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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와 무식이 가득 차 있는 기사", "이쯤 하면 언론이 악당"

코로나19와 공존하는 삶을 산 지도 벌써 수개월이다. 전례 없는 국가의 위기 속 시민들에게 질병의 정보를 알리고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언론의 역할도 커졌지만, 반응은 차갑다.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단어도 코로나19 시국에 더욱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감염병과 관련한 허위 사실을 보도하고, 속보 경쟁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언론에 시민들은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실제로 지난 3월 18일, TBS 의뢰로 리얼미터가 코로나19 관련 신문·방송 등 우리나라 언론 보도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9.3%(전혀 신뢰하지 않음 20.4%, 별로 신뢰하지 않음 28.8%), '신뢰한다' 응답이 48.3%(매우 신뢰 8.1%, 신뢰하는 편 40.2%)로 각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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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언론이 필요하다. 일어나자마자 전국 확진자 현황 기사를 검색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백신이 화두에 오르면서, 언론사 메인 헤드라인을 '백신'이 연일 장식하기도 했다.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 상황 속에서 언론이 '아직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코로나19는 우리 언론의 병폐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그럼에도 필요한 언론'이란 명제를 되새길 수 있도록 했고, '포스트 코로나와 언론'을 주제로 다루는 토론회와 포럼이 열리는 등 한국 언론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모순적이게도 시민들이 언론을 호되게 질책하는 것은, 그만큼 언론이 지향해야 할 것과 우리가 이들에게 바라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묵묵히 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취재 기자'다. 감염병 보도의 중심에는 언제나 취재 기자들이 존재하지만, 정작 기자들의 변화된 삶을 조명하는 내용은 접하기 어렵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한 방송국 사회부에서 근무 중인 이아무개 기자를 지난 10월 17일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팬데믹 혼란과 '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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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동 한 카페에서
 합정동 한 카페에서
ⓒ 이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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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메르스나 사스 같은 전염병은 있었지만, 코로나19는 유례없이 전염력이 강하고 확산 속도가 빨랐다. 이에 대해 기자는 코로나19의 특성 탓에 '어떻게 취재할 것인가' 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어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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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확진자가 발생한 장소를 어디까지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지, 취재원들을 얼마만큼 가깝게 접촉해야 할지, 또 실내를 취재할 때는 어떤 경우에 마스크를 착용해야 할지 등 사소한 것에서부터 기준을 만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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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을 만들기 위해 언론사 내부에서 마련한 가이드라인이 있었는지 묻자, 방송기자들의 리포팅 상황을 예로 들었다. 이들은 리포팅할 때도 직접 화면에 등장해 마이크를 손에 들고 진행한다.

야외에 사람이 없을 땐 마스크를 벗고, 실내에서는 써야 하는 등의 세부적인 기준이 마련됐다. 특히 취재 후 거쳐야 하는 편집 과정을 편집자와 대면하지 않고 진행이 가능하도록 한 지침을 만들었다. 코로나19 상황 속 언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언론사의 치열한 노력이 보이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어려움은 있다. 사람이 만든 기준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호한 기준으로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위험성도 있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기에, 언론사 구성원들은 더욱 똘똘 뭉친다. 위에서 아래로 지시하는 일방적인 지침이 아니라 끊임없는 숙의의 시간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더욱 유의미하다.

"기준이 모호한 경우 일선 취재기자들이 건의하면 개정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돼요. 예를 들어 복무지침이라는 게 있는데, 이 지침이 지금까지 32차 정도 개정이 됐어요. 계속해서 수정하며 가이드라인을 체계화하고 있는 건데, 코로나19가 특수한 상황인 만큼 일선 기자와 데스크 그 밖에 구성원들이 이견을 조율해서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언론사마다 기준이 상이한 경우도 있다. 특히 방송사와 신문사의 경우 취급하는 콘텐츠부터 다소 차이가 있기에 지침도 다르다. 여기서 오는 혼란이 없는지 묻자 이  기자는 예상 밖의 답변을 꺼냈다.

"우려했던 것만큼 혼란은 아직 없어요. 그 이유가 방송사 간에 가이드라인을 공유하고 있어서 같아요. 분명 '다른' 회사이기 때문에 일부 차이는 있지만, 같은 언론인으로서 당위적으로 '이건 위험하다'는 판단을 할 때가 있잖아요. 무리하게 취재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는 언론사 간에도 적정선을 지키자는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하고요."

'비대면'이 만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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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수업에서 널리 사용되는 플랫폼 '줌'
 비대면 수업에서 널리 사용되는 플랫폼 "줌"
ⓒ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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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현장에서 뛰는 기자"라는 당위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전염병 사태 속에서 현장에 가지 않고도 취재원의 상황과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취재 시 인터뷰 대상의 배경 상황까지 고려해 사전 대화를 충분히 나누는 등 '맥락'을 중요하게 생각해오던 기자이기에 고민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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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인터뷰는 목적이 확실한데, 이게 오히려 단점이 되기도 해요. 방송 인터뷰의 경우에는 카메라로 취재원을 '녹화'하는 것부터 인터뷰의 시작 과정으로 보기 때문에 그 전에 취재원과 소통하며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해요. 기사에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 내용이라도 말이죠.

비대면 인터뷰의 경우에는 시작 전후에 사적인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 그만큼 취재원의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요. 기자와 취재원 간의 '대화' 라기보다는 '형식적인 업무'로 봐야 한다는 단점이 있죠. 직접 대면했을 때 알게 되는 기사의 '소스'를 얻지 못한다는 한계가 존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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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회사를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자만은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다. '임시방편일 뿐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를 예견하는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까지 나오는 만큼 대안은 필요하다. 인터뷰를 포기할 순 없기에 화상 인터뷰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이 기자는, '어려움은 있지만 새로운 기회로 삼겠다'라며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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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도 있지만 코로나19가 쉽게 끝나지 않을 상황이니만큼 공존 방법을 찾아야 해요. 제가 '포스트 코로나 TF팀'에서 근무할 때 프랑스에 있는 분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대면 인터뷰가 불가능하다 보니 화상 인터뷰로 진행했었는데, 불편함도 있었지만 '아, 이렇게도 할 수 있겠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나기는 어렵지만, 기사의 맥락상 꼭 필요한 취재원과 시대에 맞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만났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었어요. 먼 외국에 사는 취재원의 경우 화상 인터뷰가 더 용이했고요. 코로나19 상황에서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취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확실히 가치가 있었어요. 코로나19가 되려 대면에 국한되었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취재방식을 채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거죠."


기자 정신과 사회적 감수성의 동행

언론사와 방송국에서 연이어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며 기자들의 불안감도 높아졌다. 기자이기 전에 '사람'이기에 이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또 현장에서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이아무개 기자는 우리의 질문에 '기자 정신'을 키워드로 꺼냈다. 그는 과거에는 기자 개인의 안전보다 '기자 정신'을 강조하는 시대가 있었다고 했다. 박대기 KBS 기자가 눈사람이 되어가는 리포팅 영상을 보며 "대단한 기자 정신"이라며 칭찬하고, 재난 현장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도하는 기자들에겐 "기자 정신이 투철하다"는 칭찬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그러나 최근엔 단순히 사람으로서 불안감 때문이라는 일차원적 이유가 아니라, 기자가 안전해야 시청자도 불안을 느끼지 않고 뉴스를 전달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이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먼저 방역 지침을 지키지 않으면, 시청자들에게 전하려는 내용이 와닿을 리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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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집행정지 처분에 대한 효력 집행정지 심문기일에 법무부 측 추미애 장관의 법률 대리인인 이옥형 변호사가 재판에 참석한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1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집행정지 처분에 대한 효력 집행정지 심문기일에 법무부 측 추미애 장관의 법률 대리인인 이옥형 변호사가 재판에 참석한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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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방역 지침이 명확하지 않았을 때, 한 시민분의 민원을 받은 적이 있어요. '왜 턱에 마스크를 걸고 보도를 하냐'는 거였죠. 사실 그 당시에는 마스크와 마이크가 닿으면 소리가 깨지거나 작게 들리는 문제 때문에 턱에 걸고 리포팅을 진행했었는데, 사실 '턱스크(턱에 걸치는 마스크) 쓰지 말라'는 보도를 내보내는 우리가 그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모순을 시청자분들이 잘 짚어주는 시기가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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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노동자의 안전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언론인은 노동자이기 이전에 '기자다'라는 생각이 과거 사회의 주류였다면, 지금은 다르다. 기자이기 이전에 '노동자'이고, 한 명의 사람이다. 노동자로서 일하다 다치지 않고 죽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점은 여느 직업인들과 동일하다는 의미다. 이 기자는 이것이 비단 언론사 내부의 의견이 아니라, 다수 시민의 '감수성'이 높아진 덕분이라고 말하며 앞으로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직은 왜 기자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현장에 나가지 않고 실내에서 정보를 전달하냐는 의견도 있어요. 언론사 운영이나 시청률 측면에서 봐도, 현장에 나가 생동감 있는 장면을 내보내는 것이 좋다는 주장도 있고요. 일종의 '과도기'인 거죠. 이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고 언론사의 지침도 좀 더 정교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뉴스는 역사의 초고(the first rough draft of history). 항상 옳을 수도 없고 완벽하진 않지만 계속 쓰는 것, 그게 우리의 일이죠." - 영화 <더 포스트> (2017) 
  
언론의 위기다. 재난 상황은 언론의 필요를 되새기도록 하는 동시에 그 민낯을 세상에 드러냈고, 언론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언론의 '희망'을 계속해서 찾고자 하는 이유는 보도의 현장 곳곳에 현실에 발맞춘 언론사의 변화와 시민들의 성숙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현직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둘의 공존 가능성을 발견했기에 그렇다.

"다시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맞다. 코로나19 이후 마주하게 될 언론의 모습은 이전과 달라야 한다. 많은 이들을 아프게 했던 시기지만, 모순적이게도 이 시간은 우리가 원하는 언론과 그들이 지향하는 '기자정신'이 결코 상충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들이 모여 더 나은 시민사회로 나아갈 동력이 되길 바란다.

태그:#코로나19, #언론, #취재기자, #포스트코로나, #기자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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