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까지 LG트윈스를 이끌었던 류중일 감독은 경북고 시절 잠실야구장 개장 홈런을 터트렸던 천재 유격수 출신이다. 프로 입단후에도 김재박의 뒤를 이어 최고 유격수 계보를 이으며 두 번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감독으로서도 삼성 라이온즈의 통합 4연패를 이끌며 '야통'으로 명성을 떨쳤다. LG에서도 류중일 감독을 영입할 때 3년 21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했을 정도.

kt 위즈의 이강철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 시절 10년 연속 두 자리 승수와 세 자리 탈삼진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잠수함 투수로 군림했다. 현역 시절에 기록한 통산 152승은 현재까지도 현역 최다승 3위 기록으로 남아 있다. 두산 베어스의 김태형 감독은 슈퍼스타 출신은 아니지만 선수와 (플레잉)코치, 감독으로 모두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는 큰 업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모든 구단이 유난히 힘든 시즌을 보냈던 2020년, 쟁쟁한 스타 감독들을 제치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사령탑은 바로 NC 다이노스의 이동욱 감독이다. 이동욱 감독은 선수로는 물론이고 지도자로서도 주목 받는 커리어를 쌓은 인물은 아니었지만 감독 데뷔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하며 많은 야구팬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2020시즌 KBO리그 한국시리즈에서 창원 NC 다이노스 우승 세레모니를 마치고 선수들이 이동욱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2020시즌 KBO리그 한국시리즈에서 창원 NC 다이노스 우승 세레모니를 마치고 선수들이 이동욱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 이희훈

 
만29세부터 코치 생활 시작한 무명 선수 출신

부산에는 '추추트레인' 추신수를 배출한 부산고와 고 최동원, 이대호(롯데 자이언츠)의 모교인 경남고, 이택근과 정우람(한화 이글스) 등이 나온 부경고(구 경남상고) 등 많은 야구 명문학교들이 있다. 하지만 야구 명문 고등학교에 스카우트되기엔 실력이 부족했던 이동욱 감독은 전국대회 우승 경력이 없는 동래고등학교로 진학했다(물론 동래고도 박정태, 문동환 등 좋은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고교 졸업 후 부산에 위치한 동아대에 진학한 이동욱 감독은 대학 입학 후 기량이 발전하면서 졸업반이었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 멤버로 선발됐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대표팀은 1승6패의 저조한 성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문동환, 손민한, 진갑용, 이병규, 강혁, 김선우, 조인성, 임선동 등 훗날 KBO리그의 스타가 되는 쟁쟁한 선수들이 대거 참가한 대회였다.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 멤버라는 타이틀을 얻은 이동욱 감독도 199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2라운드 전체 14순위라는 높은 순번으로 연고 구단인 롯데에 지명됐다. 박정태의 뒤를 이을 국가대표 출신 내야수의 입단에 롯데는 이동욱 감독에게 1억80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액수의 계약금을 안겼다. 하지만 프로무대에서 이동욱 감독의 활약을 기억하는 야구팬은 그리 많지 않다.

1997년 프로에 데뷔한 이동욱 감독은 2003년까지 7년 동안 1군 무대에서 총 143경기에 출전해 타율 .221 60안타 5홈런26타점 17득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그나마 76경기에 출전했던 2002 시즌이 현역 시절 이동욱 감독의 전성기(?)였는데 당시 롯데는 100패에서 정확히 3패가 부족한 35승1무97패(승률 .265)라는 처참한 성적을 올렸다. 결국 이동욱 감독은 2003 시즌을 끝으로 방출되면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후 만29세의 젊은 나이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동욱 감독은 롯데와 LG의 2군에서 수비코치를 역임하다가 NC의 창단과 함께 신생구단으로 팀을 옮겼다. 2017년까지 NC의 1군 수비코치를 맡던 이동욱 감독은 NC가 최하위로 떨어진 2018년에는 잔류군이라는 '한직'으로 내려 갔다. 그러던 2018년10월 야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소식이 들려 왔다. 이동욱 잔류군 코치가 NC의 2대 감독으로 선임된 것이다.

구창모-송명기-강진성 발굴한 과학적인 승부사

이동욱 감독이 만45세의 나이로 KBO리그 최연소 감독이 됐을 때 야구팬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 없었다. 2017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에 부임했을 때 현역 경력이 일천하다고 비판을 받았던 장정석 감독도 통산 580경기에 출전했었는데 이동욱 감독은 현역 시절 고작 143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비코치는 타격코치나 투수코치처럼 야구팬들에게 익숙한 보직도 아니었다.

이동욱 감독은 부임 첫 해 최하위였던 NC를 1년 만에 가을야구로 이끌었지만 양의지를 FA로 영입한 투자의 결과로 봤을 뿐 이동욱 감독의 능력이라는 평가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동욱 감독은 작년 시즌 셋업맨이었던 원종현을 붙박이 마무리로 변신시키고 선발과 불펜을 오가던 구창모를 선발로 전환시키는 등 팀의 체질개선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실제로 작년 원종현은 31세이브, 구창모는 10승을 기록하며 보직변경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

그리고 이동욱 감독의 이 같은 노력은 2020년 NC의 창단 첫 통합 우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팀의 간판 타자인 나성범과 양의지, 외국인 선수 애런 알테어가 나란히 30홈런100타점 시즌을 보낸 NC는 5명의 3할 타자를 배출했고 아쉽게 규정타석에 미치지 못한 '깜짝스타' 강진성의 활약도 대단했다. 마운드에서는 외국인 투수 드류 루친스키의 대활약 속에 영건 구창모와 송명기라는 토종 좌우 원투펀치를 발굴해냈다.

이동욱 감독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바로 효율적인 불펜운용이다. NC는 올 시즌에도 초반 박진우와 배재환 등을 필승조로 활용하다가 시즌 중반 이후 트레이드로 영입한 문경찬과 2차 드래프트로 이적한 홍성민, 뒤늦게 컨디션을 회복한 김진성 등을 필승조로 투입하며 톡톡히 재미를 봤다. 실제로 NC에는 올 시즌 60이닝 이상을 던진 소위 '노예형' 불펜 투수가 한 명도 없었다. 

매년 스타 출신 감독들이 자신만의 야구철학을 가지고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장을 내밀지만 실제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감독은 KBO리그 39년 역사상 총 16명 밖에 없다. 현역 시절 통산 100안타도 때려보지 못한 이동욱 감독이 16명 안에 포함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과학적인 분석과 과감한 승부수를 통해 '가을 타짜' 김태형 감독이 이끄는 두산을 꺾은 것은 분명 우연도, 행운도 아닌 이동욱 감독의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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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NC 다이노스 이동욱 감독 송명기 강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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