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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되는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 모습. 오른쪽이 이란 혁명수비대가 타고 온 고속정이다. 사진은 나포 당시 CCTV 모습. 2021.1.5
 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되는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 모습. 오른쪽이 이란 혁명수비대가 타고 온 고속정이다. 사진은 나포 당시 CCTV 모습. 20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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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유조선이 나포되는 사건이 벌어져 국민들의 시선이 다시금 중동, 특히 사건을 일으킨 이란에 쏠리고 있다.  

배에는 한국 선원 5명을 비롯한 다국적 선원 20명이 타고 있어 가족들은 더 애가 타고 있다. 외교부의 실무대응팀이 7일 새벽 현지로 급파됐고, 주말에는 최종건 차관이 직접 이란을 방문할 계획이다.

비록 미국과는 적대적이지만 한국과 특별한 갈등관계가 없는 우호국이었던 이란은, 왜 한국 선박을 나포했을까. 미국의 금융제재로 인해 한국의 은행에 동결돼 있는 원유수출대금 '70억 달러'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설, 바이든 새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미국의 동맹국을 건드려 기선을 제압하려 한다는 설, 올해 예정된 대선을 앞둔 정치적 주도권 쟁탈전이라는 설 등 다양한 '설'이 제기되고 있다(관련 기사: '우호관계' 이란은 왜 한국 유조선을 나포했을까).

중동문제 전문가인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한국중동학회 회장)에게 이란이 한국에 대해 이같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와 바람직한 대처 방법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이란 측, 한국에 계속 경고 메시지 보냈지만..."

- 새해에 들어서자마자 중동에서 예기치 못한 소식이 들어왔다.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좀 황당한 사건이다.  사람들은 금방 해결될 것이라고 섣부른 많이 판단하는데, 이번 사건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이란 관계, 미국과 이란 관계, 이란 내부의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 이란은 한국 배가 바다를 오염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믿을 수 있나.

"이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인 건데, 표면적 명분은 그렇지만, 나포 장면을 헬리콥터로 촬영해서 이란 국영TV로 방송했다는 것은 기획된 나포작전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

- 이란의 '국내용'이란 말인가.

"그렇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이런 식으로 전가시킨 것이다. 정부가 의약품과 코로나 백신 구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극단적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대선 때 표를 얻어야 하는데, 경제난이 심각한 데다가 코로나19로 6만 명 이상이 사망한 데 대한 국민들의 고통을 무마하고 백신이나 의약품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 국내 불만을 해소하려 한국의 배를 나포했다?

"그렇다. 이란은 한국에 대해 계속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로하니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두 차례 친서도 보냈고, 문 대통령도 답변은 했지만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일부에선 이란 내부 강경파와 보수파의 주도권 싸움이 낳은 돌출행동이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코로나 위기와 경제난에 대처하기 위해서 이란 정치권이 조직적으로 감행한 사건이다.

이걸 압박해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란은 현재 한국의 은행에 원유대금 70억 달러와 자국은행이 한국은행에 지불준비금으로 예치한 20억 달러 등, 90억 달러 정도가 묶여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요구해왔고 이것이 해결되지 않아 이번 사태가 일어났다. 정부의 적극적 대처가 있어야 한다. 이란은 일본에도 원유대금 미수금이 있는데 한국만 당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일본도 한국처럼 이란에 줄 돈이 있나.

"대략 15억 달러 정도로 추산되지만, 이란이 달러로 결제하면 미국은행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물물교환이나 해당국의 환율교환식으로 한다. 일본은 (이란 측에) 총리도 가고 차관도 가면서 일종의 '립서비스'를 해왔다.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다."

- 이번 사건을 이란 국내 정치 세력다툼 희생양으로 보는 시각도 있던데.

"일부 국내 전문가들은 오는 6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보수파와 강경파가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한다고 보고 있는데, 그건 아니다. 최정예인 혁명수비대가 나포했다는 걸 가지고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보다는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 1주기를 맞아 혁명수비대가 기획, 감행한 걸로 봐야 한다. 이걸 권력구도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는, 사건이 장기화된다는 건가.

"현재로서는 우리가 혼자 할 수 없는 사안, 즉 미국 협조가 필요한 사안 아닌가. 트럼프 재임중에는 어렵다. 오는 20일 바이든 출범해 제재가 풀리면 해결될 문제라고도 하지만, 자칫 (해결되기까진) 열흘, 두 달,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인데,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전향적 방안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이란이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없는 한계도 있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우리가 얻을 것은 얻는, 장기적인 포석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고도의 외교력과 협상력이 필요한 사안이다."

"조기 해결 위해선 고도의 외교력과 협상력 필요"
  
유조선 한국케미 나포 직전 항적.
 유조선 한국케미 나포 직전 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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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든 미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란 시각도 있지 않나.

"그런 측면도 있다. 바이든 시대 최대 외교 관심사는 이란문제라고 본다.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핵협정을 탈퇴한 것은 오바마 지우기의 일환이었다. 이제 바이든은 트럼프 지우기를 시도할 것이다. 바이든이 강조한 것은 다자주의와 동맹복원 아닌가. 이란 핵협정 재가입은 유럽국가들과의 동맹을 복원시키는 의미도 있다.

(미국이) 이란과의 여러 문제를 풀면 모든 외교력을 중국문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란 핵협정을 되살리는 부분은 바이든 외교의 최대 관심사이자 핵심 내용이다. 이란으로서는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건드려서 관심을 끌고, 미국의 핵협정 복귀를 압박하려 한 것이다.

이런 걸 보며 우리는 미국과 이란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단교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의 관계가 복원되지 않았나. 이것은 사우디가 바이든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선제카드라고 본다. 사우디는 바이든 시대에 미국과 상당한 냉각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 바이든은 인권외교를 강조하고 있고, 특히 사우디의 예멘내전 개입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해왔다. 사우디의 입지가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사우디가 카타르와 단교했던 이유는 이란과의 관계에 있는데, 그런 전제조건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관계를 개선했다는 건 선제적으로 이런 것을 해서 미국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제스처다. 우리 외교부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인 방안을 논의한다는데, 이란과의 관계 해결을 위해선 좀 장기적이면서도 적극적이고, 신중하고 과감한 행보가 필요하다."

- 우리는 이란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원활한 협의를 위해서라도 이번주 안으로 풀어주길 원하고 있는데.

"최소한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는 오는 20일까지는 어렵다고 보는 게 맞다. 조기 해결을 위해서는 정말 고도의 외교력과 협상력이 필요하다. 이란이 요구하는 부분은, 대금을 달러로 결제했을 때 나중에 미국이 동결시킬 가능성 때문 아닌가. 그런 부분에서 한국 정부에게 보증을 서는 것을 요구하거나 대리구매를 요구할 수도 있다."

- 만약 잘못되면 한국이 뒤집어쓰는거 아닌가.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하되, 더불어 이란에 역제안을 해서 이란의 한국기업과 정부가 최대한을 얻기 위해 이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 대이란 관계에서 한국 정부의 노력을 평가한다면.

"아쉽다. 예를 들면 이란 문제가 이렇게 소원해진 이유 중 하나는 남북문제가 (현 정부의) 최대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미국이 적대시하는 이란을 의도적으로 경시 혹은 배제해온 경향이 있었다. 지난 2년 6개월간 동결된 자금 문제에 대해 성의있는 자세를 보였다면 이와 같은 파국과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 남북관계를 잘 해나가려면 미국의 협조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간 미국에 치우친 경향도 있었겠다.

"우리로서는 북한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장기적인 청사진을 통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이란과 지속적인 접촉을 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나 국제관계를 호전시키는 데 필요하다." 

"청해부대 호르무즈해협 현지 파견, 너무 성급했다"

- 이란이 이번 사건과 돈문제를 별개라고 얘기하니까, 협상이 까다로울 것 같다.

"일단 그들의 의중을 떠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란 사람들이 돈문제라며 분리시키려고 하지만, 자기들 협상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조치일 수도 있다. 우리도 다양한 포석을 가지고 제안해야 한다."

- 이란 측을 상대하는 협상단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일단 미국과 이란은 적대관계이지만, 한국과 이란은 그렇지 않지 않나. 공식적으로는 돈문제를 배제한다지만, 로하니 정부나 강경파 세력 모두 코로나 위기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란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의약품 등 실무협상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단순히 백신 10억 달러 구입 뿐만 아니라... 제재대상이 아닌 품목들 중에서 다양한 물물교환을 하는 형태의 방안도 고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란은 물자도 부족하고 경제도 심각하고 의약품, 백신 등 여러 가지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있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통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 아닌가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 이번 사태를 보는 이란 여론은 어떤가.

"전반적으로 이러한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만 절차적으로는 문제제기를 하는 분위기도 많다고 본다. 시점이 절묘했다. 사령관 암살 1주기에다 미국 항공모함의 페르시아만 주둔 같은 상황에서 이러한 사건이 발생했다."

- 사건이 나자마자 정부가 해적을 퇴치하기 위해 아덴만에 가있던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쪽으로 이동시킨 데 대해, 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땐 설사 군함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상대국 의중을 따져보면서 양해를 구하고 했어야 하는데, 너무 성급했다고 본다. 만약 보내지 않았을 경우 대처에 소극적이라는 야당의 공격을 의식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란이 적대국가도 해적도 아닌데, (사전)조율이 필요했던 것 아닌가.

사건 초기 이란 쪽에서 돈문제 거론에 대해 불쾌한 반응을 냈던 것도, 이와 관련있을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해선 신중한 접근과 해법이 필요하다."
 
유달승 교수
 유달승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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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란, #유조선, #한국케미, #호르무즈해협,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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