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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국제교류재단이 과거 한국에서 활동한 미국 평화봉사단원들에게 마스크 등이 담긴 코로나 방역 키트(COVID-19 Survival Box)를 보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과거 한국에서 활동한 미국 평화봉사단원들에게 마스크 등이 담긴 코로나 방역 키트(COVID-19 Survival Box)를 보냈다.
ⓒ 빌 에이머스(Bill 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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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이다호(Idaho)주 보이시(Boise)에 거주하는 빌 에이머스(Bill Amos, 63)씨는 지난 10월 31일 한국으로부터 뜻밖의 우편물을 받았다. 'KF(Korea Foundation, 한국국제교류재단)'가 발신자로 된 큰 박스에는 'KF COVID-19 Survival Box(코로나19 서바이벌 박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상자를 연 에이머스씨는 깜짝 놀랐다. KF-94 마스크, 항균장갑, 배낭 등 코로나19를 견디기 위한 물품이 가득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은수저, 홍삼캔디, 인스턴트 커피 등 한국을 떠올릴 수 있는 기념품도 들어 있었다.

에이머스씨는 2일 <오마이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날아갈 듯 기뻤다. 마치 10월의 크리스마스 같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깜짝 놀란 후 나는 한국국제교류재단과 그곳을 대표하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라며 "상자 안의 선물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 만족 그 이상이다"라고 덧붙였다.

"K방역, 세계적 수준 보여줘... 현재 미국의 문제는 정치"
 
 목포, 안양에서 평화봉사단으로 근무한 빌 에이머스는 주변 동료들의 증언과 목포에서의 근무 경험을 토대로 1999년 소설 <The Seed of Joy>를 썼다. 이 소설은 외국에서 나온 첫 5.18민주화운동 관련 소설이다.
 1979~1981년 목포, 안양에서 미국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한 빌 에이머스.
ⓒ 빌 에이머스(Bill 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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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제교류재단은 왜 이 같은 물품을 미국에까지 보낸 것일까. 에이머스씨는 1979~1981년 한국에서 평화봉사단(Peace Corps)으로 활동했다. 평화봉사단은 1961년 미국 정부가 만든 청년 봉사단체로 주로 개발도상국에 파견돼 교육, 의료, 농수산기술 분야에서 활동했다. 한국엔 1966부터 1981년까지 평화봉사단이 들어와 활동했다.

에이머스씨는 목포, 안양에 머물며 의료 봉사 분야에서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머물 때 발생한 5.18민주화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아 1999년 < The Seed of Joy(기쁨의 씨앗) >이란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최초의 외국 소설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지난 10월 22일 "미국 평화봉사단원들의 코로나19 대응을 돕기 위해 방역 키트를 전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1991년 12월 한국국제교류재단법에 따라 만들어진 한국국제교류재단은 한국과 외국의 각종 교류 사업을 담당하는 외교부 산하기관이다.

에이머스씨는 "한국의 우정과 너그러움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라며 "모든 평화봉사단원들은 우리가 과거 봉사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1979년~1981년 한국에 머물렀던 빌 에이머스가 1979년 자신이 근무하던 목포의 한 병원에서 직원들과 찍은 사진이다.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1979년~1981년 한국에 머물렀던 빌 에이머스가 1979년 자신이 근무하던 목포의 한 병원에서 직원들과 찍은 사진.
ⓒ 빌 에이머스(Bill 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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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1979년~1981년 한국에 머물렀던 빌 에이머스가 1979년 자신이 근무하던 목포에서 한 학생과 찍은 사진이다.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1979년~1981년 한국에 머물렀던 빌 에이머스가 1979년 자신이 근무하던 목포에서 한 학생과 찍은 사진.
ⓒ 빌 에이머스(Bill 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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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는 미국과 한국의 상황을 비교하며 "아이러니를 느낀다"라고 말했다.

"제가 한국에 갔을 때 한국의 의료 수준은 미국보다 다소 뒤처져 있었어요. 1960년대 저보다 먼저 한국에 갔던 평화봉사단원들은 한국의 훨씬 더 안 좋은 상황을 봤었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미국과 위치가 바뀐 것 같아요. 한국은 이번에 공중보건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보여줬고 미국은 훨씬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코로나19로 발생한 내 나라의 상황에 나는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에이머스씨는 자신의 아들도 지난 8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 내외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아들의 증상은 가벼웠고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나는 아들이 음성 판정을 받을 때까지 침실에 머물도록 조치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지금까지 우리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떠올렸다.

에이머스씨는 미국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이유를 "정치"라고 꼽았다.

"제가 살고 있는 아이다호주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에서 감염 수치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다호 주에서 지난 금요일(10월 30일)에만 1064명의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지난 여름엔 그 절반의 수치였는데 말이죠. 아이다호주는 그나마 고립돼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갑작스런 확진자 증가와 이에 따라 이어지는 죽음들을 보며 매우 걱정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감염병이 매우 악화되었던 상태로 다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는 정치의 책임이 큽니다. 국가 지도자의 매우 형편없는 지도력 때문입니다."

에이머스씨는 "지금 미국의 가장 큰 도전은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쓰도록 하는 것이다. 당신은 사람들이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고 이것으로 논쟁하는 모습을 보면 놀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미국에서 마스크를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만,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보내준) KF-94 마스크를 찾는 건 좀 어렵다"라며 "한국의 놀라운 너그러움에 내 마음은 감사함으로 가득차 터질 것 같다"며 재차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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