던 공화당이 적반하장격으로 비판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지나친 규제로 금융 시장의 순기능을 억제한다는 시장의 반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갑게 식어버린 금융시장 덕분에 오히려 불량 채권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았던 거대 은행은 오히려 되살아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고, 반면에 다수의 소비자와 지방의 소자본 은행과 금융업체가 제물로 희생되었다.

바이든 정부에서 다시 되살려야 할 '더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 법안'의 개혁 대상이 이번만큼은 거대 은행이 되어야 한다.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제한하는 장치는 충분하게 마련되었으니,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직접적인 원인이자 소비자를 볼모로 잡고 무한대의 이윤을 창출하려는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제도적으로 규제하는 법안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이것이 바이든 정권을 탄생시킨 유권자의 열망이자, 정권 스스로 도덕성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태그:#바이든 대통령, #월스트릿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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