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6 07:51최종 업데이트 21.01.26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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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형으로 화제를 모은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KBS2 공연 포스터 ⓒ KBS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나훈아의 노래 가사가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세상살이가 왜 힘들까? 세상이 돌아가는 시스템이 문제일까. 아니면 사람의 본성 때문일까. 아니면 둘 다의 문제일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사람 자신을 깊이 이해하는 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제기됐고 이에 대한 답은 인문학, 사회학, 신학의 관점에서 수없이 논의되어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만족할 답을 얻었을까?

오늘날의 세상은 예전 사람들이 생각한 세상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불과 2~3백 년 전까지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는 세계를 두루 볼 수 있으며 자기들이 본 현상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런 사고의 세계가 계속될 수는 없었다. 자연 현상에 대해 묻기 시작했으며 특히 지구에서 가장 복잡한 존재인 사람 자신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간 사람에 관한 학문은 많았지만 대부분 인문학이나 신학의 관점에서 논의해 왔다. 이제는 사람을 생물학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도 사람을 이해하는 한 방편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답을 얻는다기보다 사람을 또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학의 탄생

인류가 발전시킨 학문이 대부분 사람과 관련이 있지만 사람에 관한 답의 실마리는 인류학(anthropology)이란 학문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인류학이란 용어는 고대 희랍어인 anthropus(man)와 logia(study of)라는 두 개의 단위로 이루어졌다. 16세기 전후 유럽 이외의 세계를 여행한 유럽인들은 그 지역에서 본 사람들의 외모라든지, 그들의 행위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기술이 자신들과 다름을 알게 됐다. 이를 서술하면서 인류학이란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인류학을 단순히 전통적인 정의에 따라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정의로서는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대다수 학문이 사람을 연구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이들을 인류학의 한 분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류학이란 사람의 문화적[문화인류학(cultural anthropology), 고고학(archaeology)], 생물학적 변화와 진화에 관한 학문[생물인류학(biological anthropology)]으로 정의되며 생물인류학자는 사람의 문화적인 면보다는 생물학적 면에 관심을 둔다. 인류학의 한 분야인 생물인류학은 진화를 바탕으로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의 특징을 연구한다. 특히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생물학적 진화와 변이를 분자 단계에서 종의 단계까지 연구하는 학문으로 독자적인 종합적인 연구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초반에 생물인류학은 체질인류학(physical anthropology)로 불렸다. 체질인류학은 과거와 현재 사람들의 체질적인 변이를 연구 대상으로 하였으며 이론적인 기반이 비교적 약했다. 1950년대에 체질인류학자들은 급속히 연구가 진행된 유전학과 진화 과학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따라서 20세기 말에 사람에 대한 생물학적 과정에 초점을 둔 생물인류학이란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생물인류학에 관한 자료와 연구업적은 이미 16세기의 해부학자였던 에드워드 타이슨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는 당시에 사람의 몸과 유인원의 몸을 해부하여 직접 비교함으로써 이 분야의 선구자가 되었다.
 

인간의 진화 ⓒ pixabay

 
그러나 현대 생물인류학의 직접적인 출발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1859)부터 시작된다. 진화에 관한 다윈의 업적은 그동안 강조되었던 여러 원리와 견해들을 괄목할 만하게 바꿨다.

다윈 이전이나 이후에도 생물인류학자들은 사람(인류)을 '인종적 특징'에 따라 분류해 연구했다. 과거 사람에 대한 체질 연구는 철저히 유럽 우월주의에서 진행되었으며, 이에 편승하여 유럽의 식민주의는 인종에 따른 편견을 부추기며 해외 침략으로 나아갔다. 유럽인들은 다른 종족을 연구할 때 '과학'이란 말로 치장하였으며, 이들을 자신들보다 열등하다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유전학의 발달과 사회 가치의 변화에 힘입어 생물인류학의 연구도 바뀌었다. 이제 생물인류학자들은 인종 간 우열이 아닌 사람의 다양성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생명과학 모르면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오늘날에는 생물인류학의 기반인 생명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했다. 그러나 생명과학의 발달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 기존의 도덕관이나 윤리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가치가 요구되는 결과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은 생명과학의 연구 성과를 보며 사람이 과학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데만 관심을 보인다. 생물인류학은 이런 오만함에서 비롯한 종교·도덕·윤리적 문제(예: 인류의 기원 문제, 인간 복제, 낙태, 정신박약아와 장애인, 대리모, 유전적 질병 소유자의 사회 수용, 사람의 이기심과 공격성, 다양한 성의 문제 등등) 등을 깊이 생각함으로써 사람의 존엄성을 되돌아볼 수 있게 도와준다.

오늘날 생물인류학은 옛사람들의 화석 연구를 통해 생물학적 특징과 행위의 관계를 밝히고, 사람과 가까운 영장류의 진화와 행위가 사람의 행위와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규명한다. 또 사람의 다양성도 연구한다. 인류유전학과 인구학, 체질적인 성장과 발달, 사람의 행위와 질병, 건강 등등이 주요한 연구대상이다.

사람을 다룰 때 그 대상이 생물학적 특성이든, 사회적인 문제든 간에 무엇보다도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사람이란 존재가 생물학적 특성을 배제한 문화의 산물이라거나, 문화적 능력을 간과한 채 동물적 특성만을 지닌 존재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생물학적 특성과 문화적 특성을 함께 지닌 복합된 존재라는 점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오늘날 유전학 등의 생명 과학의 발달은 더 이상 이 분야에 대한 이해 없이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반면 생명 과학의 연구 성과에 따라 파생되는, 우리 사회가 경험하지 못한 문제에 대한 사회의 가치 기준도 세워야 한다.

생물인류학은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있으나 사람을 다룬다는 점에서 인문과학의 영역으로 분류된다. 테스 형이 이 학문을 익혔다면 노래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필자 소개
생물인류학 분야를 공부하고 대학에서 고인류학과 동물고고학 등을 30여 년간 가르쳤다.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을 비롯해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태평양 전쟁 희생자 유해 발굴 등을 담당했다. 퇴임 후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을 자원봉사자들과 같이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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