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리그 강등에 망연자실하는 부산 아이파크 선수들

2부리그 강등에 망연자실하는 부산 아이파크 선수들 ⓒ 한국프로축구연맹

 
축구 팬들에게는 어느 때보다 길고 치열했던, 그리고 복잡한 여운을 남긴 하루였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치열했던 생존 경쟁에서 성남FC와 인천유나이티드가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부산 아이파크가 최후의 패자가 됐다.

31일 전국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0' 파이널B 27라운드, 성남은 홈에서 부산을 상대로 짜릿한 2-1 역전승을 거두며 잔류에 성공했다. 같은 시간 인천도 FC 서울을 1-0으로 이기고 다시 한번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최종전까지 세 팀의 상황은 매우 복잡했다. 부산과 성남(이상 승점 25)이 다득점(2골) 차이로 각각 10-11위에 위치했고, 인천(승점 24)이 단 1점 차이로 최하위에 위치해있었다. 공교롭게도 부산과 성남이 최종전에서 격돌하게 됐다. 세 팀 모두 무조건 최종전을 이겨야만 자력으로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공교롭게도 똑같은 시간에 인천과 부산의 선제골이 터졌다. 경기 시작 전반 32분에 인천은 아길라르가, 부산은 이동준이 먼저 골망을 흔들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이제 세 팀중 가장 벼랑 끝에 놓인 것은 성남이었다. 인천이 서울에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성남은 부산에 비기더라도 탈락하게 되는 절체절명의 기로에 놓였다.

0-1로 전반을 마친 성남은 후반에 기적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20분 19살 신예 공격수 홍시후가 자신의 프로 데뷔골로 동점골을 뽑아낸 데 이어, 후반 32분에는 마상훈이 역전 결승골을 기록했다. 특히 마상훈의 골이 오프사이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비디오판독(VAR)까지 거쳐서 끝내 득점으로 인정되자 성남과 부산, 양팀 벤치의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다급해진 부산은 만회골을 넣기 위해 몰아 붙였지만 성남은 몸을 사리지 않는 육탄방어로 리드를 지켜냈다.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인천도 서울을 상대로 선제골을 끝까지 지켜냈다.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성남과 인천 선수들은 마치 우승이라도 차지한 듯 환호했고, 거짓말같은 강등이 확정된 부산 선수들은 그대로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똑같은 장면이 누군가에는 희극, 누군가에게는 비극으로 남는 승부의 세계가 주는 아이러니였다.

이로서 성남은 7승 7무 13패(승점28)가 되면서 10위로 올라섰고, 인천은 7승 6무 14패(승점27)로 11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부산은 5승 10무 12패 승점 25점으로 마지막날 최하위로 추락하며 승격 1년 만에 다시 강등 당했다. 2015년에 이어 구단 역사상 두 번째 강등이다.

부산은 이번 강등으로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또다시 경신했다. 부산은 2015년 당시 K리그 역사상 '최초의 기업구단 강등'이라는 아픔을 겪은 데 이어. 이번에는 최초로 '두 번 강등된 기업구단'이라는 오명까지 안게 됐다. 하필 부산의 구단주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축구의 수장'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민망할 수밖에 없는 결과다.

부산 팬들에게는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패했던 첫 번째 강등보다 이번 강등이 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상주 상무의 자동 강등으로 올시즌에는 최하위만 면하면 됐다. 시즌 막바지까지도 부산은 강등권 3팀 중에서는 가장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 부산은 파이널B라운드 마지막 2경기가 하필 인천-성남전이었는데, 이중 단 한 경기만 비겼어도 잔류를 확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산은 2경기 연속으로 선제골을 뽑아내고도 내리 2-1 역전패를 당하며 거짓말같이 무너졌다. 유리한 상황에서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순간이다.

부산은 첫 강등 이후 지난 시즌 승격에 성공하기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오랜 만에 승격한 올시즌엔 개막 초반부터 강호들과 맞붙는 대진운 속에서 7라운드까지 무승(4무 3패)에 그치며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이때부터 선제골을 넣고도 리드를 지키지 못하거나, 후반 막판에 결승골을 내줘 무너지는 등 뒷심부족은 고질적인 약점으로 드러났다.

8~12라운드에서 5연속 무패행진(3승 2무)행진을 달리며 한때 6위까지 잠깐 반등한 기간을 제외하면, 13라운드 이후로는 다시 2승 4무 9패의 부진에 허덕이며 추락을 면하지 못했다. 9월에는 지난해 팀의 승격을 지휘했던 조덕제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임하며 이기형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물려받았는데, 파이널B라운드 불과 마지막 4경기를 남기고 갑작스럽게 감독이 바뀐 것은 부산에게는 오히려 더 큰 혼란과 악재로 작용했다.

성남과 인천이 잔류 과정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투혼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성남은 마지막 2경기에서 수원과 부산에 연이어 2-1 역전승을 거두는 저력을 발휘했다. 수원전은 김남일 감독이 강원전에서의 퇴장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이뤄냈고, 부산전에서는 공교롭게도 득점과 인연이 없었던 홍시후와 마상훈이 모두 올시즌 첫 골을 가중 중요했던 리그 최종전에서 터뜨리는 등 거짓말같은 반전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인천은 올시즌 개막 15경기 연속 무승(5무 10패)이라는 전반기 최악의 부진을 극복하고, 조성환 감독 부임한 후반기에만 7승을 기록하며 창단 이래 한번도 강등 당하지 않은 생존왕의 진가를 증명했다.

하지만 '잔류만 성공'했다고 해서 두 팀이 올 시즌 보여준 '과정'까지 전부 미화되는 것은 아니다. 성남은 올 시즌 김남일 신임감독 체제로 초반 돌풍을 일으키는 등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단조로운 전술과 빈공이라는 문제점을 드러내며 2016년 이후 두 번째 강등 위기에 몰릴 뻔했다. 여름에 합류한 이적생 나상호가 7골로 최다득점자였을 만큼 공격루트가 부족했고 외국인 선수 농사도 흉작이었다. 김남일 감독은 25라운드 강원전 패배 이후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 당하여 2경기를 결장하는 등 미숙한 모습으로 초보 감독의 한계를 드러내며, 전임자였던 남기일(제주) 감독과 비교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인천은 승강제 도입 이후 한두 시즌 정도를 제외하면 매년 하위권을 전전하다가 간신히 1부리그 잔류로 최악의 상황만 모면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성적 부진으로 시즌 중 감독 사퇴(임완섭)→감독 교체 이후 반등(조성환)이라는 공식은 올해도 되풀이됐다. 잔류라는 현실에서만 안주해서는 팀의 궁극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인천은 경기 외적으로 방역지침을 무시하거나 상대팀의 상황을 존중하지 않는 일부 몰지각한 극성 팬들의 행각으로 올 시즌에만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는 점도 자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숙제를 남긴 것은 강등권 팀만의 문제가 아니다. K리그 전통의 명가로 꼽히는 수원이나 서울에게도 올 시즌은 많은 숙제를 남긴 한 해로 기억될 전망이다. 양팀은 올시즌 나란히 사상 최초의 파이널 B라운드 동반추락이라는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두 팀은 한때 강등권에 근접한 리그 10, 11위까지 추락하며 성적 부진으로 나란히 감독이 교체되는 혼란을 겪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수원은 8승 7무 12패(승점 31)로 8위, 서울은 8승 5무 14패(승점29)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특히 최근 3년 사이에서 벌써 두 번이나 하위권으로 추락한 서울은 올해에만 두 명의 감독사퇴(최용수 감독-김호영 대행), 성인용품 리얼돌 관중석 반입 사태, 이청용(울산)-기성용 K리그 복귀 논란, 대구전 0-6 참사, 수원과의 슈퍼매치 16경기 연승기록 중단, 박진섭 광주 감독 영입 불발 해프닝 등 각종 굴욕을 겪으며 도마에 올랐다.

심지어 인천과의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는 수비수 김남춘이 돌연 유명을 달리하는 가슴아픈 사건까지 벌어지며 마지막까지도 씁쓸한 기억만을 남기게 됐다. 여전히 후임 감독조차 영입하지못한채 시즌을 마감한 서울은 다가오는 ACL과 2021시즌을 앞두고 구단의 전반적인 개혁과 선수단 분위기 재정비라는 무거운 숙제를 안게 됐다.

시즌은 끝났지만 축구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올해는 부산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살아남은 팀들도 내년에 다시 부산과 같은 처지가 되지말라는 보장은 없다. 하위권 팀들은 잔류의 기쁨을 뒤로하고 이제는 올 시즌에 보여준 시행착오에 대한 냉정한 자성과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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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1순위 부산강등 생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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