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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자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2019년 기준 3만 1349달러)에 비춰보면, 거의 두 배 가까이 된다. 물론, 가계 소득으로 넓혀 보면 평균에 조금 못 미친다. 맞벌이 부부지만, 두 아이를 건사하고 있으니 그렇다. 우리 부부의 소득을 네 명으로 나누니 평균이라는 이야기다.

밝히긴 좀 뭣하지만, 우리 부부의 소득을 보태면 1년에 1억 2천만 원 남짓 된다. 남들처럼 목돈을 저축하지는 못해도 돈에 쪼들려 월급날을 기다린 적은 없다. 코로나 이전엔 해마다 방학을 이용해 온 가족이 외국에서 한 달 살기를 해오고 있으니 나름 풍족한 삶이라고 여긴다.

지방인 데다 20년도 넘은 오래된 아파트일지언정 내 소유의 집도 가지고 있다. 은행 대출도 이미 다 갚았고,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이사할 계획도 없다. 아파트가 새로 지어진 그 이듬해인가 입주했으니, 아마 나보다 오래된 입주민은 드물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우리 집엔 자동차가 두 대다. 맞벌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합리화하지만, 대기오염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며 산다. 하여 조만간 수명이 다한 한 대를 폐차한 뒤엔 다시 새 차를 장만하진 않을 거라 다짐하고 있다. 은퇴하기까진 시간이 많이 남긴 했어도, 다른 출퇴근 방안을 모색 중이다.

우리 부부는 기부에도 나름 신경을 쓴다. 기껏해야 기관당 매월 만 원씩이지만, 후원하는 곳이 서로 열몇 곳쯤 된다. 남들 앞에서 대놓고 자랑하기엔 민망한 액수지만, 그 정도는 타인을 위해 써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두 아이도 커서 그럴 거라 믿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략 난감'하기도 하다. 이렇듯 남 부러운 삶을 영위하는데도 우리나라 가계 소득의 평균에 못 미친다니 그렇다. 통계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만큼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가 극심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굳이 지니계수를 따져볼 필요도 없다.

아무튼, 우리 집은 형편이 넉넉하다. 다른 건 몰라도, 돈을 더 바란다면 탐욕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께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삼시 세끼 밥 굶지 않고, 한뎃잠 자지 않으며, 남들로부터 남루하다 조롱당하지 않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이다. 길지 않은 인생을 돈벌이에 저당 잡히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런 나의 생각과 행동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동료 교사도, 주변 지인도, 심지어 가까운 친척들까지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은퇴 후에는 어쩌려고 그러냐는 둥, 부모로서 두 아이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둥 온갖 충고를 늘어놓기 일쑤다.

부동산은커녕 주식 투자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 흔한 로또 한 번 산 적 없는 나를, 그들은 '천연기념물' 취급을 한다. 집을 사고팔아 차익을 취하는 것과 로또를 사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건 '도덕적 범죄'라고 했다가 들은 조롱이다. 실정법에 저촉되지 않을 뿐 나쁜 짓 맞지 않나.

집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건 정작 살 집이 절실한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다. 더욱이 불로소득은 땀 흘려 일해 돈 버는 이들의 의욕을 잃게 만든다. 사행심을 조장하는 로또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뭐가 잘못이냐"며 되레 날 꾸짖는다.

어떤 이들은 느닷없이 '취향'의 문제라고 눙친다. 세상에는 돈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이 아닌 다른 것에 더 관심이 있는 이들도 있다는 거다. 한술 더 떠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도, 만족의 정도도 다 다르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남과 다르게 살면 불편하지 않냐며 '위로'해주는 이들도 있다. 대개 그들은 남들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대로 따라 사는 게 제일 편하다고 말한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작 그들 중에는 부동산 매물 정보와 주식 시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저축하는 대신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니는 모습 역시 그들 눈엔 어이없어 보이는 모양이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들이대며, 나중에 어쩌려고 그러냐고 질타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하긴 십수 년 동안 한 달 살기를 해왔으니, 그 돈만 모았어도 집 한 채는 더 샀을지도 모른다.

적지 않은 경비가 들긴 하지만, 가족끼리의 추억과 경험, 여행의 즐거움을 돈과 맞바꾸었다고 여긴다. 지금도 가족끼리 함께 식탁에 앉으면, 종종 그동안 다녀온 여러 나라에서의 낯선 경험을 서로 추억하곤 한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데, 그깟 돈쯤이야 하는 생각도 있다.

여기서 잠깐. 어떤 이는 그 정도 소득으로 해마다 한두 달씩 해외에서 지내는 게 가능하냐고 묻곤 한다. 가능하니까 지금껏 별 탈 없이 다니고 있다. 대신 우리 부부는 넓은 집이나 고급 차, 비싼 옷, 좋은 음식 등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야말로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다.

그럼 노후는 누가 책임지느냐고? 해외여행은 못 다닐지언정 연금만으로도 너끈히 생활할 자신이 있다. 사실은 그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다. 젊었을 때, 납세와 근로, 교육과 국방 등 국민으로서 의무를 충실히 다했으니, 노후 정도는 국가가 책임지는 게 마땅하지 않나.

치기 어린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느라 허리띠 졸라매는 노력의 반의반만이라도 국가를 향해 국민의 노후 생활을 보장하라는 요구에 힘을 보태면 어떨까. 몇 년 뒤면 네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 노령인구라는데, 무작정 개인에게 책임지라는 건 무책임하다.

대학 울타리 안과 밖의 차이 별로 없다

 
수능 시험장 코로나19 특별방역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26일 오후 수능이 치러질 대구 시내 한 시험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특별방역이 실시되고 있다.
▲ 수능 시험장 코로나19 특별방역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26일 오후 수능이 치러질 대구 시내 한 시험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특별방역이 실시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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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날 보고 주위에서 가장 어이없어하는 건 따로 있다. 바로 교육 문제다. 그들 눈엔 부모로서 두 아이의 미래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것처럼 비친 모양이다. 자녀의 삶을 방임하는 부모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으랴마는 아이들의 학업 성적에 무관심한 모습을 두고 다들 한마디씩 한다.

아들 녀석이 올해 수능을 치른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지 않고 지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수능을 보겠다며 영어, 수학 수험서를 주섬주섬 챙겼다. 지난 3년 동안 수능 대비 모의고사를 치러보지 않은 탓에, 아직도 영역별 시험 시간조차 어색해한다.

중3 때 바로 옆 병설 고등학교 형들의 힘들어하는 일상을 보고 일반계고 대신 대안학교를 선택했던 아이다. 좋아하는 축구도 하고, 악기도 배우고, 요리도 즐기면서 3년 동안 즐겁게 학교생활을 했다. 학교가 얼마나 좋았으면, 부모 앞에서 방학이 싫다고 할 정도였다.

중학교 땐 최상위권 성적에 짐짓 우쭐댔지만, 지금 녀석은 그걸 되레 부끄러워한다. 맹목적으로 외우고 반복한 그때의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었다고 선선히 말한다. 그래선지, 고등학교 와서 의도적으로 공부를 멀리한 것 같지는 않은데 성적은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수능을 본다지만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무덤덤한 표정으로 보아 그다지 애면글면하지 않는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내는 고3인 아들 덕분에 수능 시험 감독 순번에서 빠졌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점수가 잘 나오면 좋겠지만, 나빠도 별 상관없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생긴 모양이지만, 곧장 진학하든, 재수하든, 진로 탐색의 시간을 더 갖든 제 뜻대로 하게 내버려 둘 작정이다. 다그친다고 될 일도 아닐뿐더러 아직은 여유가 있어서다. 누구든 제 밥그릇은 지니고 태어난다는데, 한두 해 해찰한다고 대수일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조금 달리 해석한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 살지 말고, 자신만의 남다른 경험을 쌓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신체 건강한 젊은 나이에는, 어느 책 제목처럼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생도, 재수생도, 하다못해 아르바이트생도 아닌 백수 생활을 당분간 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여긴다. 어디까지나 당분간이지만, 그 시간이 인생에서 허송세월은 아닐 거라고 믿기에 그렇다. 솔직히 배움의 질을 따진다면, 대학 울타리 안과 밖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게 지론이다.

13살과 16살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와 19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이 스물에 대학에 진학하는, 우리 교육의 '컨베이어 시스템'을 혁파할 때도 됐다. '배움에도 때가 있다'는 식의 완고한 편견을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낡은 산업사회의 잔재다.

우리 사회에서 수능이 '과잉 대접'을 받는 것도, 이런 편견이 여전히 강고한 탓이라고 본다. 나아가 아이들 대부분이 배움의 즐거움은커녕 환멸을 안고 진학한 대학 교육의 지리멸렬함도 그래서다. 대학 입시에 '올인'하는 공부의 족쇄를 풀지 않는 한 진정한 배움은 없다.

이걸 남들은 '호강에 겨운' 이야기로 치부한다. 있는 집에서나 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거다. 부인하진 못하겠다. 그런데,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조롱하는 이들 대부분은 우리 집보다 가계 소득이 높다. 소득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우화 속 베짱이는 추운 겨울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설령 나이 들어 지금보다 가난해진다고 해도 기품있게 살아갈 자신이 있다. 부모 세대보다 풍요로울 수 없는 시대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재능은 물질적 모자람에도 행복을 누리는 감수성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야만스러운 점수 경쟁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게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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