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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희소병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태어난 '구세주 아기' 카비야 사례를 보도한 BBC.
 오빠의 희소병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태어난 "구세주 아기" 카비야 사례를 보도한 BBC.
ⓒ BBC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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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있다. 커다란 눈망울로 세상없이 무해하고 맑은 존재임을 드러낸 표정이 어여쁘고 사랑스럽다. 아이의 이름은 카비야 솔랑키, 이제 막 두 돌을 넘겼다.

그저 평범한 아이 같아 보이는 카비야에게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다름 아닌 '구세주 아기'인 것. 온갖 신이 난무하는 인도에서 '구세주'라 불리게 되다니, 사연이 궁금해진다.

카비야가 구세주 아기가 된 데에는 그녀의 일곱 살 난 오빠, 아비지트 이야기를 먼저 할 필요가 있다. 아비지트는 적혈구 내 헤모글로빈 기능 장애가 있는 '지중해빈혈'이 있었다. 툭하면 수혈을 받아야 했고, 면역체계 전반에 걸친 문제로 각종 합병증을 달고 살아야 했다. 6살 때 이미 80번의 수혈을 받았을 정도다.

이를 위한 해결책은 최대 성공률이 30%에 불과한 골수이식 수술뿐. 그러나 500만 루피(한화 7645 만원)에 육박하는 수술비용과 낮은 성공률은 부모를 좌절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비지트의 아버지가 '구세주 아이'에 관한 신문 기사를 접했고 그것이 아들을 살리기 위한 방법이라고 확신한 그는 저명한 의사를 찾아 도움을 청했다. 아비지트를 위한 맞춤 아이를 만들어 달라는 것. 결국, 박사의 도움으로 부부는 유전자를 디자인해,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제거한 배아를 이식받아 수정과 착상을 거쳐 출산하기에 이르렀다. 그 아이가 바로 카비야다.

디자인 된 아이, 카비야는 말 그대로 필요에 의해 철저히 만들어진 아이였다. 오빠를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카비야는 아비지트에게 온전히 골수 이식이 가능한 때를 기다리며 길러졌고, 드디어 지난 3월, 골수 이식을 마쳤다. 부부의 목적대로 이식은 성공적이었다. 아비지트의 빈혈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수혈도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부부는 생명윤리를 거론하며 자신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향해, 가족의 일에 참견하지 않기를 요구했다. 카비야가 자신들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다고, 가족의 구세주인 카비야에게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고 했다.

갑론을박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생명윤리를 강조하는 쪽에선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이 될 거라며 엄중한 경고를 했고, 불치병을 치료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데 그것이 왜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쪽도 있었다.

디자인 된 아이 카비야, 어느날 태어나보니 아픈 오빠를 위해 살게 된 이 아이는, '존엄'과 '인격'이 있는 엄연한 존재임을 간과당한 채 세상이 왈가왈부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 지금은 어리기만 한 카비야도 자랄 것이다. 자신에게도 감정이 있고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갖기 시작할 때, 그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가슴이 뻐근해진다.

'구세주 아이'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다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2008년 6월, 영국 의회가 불치병 치료 같은 의료 목적을 위한 '맞춤형 아기' 출산을 허용하는 법률안을 통과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는 즉, 카비야와 같은 아이는 얼마든지 태어날 수 있다는 것. 카비야는 그저 막 쏘아 올린 총성 한 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에서 카드로 결제를 하면수정과 착상 출산이 원 스톱 서비스로 진행되어 집에서 아기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 <마이시스터즈 키퍼> 중에서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카비야처럼 구세주 아기로 태어난 안나라는 소녀가 자신의 부모와 언니를 고소하는 내용이다. 자신은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는 안나는 세상의 모든 아기는 태어나지만 자신은 언니를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제대혈과 백혈구, 줄기세포, 골수 등 자신의 몸, 모든 것을 언니에게 줘야만 했다고 말이다. 자신의 존재는 과학의 놀라운 산물인지, 반인륜적 괴물인지 고민하며 그녀는 결국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부모와 언니를 고발하기에 이른다.

이런 영화 같은 일이, 카비야에겐 끔찍한 현실이 돼 나타났다. 누군가가 경고 했던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려 버렸는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인간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인격이 있고 존엄이 있는 존재로 생각지 않는다면, 생명 존중과 윤리를 고리타분한 도덕교과서 쯤으로 여긴다면, 자신의 존재를 혼란스러워 하는 '구세주 아이'들은 머지않아 공공연한 일이 될 것이다.

열두 살 안나처럼 자란, 카비야의 모습이 떠오른다. 온갖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카비야의 모습. 자신이 왜 살아가야 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소녀에게 그들은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 사진 속 카비야의 선한 눈망울이 자꾸 눈에 밟힌다.

태그:#유전자조작, #구세주아기, #유전자디자인, #불치병치료, #판도라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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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레이디 밋셸입니다. 말하기 보다 쓰기를, 쓰기 보다 듣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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