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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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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은 국제연합(UN)이 지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세계 장애인의 복지 상태를 점검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권리를 확보하는 것에 목적을 가지는 이 기념일은 올해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재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공포일 수 있지만 재난으로 인한 삶의 위협과 위기는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통해 현 사회에서 배제되고, 차별당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집단이 거주하는 시설에서의 끊이지 않는 감염 문제를 들 수 있다. 국제장기돌봄정책네트워크가 시행한 '케어홈 코로나19 관련 사망률 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26개국을 조사한 결과 장애인 거주시설, 요양시설, 정신병원, 장애아동 기숙학교 등과 같은 집단 거주시설 거주인 사망률이 약 47%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아직 통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연초 경북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 중이던 100명이 넘는 인원이 코로나19 양성 결과를 받았고 8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이곳 거주인들 대다수는 장기입원 환자였으며 외출이나 면회 기록도 거의 없었다. 사망자 중 한 명은 치료를 위해 병원을 나서며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하니 좋다. 빨리 갔다 오겠다"라고 하여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후에도 수많은 시설에서의 집단 감염은 잇달아 발생했으며, 이에 관한 기사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19 양성 결과가 나오지 않은 시설들조차도 코호트 격리(동일집단 격리)를 실행하는 사례가 속출했고, 시설에 거주하는 이들 대부분은 1년 내내 외출과 면회를 제한받으며 외부와 단절된 채 시설에서의 격리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수용시설 정책을 비판하며 탈시설운동을 하는 장애인 인권운동 진영은 집단 시설에 수용되지 않고 개별적 존재로서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정보와 조치를 받을 수 있었다면 코호트 격리와 집단 감염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인권운동 진영은 시급히 탈시설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이를 기준으로 하는 방역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에 대한 대책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채, 11월 보건복지부 코로나19 사회복지시설 대응 지침에서 외출과 면회 제한 조치는 변함 없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시설 거주인은 시설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전보다 개인의 삶은 더 사라지고 철저히 '관리되어야 하는 집단'이 되어 기약 없이 시설에서의 감금된 생활이 강제됐다.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개인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과 이것이 용인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코로나19로 더욱 드러난 시설사회

탈시설운동은 단지 장애인만의 문제이거나 시설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의 탈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조건, 환경에 따라서 사회로부터 배제되거나 차별과 통제의 대상이 되어 '시설화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탈시설운동은 "현재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 "우리에게 어떤 사회가 필요한가?"를 질문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은 시설화된 사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기존의 시설화된 사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의 지원 정책은 생존을 위협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책이다. 따라서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아무런 제약 조건 없이 지급되어 한다. 그럼에도 기존 제도에 편입된 이들을 기준으로 '자격'을 선별하는 재난 지원 정책은 그 자격에서 배제된 이들의 생존을 위태롭게 했다.

코로나19 초기 공적마스크 구매 시 주민등록증 외에 건강보험증, 외국인등록증, 학생증을 제시할 수 없는 이주민이나 청소년은 자격 미달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시킨 정책은 비판을 받고 나서야 변경됐다. 긴급재난지원금의 경우 개별적 지급이 아닌 세대주에게 지급됨으로서 세대주가 아닌 이들은 실제 지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였고, 특히 탈가정 한 이들에게는 실제적 도움이 되지 않았다.

홈리스과 같이 거주지와 주민등록지가 다르거나 거주지가 불안정하거나 통장이나 카드 발급이 어려운 이들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2차 재난지원금도 이전 해 매출이나 소득 입증이 어려운 예술인이나 프리랜서, 노점상을 하는 이들은 지원 대상이 되기 어려웠다.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생계에 타격을 받고 있는 많은 이들이 정작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셈이다.

방역을 위해 집에 머물기를 강조하지만 머물 수 있는 집이 없는 이들을 위한 대책 또한 없다. 유엔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방역 대책은 홈리스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며, 국가는 홈리스에 대한 주거 문제 해결의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철거민에 대한 강제퇴거 금지 원칙을 세우고 즉각 시행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권을 기반으로 한 코로나19 대응 정책보다 이윤과 방역 앞세우며 홈리스들은 그나마 머물 수 있는 공공역사에서 퇴거를 당하고, 철거민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노동문제 또한 심각하다. 코로나19로 안정적인 일자리는 감소되고 불안정한 일자리와 실업율이 상승되고 있다. 성차별적인 노동 현장에서 여성의 노동 차별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올해 10월 통계청 자료 분석한 결과 전년 대비 여성 취업자 감소율이 남성에 비해 3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돌봄노동은 여성이 책임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코호트 격리 등으로 요양보호사나 돌봄노동자의 노동 시간은 급격히 늘어났음에도 임금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또 대면 서비스 종사자들의 방역 등 안전에 대한 대안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공적 돌봄 시스템 중단은 가정 내 돌봄 노동을 가중시키고 이는 여성들의 경력 단절의 문제로 이어져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재난은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불행이 아니다. 재난은 차별이 용인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더욱 커진다. 유엔과 국제인권기구들은 "모두가 안전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원칙을 기조로 코로나19 재난 대응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재난 상황에서 모두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누구도 차별 받지 않고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위기만을 강조하며 행해지는 인권침해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희생돼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맞닥뜨린 위기는, 국가가 지켜야 할 생명을 서열화함으로서 생존이 위태로워지고, 사회에서 배제되고 고립됨으로써 지워진 존재가 되며,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쓸모에 따라서 생계 수단을 잃거나,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봄을 수행해야 할 사람을 규정하며 국가와 타인에게 귀속된 삶이 강제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할 권리를 상실하게 되는 것, 시설화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당면한 실제적인 위기가 아닐까.

차별금지법은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작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도 행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도 행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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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으로 인한 고통이 나만의 문제가 되거나, 나의 문제가 될까봐 불안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코로나19의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단지 건강과 생명의 위협과 같은 감염 자체만이 아닐 것이다. 감염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 어렵게 일구어낸 일상의 무너짐과 경제적 어려움, 누가 나를 돌볼 것인가에 대한 걱정과 관계의 단절, 외로움과 같은 감염으로 발생하리라 예측되는 수많은 문제들이 감염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이러한 두려움이 클수록 내가 살고있는 사회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코로나19로 사회적 불평등이 더욱 드러나고 있기에, 우리는 막연한 두려움보다 사회변화를 위해 인권과 차별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이제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차별은 특정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별, 나이, 장애 여부, 출신 지역 또는 국가, 학력, 용모 또는 신체조건, 혼인 여부,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병력이나 건강 상태, 사회적 신분 등 각자가 놓인 위치와 상황에 따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이다. 또한 한 개인의 정체성과 위치는 고정되지 않고 교차하고 상대와 상황에 따라서 또 다른 차별을 경험하게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이미 제정되었지만 성별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은 장애인차별금지법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누구나 여러 정체성이 교차하면서 발생되는 복합적인 차별은 개별법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이는 세계장애인의 날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세상에 모든 차별이 한순간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헌법에 명시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실천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이상 차별이 용인되지 않는,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한, 어떠한 재난이 와도 지금보다는 덜 불안하고 서로를 의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우리 모두의 약속이다.

'인간은 존엄하다'는 선언이 허공을 떠도는 문구로만 남는 것이 아닌, 나의 삶과 일상 안에서 체화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지금 우리는 행동에 나설 때이다. 탈시설운동은 개개인이 시설을 나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용시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의심하며 더이상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수용시설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수용시설 폐쇄를 주장하고 있다. 이렇듯 차별 또한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차별 금지'라는 기본 원칙을 세울 수 있어야 비로소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장애인의 날과 그리고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이하며 두 기념일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시민의 힘으로,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미경 시민기자는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입니다.


태그:#세계장애인의날, #세계인권의날, #코로나19, #차별금지법
댓글1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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