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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라면 누구나 법안과 의견을 제안할 수 있도록 2020년 1월 도입된 국회 국민동의청원. 실제로 해보니 문턱은 높았습니다. 국민동의청원이 그 이름값을 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들이 제도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합니다. [편집자말]
여의도 국회의사당.
 여의도 국회의사당.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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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2017년 8월 시작됐다. 헌법에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청원권이 명시되어 있으며 청원법 등 법적 제도도 구비돼 있었지만, 국민들이 본격적으로 청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국민청원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온라인을 활용하며 청원의 문턱이 대폭 낮춰졌다는 점이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오프라인 청원제도는 정부의 반응을 거의 알 수 없는 단방향 청원이었지만, 전자청원에서는 직접 글을 올리거나 SNS 등을 통해 퍼트리는 등 온라인 행동으로 실질적으로 정책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게 되었다.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은 하나의 공론장으로 기능하며 의제 형성에 있어 중요한 축이 됐다.

이에 국회에 입법을 청원하는 국회청원 역시 지난해부터 '국민동의청원제도'로서 전자시스템을 도입한 바 있다. 국회청원은 그간 국회법에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 문서로 작성한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어 제도의 문턱이 높고 또 권한도 필요했다. 이를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지난해 4월 국회가 조항을 신설하며 기존의 국회의원 소개 청원제도는 그대로 유지하되 전자청원이라는 새 도구가 생겨난 것이다. 

정보접근권,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

국민청원은 20만 명 이상이 동의해 청원이 성립되면 정부 관계자가 답변하는 것으로 처리가 완료되지만, 국민동의청원은 10만 명 이상이 동의해 청원이 성립되면 국회가 이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해 심사할 의무가 발생한다. 이후 본회의에 상정된다면 입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로 법적 근거 없이 행정부가 주축이 돼 운영하는 국민청원보다 법적 근거를 두고 입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민동의청원이 효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이 의제 형성의 한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때문에 국민동의청원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정보인권의 한 갈래인 '정보접근권'의 보장이 전제돼야 한다. 이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기도 하다. 정보접근권이란 누구든지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미디어 등으로 제공되는 정보에 접근해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며, 국민이 민주적 결정 과정의 한 축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국민동의청원에 참여해 입법을 위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어떠한 차별이나 어려움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가 돼야

앞서 말했듯이 입법을 위해 국회에 할 수 있는 청원은 국회의원 소개 청원 및 국민동의청원 두 가지뿐이다. 하지만 국민동의청원은 오직 국회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접수가 가능하다. 만일 여러 사정으로 홈페이지를 이용하지 못해 문서로만 청원할 수 있다면, 다시 국회의원의 소개를 거쳐 오프라인 청원 접수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청원 접수뿐 아니라 청원이 성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동의' 역시도 오직 온라인으로만 가능하다. 청원에 동의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서는 국회 홈페이지에 회원가입해 로그인하거나 휴대전화 또는 아이핀(I-PIN)을 이용한 본인인증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국회 홈페이지에 가입하려면 또다시 휴대전화 또는 아이핀을 이용한 본인인증을 거쳐야 하고, 아이핀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휴대전화 또는 범용 공인인증서로 다시 본인인증을 해야 한다. 
     
국회 홈페이지의 본인확인 페이지
 국회 홈페이지의 본인확인 페이지
ⓒ 국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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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현재 해외에 거주 중인 재외국민이거나 모종의 사유로 본인 명의 휴대전화가 없는 경우 등은 국민동의청원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이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를 명목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는 인증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은 휴대전화를 개통하려면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정보가 반드시 필요한 휴대전화 실명제가 실행 중이므로 이러한 본인인증 절차는 통신사를 한 단계 거칠 뿐, 개인정보 수집으로 이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 '인증 방법을 보다 다양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로 공인인증서가 폐지 수순을 밟은 바 있다. 통계를 살펴보면 전자서명법 등에 공인인증서나 휴대전화 인증을 의무화한 규정이 없는데도 금융거래 90% 이상이 공인인증서를 사용하고 있으며 본인확인은 통신사 비중이 98%에 달한다. 당장 국회 홈페이지만 봐도 통신사를 이용한 본인인증을 강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양한 인증 방법을 마련해야만 국민이 각자 사정에 맞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 일부 계층이 소외되는 일이 없어진다. 동시에 업계에서도 경쟁을 통해 더욱 안전하고 편리한 인증 방법을 개발해 낼 것이다.

청원 문턱 낮추고 참여 기회 확대해야

휴대전화나 공인인증서가 있다 해도 모바일 또는 PC 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노령층이나 세밀한 조작이 어려운 장애인 등 디지털 소외계층은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의사를 입법부에 전달하는 데 이렇듯 큰 장벽을 느낀다면 이는 차별이다. 모두가 능숙하게 홈페이지 가입 또는 본인인증 단계를 거쳐 동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전자청원제도 도입 당시 국회는 '국민의 입법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고 청원권의 실질적 보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 효과를 밝힌 바 있다. 이전의 국회의원 소개를 통한 청원보다는 참여 기회가 확대된 것은 맞다. 하지만 이전의 방식으로는 참여가 너무 제한돼 있었기에 언젠가는 반드시 개선돼야 했다. 지난해 한 차례 개선이 있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모든 국민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님을 국회가 인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개방적 인터넷을 지지하며 검열과 감시에 맞서 정보인권을 지킵니다.


태그:#국회청원, #국민동의청원, #정보인권, #정보접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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