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봉준호를 읽다>

책 <봉준호를 읽다> ⓒ 솔출판사

 
"관객들과 2시간을 어떻게 싸울 것인가? 어떻게 2시간 동안 관객을 붙들어 매고 멱살을 잡고 가듯이 갈 것인가? 그런 부분에 강박이 있어서 그런지 집중력이란 단어 하나만은 이야기하고 싶다."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고민하는 주제나 스타일, 나는 이것에 대해 놓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답변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또한 영화 촬영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처음 이 스토리나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자신을 흥분시켰던 게 뭔지, 그 충동이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창작자의 입장에서 최초 충동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책 <봉준호를 읽다>에 나오는 봉준호 감독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황영미·김시무 평론가가 펴낸 <봉준호를 읽다>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봉준호 감독의 최신 인터뷰다. 지난 10월에 화상으로 진행됐다는 인터뷰는 그간 만든 영화들에 대해 두 평론가의 날카로운 질문과 봉 감독의 자세한 답변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냄새의 의미에 대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느라 냄새 이야기는 못하는데,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의 선을 넘는 영화로서 냄새 키워드가 계급이나 계층이라는 핵심 테마에 종속된다"고 설명했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깔고 있는 <살인의 추억>이나 <옥자>에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평론가들이 보는 시각이 맞다고 인정하면서 세밀한 해설을 더했고, <설국열차>도 계급투쟁이나 체제전복을 말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해석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봉준호의 영화를 장면마다 해체
 
<봉준호를 읽다>는 영화감독 봉준호의 작품에 대해 꽤 심도있게 분석한 책이다.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로 시작해 <살인의 추억>,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황영미·김시무 두 평론가는 감독의 영화를 통해 말하려는 부분을 아주 세세하게 잡아낸다.
 
씨줄과 날줄이 얽히듯 그간 봉준호 작품에서 나타난 특성들을 관찰했고, 전체적으로 봉준호의 필모그래피에서 보여지는 공통된 점을 예리하게 찾아낸다.
 
예컨대 봉준호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능력이 없거나 능력이 있어도 발휘하지 못하는 패자들이고, 공권력의 무력함이나 불신을 가시화시켜 사회 부조리에 대한 인식을 관객에게 상기시키며, 영화 속 희생자는 주로 여자다.
 
 <봉준호를 읽다>의 저자 황영미. 김시무 평론가

<봉준호를 읽다>의 저자 황영미. 김시무 평론가 ⓒ 솔풀판사 제공

 
황영미·김시무 평론가는 봉준호의 영화를 색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 <살인의 추억>에 대해 라캉의 '실재계' 개념을 통해 텍스트를 분석하고, <기생충>을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이라는 개념으로 재해석한다.
 
<살인의 추억>은 외관상 열린 결말로 보이지만 실은 대단히 정교하게 구성된 닫힌 결말이며 정신분석학적 영화 기호학의 기획이 작품을 해명하는데 유용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기생충> 역시 계급관계가 계급투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극히 보수적으로 읽힌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모든 장면을 하나하나 해체해 분석하는데, 마치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미지를 탐험하는 느낌을 준다. 오래된 유적이나 건축물을 분해해 사소한 흔적조차 대충 넘어가지 않고 현미경 분석을 통해 작품을 재구성하는 평론가들의 탐구 정신이 돋보인다. 봉준호 첫 단편인 <백색인>이나 <지리멸렬>까지 등장시키기도 한다.
 
책 초반에 나오는 봉준호 감독에 대한 인터뷰는, 평론가들이 펼쳐온 작품 분석에 대해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두 평론가의 해체수준 분석에 대해 대체로 수긍한다.
 
<봉준호를 읽다>는 기존의 비평과는 다른 새로운 비평 방식을 적용한 것이 특별하다. 봉준호가 이뤄낸 영화 세계의 구조와 미래에 대해 유추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두 평론가들의 예리한 시선이 작용한 덕분이다. 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분석하면서 단순한 감상으로 끝나지 않고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평론의 묘미가 책에 가득 담겨있다.
 
황영미 평론가는 현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으로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학부 교수와 교양교육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대학교양교육연구소협의회장도 맡고 있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회장 및 한국사고와표현학회장을 역임했고, 칸, 베를린, 부산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심사위원과 춘사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김시무 평론가는 한국영화학회장, 부산국제영화제 전문위원, 청룡영화상 심사위원, 대한민국 영화대상 심사위원,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홍상수의 인간희극>, <스타 페르소나>, <영국의 영화감독> 등이 있다.
 
"이언경의 '영화공간1895'에서 영화수업 들어"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기자회견' 봉준호, 감사합니다! 배우 봉준호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기자회견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기생충>은 한국영화 최초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 종려상,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데 이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 등 4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수상했다.

▲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기자회견' 봉준호, 감사합니다! 배우 봉준호가 지난 2월 19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기자회견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이정민

 
<봉준호를 읽다>의 봉준호 감독 인터뷰에는 처음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과 코로나19 이후 상영 환경 변화에 대한 인식도 엿볼 수 있게 한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완전히 마음을 먹은 것은 군입대 후 18개월 방위병으로 출퇴근하면서였다"며 "최초의 사설 시네마테크 같은 곳이었던 이언경의 '영화공간1895'에 빡빡머니를 하고 24시간 영화학교에 등록해 수업을 들었다"고 회상한다.
 
또한 "당시 주진숙(현 한국영상자료원장) 선생님과 전양준(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계셨다"면서 주진숙 선생님이 하시는 수업에서는 데이비드 보드웰의 <필름 아트>를 갖고 몇 달간 공부했다"고 전한다.
 
봉준호 감독은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이 침체되고 기대작들이 넷플릭스 등 온라인으로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나타냈다. 그는 "넷플릭스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극장에서 하고 넷플릭스에서 또 오랜 기간 볼 수 있으면 그게 좋은 것이라며 이 위기를 빨리 돌파해 극장이 건재함을 과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상황에서 너무 과민반응을 해서 '이제는 극장을 접어야 된다'거나 '우리가 스트리밍으로 영화산업 자체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된다'는 식의 너무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봉준호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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