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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2020. 5.28
 시진핑 중국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2020. 5.28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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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20일 가정교육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가장을 처벌할 수 있는 가정교육법 초안의 심의를 입법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제청했다. 지난 2008년 가정교육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래 13년 만에 첫 단추를 끼운 것이다.

전인대 상무위원회 법제공작위원회 짱톄웨이(臧鐵偉) 대변인은 가정교육법이 "미성년자의 부모 혹은 기타 후견인이 가정교육을 실시하는 데 있어서 법이 규정한 책임을 명확하게 했다"라고 지난 1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

짱톄웨이 대변인은 또 "미성년자의 부모 혹은 기타 후견인이 본법이 규정한 법률적 책임을 위반했을 경우 져야 할 책임도 규정했다"라고 강조했다. 법이 규정한 책임에는 가정교육 중 폭언 또는 폭행을 금지하는 것과 올바른 교육이념을 갖추는 것, 끊임없이 가정교육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 등이 있다.

중국 정부가 가정교육법을 제정하게 된 배경은 14~18세 미성년자의 범죄 건수가 감소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 이유를 가장이 자녀교육을 소홀히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은 부모 혹은 기타 후견인을 말한다. 또 자녀교육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가장이 자녀를 방치하거나 교육을 하더라도 성별이나 신체적 조건 등에 따라 차별 대우를 하거나 자녀를 이용하여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을 하는 것 등을 말한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0~2018년 기준 18~25세 성년의 범죄 건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한 반면, 미성년자 범죄 건수는 그렇지 못했다. 미성년자 범죄 유형은 절도죄가 가장 많았고 고의적 상해죄와 강도죄가 그 뒤를 이었다.

중국의 가장은 왜 자녀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유가사상에 있다.

관계 속의 개인

유가사상에서 개인은 단순히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모여서 가정이 되고 나아가 사회가 된다.

삶과 관련된 예(禮)에는 대표적으로 부자와 군신, 부부, 형제, 붕우라는 다섯 종류의 관계 즉, 오륜(五倫)이 있다. 여기서 군신은 정치적 관계에 속하고 붕우는 사회적 관계에 속한다. 부자와 부부, 형제는 정치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의 기초가 되는 가정적 관계에 속한다.

그렇다면 부자와 부부, 형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가? 유가사상은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고 아내는 남편보다 아래에 처하고 동생은 형보다 뒤에 처하라고 한다. 이렇게 해야만 윤리의식이 생기고 가정적 나아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듯 개인이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면 가정이라고 하는 전체의 권리가 개인이라고 하는 개체의 권리를 압도하게 된다. 따라서 개인이 가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앞서 보았듯이 유가사상의 가정적 관계는 수직·종속적이기에 가장은 가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권리만 누리고 관계적으로 아래에 처한 구성원은 의무만 지게 된다. 이 때문에 가장이 자녀를 방임하거나 제멋대로 교육을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법적인 의무

그렇다면 이 문제를 유가사상 내부에서 해결할 수는 없을까? 안타깝게도 비관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장에게 강제적으로 의무를 지워 가정 내 약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케 하는 법이 필요한데 유가사상은 법보다는 예를 통해서 가정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유가사상가 중 예뿐만 아니라 법도 중시하는 순자의 사상을 한 번 알아보자. 순자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예로써 교화를 하고 법으로써 다스려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순자에게 있어서 예와 법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순자는 예란 '법률의 대분(大分)이고 규칙의 개요'라고 말한다. 여기서 '대분'은 큰 나눔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앞서 말한 수직·종속적인 관계를 가리킨다.

이렇듯 순자에게 있어서 법률과 법률을 참고해 만든 규칙은 어디까지나 예를 보조하는 것으로 그 내용은 예의 정신을 따른다. 따라서 유가사상으로는 강제성이 없는 예로 교화를 하든 강제성이 있는 법으로 다스리든 가정적 관계는 수직·종속적이 되고 가장만 권리를 누리게 되기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예가 법제화되어 예에 강제성까지 더해지면 문제는 오히려 커진다.

이와 반대로 중국 정부는 가정교육법을 제정함으로써 가정적 관계를 수평적으로 하고 가장에게 강제적으로 의무를 지워 자녀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 정부가 국가의 사상을 가정에 주입하기 위해서 가정교육법을 제정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단순히 자녀교육을 바로잡기 위해서 가정교육법을 제정하는 것이라면 가정에 유가사상이 만연한 우리나라도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이다.

태그:#중국, #정민욱, #사회, #중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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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매 영자지 코리아타임스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베이징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구활동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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