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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함께 공동기획으로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8편의 이야기 글('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을 선보인다.[편집자말]
2007년 5월 10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삼성 비정규·하청 노동자 공동투쟁 집회에 참석해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연대사를 하고 있는 모습.
 2007년 5월 10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삼성 비정규·하청 노동자 공동투쟁 집회에 참석해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연대사를 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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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노회찬이 "검찰 고객은 3부류가 있다"고 한 까닭 에서 이어집니다.

'노회찬의 괘씸죄'와 기나긴 법정 공방

노회찬의 '삼성X파일 떡값검사 명단 공개'는 단순히 비위 검사의 이름을 폭로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삼성재벌 이건희 일가의 대한민국 장악 프로젝트'에 대한 공격의 의미를 함축한다.

삼성 일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것은 당연히 '괘씸죄'에 해당한다. 아니, 일종의 '국가원수모독죄'와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꼼수다>(나꼼수) 27회(2011.11.7.)에서 정봉주가 "고등법원에서 무죄로 올라간 게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것을 보고 많은 국민들이 괘씸죄가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오랜 시간 노회찬과 진보정당 활동을 같이 해온 장석준은 '제복권력과의 긴 싸움, 노회찬은 전사했다'(<프레시안>, 2018.7.30.)라는 글에서 삼성이라는 거대한 자본권력과 결탁한 검찰과 법원 등 '법복권력' '제복권력'과의 싸움을 "2005년부터 2016년까지 거의 10여 년 세월을 '삼성장학생' 검사·판사들의 그림자 속에서 고투했던 셈"이라고 갈파한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저 '사법 적폐'란 노회찬이 맞서 싸우고 노회찬을 물고 뜯은 자들의 긴 목록에 다름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2007년 5월 21일 검찰은 삼성 쪽 인사에 대한 불기소를 통해 면죄부를 준 것과는 대조적으로, X파일 내용을 보도한 이상호 MBC 기자와 녹취록 전문을 실은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을 기소했다.
 
2007년 11월 2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삼성비자금 특검법안이 재적의원 299명 가운데 재석 189명, 찬성 155명, 반대 17명, 기권 17명으로 가결되는 모습.
 2007년 11월 2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삼성비자금 특검법안이 재적의원 299명 가운데 재석 189명, 찬성 155명, 반대 17명, 기권 17명으로 가결되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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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뒤인 2007년 11월 23일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제정, 통과(재석 189인, 찬성 155인, 반대 17인, 기권 17인)돼 2007년 12월 10일 공포됐다. 이 법에 따라 이른바 '삼성특검'(특별검사 조준웅 변호사)이 임명돼 수사가 개시됐다.

민주노동당은 "특검후보 추천권에 관한 당초의 안은 국회의장이 특검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하고 거기서 추천하는 것이었으나, 한나라당과 합의하는 과정에서 그만 특검후보 추천권을 변호사협회에 양보한 것이 큰 실수였다"고 지적했다.

2008년 4월 18일 조준웅 특검은 삼성의 불법 상속에 면죄부를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결론은 '이건희 삼성회장 불구속 기소'. 

삼성특검은 이건희를 구속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조직 구성원의 개인적 탐욕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배임, 조세 포탈 범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평등한 법적용이 그 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이 갖고 있는 개별적 특수성이나 시대적 상황 등 다른 요소는 전혀 외면한 채 기계적으로 똑같이 적용하라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불법도청은 손가락일 뿐, 손가락이 가리킨 진실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도청 녹취록을 인용해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로 기소된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가 2009년 2월 9일 오후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왼쪽은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도청 녹취록을 인용해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로 기소된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가 2009년 2월 9일 오후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왼쪽은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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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9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노회찬에게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구형한다. 2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3단독 부장판사 조한창은 "피고인이 임의로 떡값 검사 7인의 명단을 작성해 공개한 것은 정치적 의혹제기의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고 허위사실을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라며 노회찬에게 징역 6월,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 

"삼성이 특정 검사에게 떡값을 줬다는 주장은 (안기부 X파일) 녹취록에 의한 것인데 이는 떡값을 지급한 것이 아니고 예정한 것임에도 피고인의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돈을 받은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피고인이 국회의원 신분이지만 자신의 홈페이지와 보도자료를 통해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것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조한창의 논리는 정말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판결이 있기 얼마 전(2009.1.9.) 최후진술을 통해 노회찬은 "불법도청은 손가락일 뿐이며 그 손가락이 가리킨 진실의 달은 바로 삼성X파일이며, 불법도청은 되풀이 돼선 안 될 위법행위지만 그렇다고 해서 X파일에 담긴 진실이 훼손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X파일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훼손하고 국가의 기강을 뿌리 채 뒤흔드는 범죄의 현장"이었음을, 따라서 공개가 불가피했음을 강조했다. 

1심 판결이 나온 직후 노회찬은 "거대 권력 횡포와 권력남용의 결정판이었던 안기부 X파일에 대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가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진실을 은폐하는 데 일조했다"며 "오늘 1심 법원 판결대로라면 홍석현 전 주미대사는 사임할 이유가 없었고, 삼성그룹과 중앙일보는 대국민 사과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면서 항소를 통해 사법정의를 세우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2009년 12월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8형사부(재판장 부장판사 이민영·판사 박신영·판사 정성민) 항소심은 노회찬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피해자들이 삼성그룹에서 떡값을 받았다고 적시한 부분이 허위사실이라는 점에 대한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고, 노회찬도 허위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논리였다. 
 
기뻐하는 삼성X파일 사건 노회찬 변호인단.
 기뻐하는 삼성X파일 사건 노회찬 변호인단.
ⓒ 노회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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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09년 12월 31일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 관련 배임과 조세 포탈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회장직을 내놓았던 삼성재벌 이건희 총수에 대한 '원 포인트' 단독 특별사면을 이명박이 감행한 것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 15회, 허정 2회, 박정희 25회, 전두환 18회, 노태우 7회, 김영삼 9회, 김대중 7회, 노무현 8회, 이명박 7회 등 총 98회에 걸쳐 특별사면이 단행됐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서 사면은 헌법과 사면법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79조는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사면·감형·복권을 명할 수 있고 이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한다.

이건희 1인에 대한 특별사면은 법과 법 정신에 근거해 통치돼야 한다는 법치주의 정신과 지위고하, 사회적 영향력, 재산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근본가치가 또 한 번 무너졌음을 반증한 것이었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 명만이 법 앞에 평등한 사회, 그것이 바로 이명박 행정부가 이끄는 대한민국의 민낯이었다. 
 
2007년 12월 2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경제인 간담회 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있는 모습.
 2007년 12월 2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경제인 간담회 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있는 모습.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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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은 무죄, 통비법은 유죄...?

2011년 5월 13일 대법원 제2부(대법관 김지형 재판장 양창수 주심 전수안·이상훈)는 명예훼손 혐의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하지만, 불법도청 내용 공개를 금지하는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 부분은 유죄 취지로 해서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파기환송했다. 두 부분 모두 파기환송시키기에는 국민의 눈이 무서웠던가, 아니면 스스로 생각해도 창피하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주심인 양창수의 판결문은 이랬다. 

"노회찬이 검찰의 수사를 촉구할 목적으로 보도자료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고는 하나 이미 언론매체를 통해 그 전모가 공개된 데다가 국회의원이라는 피고인의 지위에 기해 수사기관에 대한 수사의 촉구 등을 통해 그 취지를 전달함에 어려움이 없었음에도 굳이 전파성이 강한 인터넷 매체를 이용해 불법녹음된 대화의 상세한 내용과 관련 당사자의 실명을 그대로 공개한 행위는 방법의 상당성을 결여한 것으로 봐야 한다."

한편, 2011년 9월 4일 헌법재판소는 노회찬이 "타인간의 대화 내용 공개를 처벌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1항 제2호는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에서 7(합헌)대 1(한정위헌)로 합헌 결정을 내린다. 헌재는 "불법 취득한 타인간의 대화내용을 공개한 자를 처벌함에 있어 형법 제20조(정당행위)의 일반적 위법성조각사유에 관한 규정을 적정하게 해석·적용함으로써 공개자의 표현의 자유도 적절히 보장될 수 있다"며 "형법상의 명예훼손죄와 같은 위법성조각사유에 관한 특별규정이 없어도 기본권 제한의 비례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강국 재판관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특별한 위법성 조각사유를 두고 있지 않아 통신비밀의 보호만을 일방적으로 과도하게 보호하고 표현의 자유 보장을 소홀히 하고 있다"며 한정위헌 입장을 밝혔다.

2011년 10월 28일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5부(재판장 양현주 부장판사)는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이 국회 내에서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며 국회 외에서 보도자료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기자나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면책특권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노회찬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여야 과반 의원이 탄원서를 냈지만

파기환송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자 2013년 2월 5일 문재인(민주통합당 의원), 이재오(새누리당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159명이 재상고심 선고를 연기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여야 의원 152명이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개정에 동의해 개정안도 국회에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과반의 여야 의원들의 탄원서와 개정안 상정은 무시됐고, 재상고심 선고는 통비법 개정 전에 기어이 진행됐다. 노회찬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2013.2.24.)에서 "입법권에 대한 사법권의 과도한 횡포이자 폭력"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앞두고 159명의 의원이 선고연기를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질 거라고 봤는데 판결이 강행돼서 놀랐다. 처음 유죄를 내렸던 1심도 판결문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지만 국회의원으로서의 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선고유예가 마땅하나, 과거에 나의 민주화운동 전과 때문에 선고유예가 불가하고 이 법에는 벌금형이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실형을 내린다고 변명하듯 판결문에 적었다. 그래서 법을 개정하려고 152명이 공동발의한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이를 묵살했다는 것은 입법권에 대한 사법권의 과도한 횡포이자 폭력이다. 폐암환자 수술하라고 하니 멀쩡한 위를 제거한 형국이다."

국회를 떠나며:
"법 앞에 만 명만 평등한 사법부에 정의가 바로 설 때 민주주의도 완성될 것"

 
삼성X파일 떡감검사 공개와 관련한 기소혐의 그리고 1, 2, 3심 판결 결과.
 삼성X파일 떡감검사 공개와 관련한 기소혐의 그리고 1, 2, 3심 판결 결과.
ⓒ 조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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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4일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의 유죄 선고 논리는 'X파일'에 실린 검사들의 이름을 보도자료를 통해 기자들에게 배포하는 것은 면책 특권에 해당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 알게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통신비밀보호법에 근거해 판결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노회찬은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하루 전날인 2월 13일, 2005년 특별수사팀의 지휘를 맡았던 황교안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됐다. 당시 '떡값 검사'로 이름을 올린 검찰 고위인사들 역시 영전하거나 대기업 사외이사로 영입되는 등 승승장구의 길을 걸었다.

국회의원직을 상실하던 날, 노회찬은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8년 전 그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하더라도"
 
'삼성X파일 떡값 검사' 실명 공개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2013년 2월 14일 기자회견을 열었을 당시 모습.
 "삼성X파일 떡값 검사" 실명 공개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2013년 2월 14일 기자회견을 열었을 당시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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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의 재벌회장이 대선후보에게 거액의 불법정치자금을 건넨 사건이 '공공의 비상한 관심사'가 아니라는 대법원의 해괴망칙한 판단을 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국민 누구나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1인 미디어 시대에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면 면책특권이 적용되고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면 의원직 박탈이라는 시대착오적 궤변으로 대법원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묻습니다. 지금 한국의 사법부에 정의가 있는가? 양심이 있는가? 사법부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저는 오늘 대법원의 판결로 10개월 만에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다시 광야에 서게 되었습니다.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서도 뜨거운 지지로 당선시켜주신 노원구 상계동 유권자들께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8년 전 그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바로 그런 거대권력의 비리와 맞서 싸워서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대법원 판결은 최종심이 아닙니다. 국민의 심판, 역사의 판결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오늘 대법원은 저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지만 국민의 심판대 앞에선 대법원이 뇌물을 주고받은 자들과 함께 피고석에 서게 될 것입니다.

법 앞에 만명만 평등한 오늘의 사법부에 정의가 바로 설 때 한국의 민주주의도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오늘 국회를 떠납니다. 다시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해괴망칙'하고 '시대착오적' 궤변인 유죄판결 판단의 논리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노회찬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이들 법관들에게 묻는다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여전히 당시 판결이 타당했다고 말할까?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조항 103조 규정에 따른 것으로, 황교안처럼 하늘을 우러러 정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할까? 

노회찬은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 개정 가능성이 높은 사항인데 왜 서둘러 선고했는지 모르겠다"며 "개정법에 의해 내가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을 대법원이 바라지 않는 듯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당시 대법원은 무엇이 그렇게 급했을까?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다음날(2월 15일) 논평을 통해 "노 의원이 공개한 것은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이 검찰을 돈으로 관리하려고 모의하는 대화내용이었으며, 그 대화에 거론된 검사들의 명단이었다"며 "공개한 내용에 보호돼야 할 사생활은 전혀 없으며, 오로지 재벌이 돈으로 검찰을 관리하려는 내용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의원으로서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하고자 했던 노 의원의 행위는 모든 국회의원에게 권장돼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며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공적 영역에서조차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닌 권력집단의 손을 들어 주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했다"며 규탄했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한가?" 오랫동안 노회찬이 던진 질문이다. 

그렇지 않은 한국의 현실이 역설적으로 증명된 것이 바로 '삼성X파일 사건'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명에게만 평등하다" "도둑을 보고 '도둑이야'라고 외쳤는데 도둑은 안 잡고 소리친 사람만 소란죄로 체포되는 것"이 바로 사건의 본질인 것이다. 2016년 10월 20대 국회 법사위의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노회찬은 물었다. 그리고 요청했다.

"대한민국 검찰 앞에 국민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물으면 지체없이 '그렇다'고 답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 중에 "다윗과 골리앗"은 불가능해 보였던 승리나 약한 쪽이 훨씬 강한 쪽을 이길 때 사용한다(물론 구약성경의 권위자 조엘 베이든의 <꾸며진 영웅의 실제 생애>처럼 다윗에 대한 다른 해석도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우리 주변에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셀 수 없이 많다.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운 7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노회찬과 삼성 X파일>(이매진, 2012)의 2부(''삼성'이라는 거대 권력과 맞서다 - 삼성 X파일 사건의 진실')에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는 장이 있다. 삼성X파일 사건 과정에서 거대 카르텔과의 싸움을 노회찬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2009년 1월 재판부의 1심 판결을 앞두고 송영길(민주당 최고위원), 이종걸(민주당 국회의원), 권영길(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심상정(진보신당 대표) 등 여러 사람이 노회찬의 탄원운동 참여 요청에 발벗고 나섰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 각계인사 300여 명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난쏘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 등 문화예술인 200여 명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는 이런 글귀를 담고 있었다.

"불의를 저지른 거대권력은 건재하고 이에 맞선 다윗만 처벌받는 사례가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

삼성X파일 사건 관련, 노회찬 변호인단에서 핵심 역할을 한 박갑주 변호사는 그때를 생각하며 훗날 이렇게 회고한다. "정의의 골리앗"이라는, 의도적으로 뒤바꾼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삶이 풍찬노숙이 아니었던 적이 없지만, 특히 삼성 엑스파일 사건은 정치인 노회찬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 중대 사건이었다. … 노회찬은 삼성 엑스파일 사건 과정에서 거대 카르텔과의 싸움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그 싸움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정의의 골리앗, 정치적 거인이었음을 증명했다." (박갑주, '고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일을 맞아: 권력의 검은 카르텔과 맞서 싸운 그', <오마이뉴스>, 2019. 2.14.).

"언터처블 삼성공화국", 그러나 "국민의 법정에서 노회찬은 무죄다"
 
'삼성X파일 떡값 검사' 실명 공개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2013년 2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해괴망칙하고 시대착오적 판결이다. 8년 전 그 순간이 다시 온다고 해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밝히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삼성X파일 떡값 검사" 실명 공개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2013년 2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해괴망칙하고 시대착오적 판결이다. 8년 전 그 순간이 다시 온다고 해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밝히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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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조희연(성공회대 교수,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의 <프레시안> 기고글 ''국민의 법정'에서 노회찬은 무죄다'(11.9.)는 이렇게 말한다. 

"'국민의 법정' 혹은 '역사의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되어야 할 사안이 '현실법정'에서는 유죄가 되는 사례가 많다. 사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그런 역설적 모습에 많이 익숙해져 왔는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안타까워하고 분노하지만, 많은 경우 '그냥 그러려니' 하고, 또는 '내 문제가 아니니'하고 익숙하게 살아간다. 노회찬 전 의원의 경우가 그렇다. … 

나는 현실의 법정(이것은 단지 사법부의 법정만이 아니라 그것을 일부로 하는 기득권적인 통치질서, 정당질서, 국가질서 같은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에서는 노회찬이 유죄가 되었지만 진정한 '국민의 법정'에서 노회찬 전 의원은 무죄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의 구도는 사실 간단하며, 또 현재도 존재하는 현실이다. 이 삼성파일 사건은 우리 사회의 권력층, 즉 재벌권력과 언론권력 그리고 검찰권력이 어떻게 공모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으며, 굴지의 삼성재벌 총수 이건희 회장이 본인의 수족인 이학수 등을 통해 검찰에 어떻게 뇌물을 제공하며 검찰은 그 뇌물을 받아가며 어떻게 '삼성의 법무팀'처럼 불법행위를 감싸왔는가, 그리고 언론권력은 이를 어떻게 '중매'하고 있는가를 명명백백하게 드러내 준 사건이었다. 

파기환송심의 사법적 판결이 보편적 상식과 어긋나게 내려진 지금 이 시점에서도 나는, 죄는 불문에 붙여지고 오히려 죄를 용감하게 폭로한 노 전 의원이 벌을 받는 현실을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아무리 우리 사회 삼성권력이 힘이 막강하고, 검찰권력이 강하고, 언론권력이 강하더라도, 최소한 내 마음 속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궁극적으로 많은 국민들도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의 짐을 진 노 전 의원에게 우리 모두가 깊은 부채를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조희연의 말을 인용하자면, '현실의 법정'에서는 이건희 삼성일가로 상징되는 '골리앗'이 이겼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의 법정'에서는 '다윗'으로 상징되는 노회찬이 이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14년 2월 14일 노회찬은 트위터에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내려졌던 자격정지가 정월 대보름 오늘부로 풀렸다. 이 길을 처음 떠날 때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자격정지 기간이 만료돼 정치적으로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네티즌들이 보인 축하 반응 가운데 이런 것들이 있었다.

"도둑에게 '도둑이야!'라고 외쳤다는 이유로 의원직 박탈과 자격정지를 받았던 노회찬 전 의원이 다시 정치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용기 잃지 마시고 전 보다 더 활기차고 열정 있는 활동하시라고 격려드립니다"(@kun****) 
"노회찬의 복권, 괴물 삼성과 싸우다 피흘리던 그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삼성, 긴장하라!"(‏@ssb****)
"삼성에 맞서는 게 죄가 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회찬 전 대표님 축하드립니다"(@ksh****) 


같은 날 김제남(정의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 "삼성 뇌물검사들의 명단이 담긴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보내는 것은 괜찮고,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은 안 된다는 사법적 판단은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 지적하고 "삼성과 검찰의 검은 커넥션을 폭로한 노회찬 전 의원에게 적용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죄가 아니라 바로 괘씸죄"라고 비판했다.

왜 대한민국 법은 유독 삼성 앞에만 서면 힘을 잃는 것일까? 사카린 밀수와 부정축재를 벌였던 1대 이병철 회장도, 수백억 원대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수조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조세 포탈 혐의를 받은 2대 이건희 회장도 감옥에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조세 포탈, 비자금 조성, 뇌물 공여 등 삼성 총수들의 각종 범법 행위가 드러날 때 마다 법의 칼날은 삼성 앞에서는 무뎌지기만 했다.

"제가 2004년에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국회에 들어와서 처음 제가 들었던 충고 저를 좀 아끼는 3선 의원이 저한테 한 얘기가 기억납니다. 정치인으로서 긴 수명을 누리려면 미국하고 삼성은 건드리지 마라. 언터쳐블,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였다는 거죠. 그리고 건드리면 그만큼 본인이 위험해진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삼성은 구속되지 않는다', <뉴스타파>, 2017.1.26.). 

노회찬이 한 말이다. '언터처블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③-4]로 이어집니다(바로 읽기 클릭)

태그:#노회찬, #검찰, #삼성X파일, #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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